(정장진의 Tour & Culture)모든 이들의 꿈, 세계일주

by정장진 기자
2009.04.16 10:48:00

[이데일리 정장진 칼럼니스트] 한 상조 회사에서 설문조사를 했다. 첫 번째 질문, “죽을 때 가장 갖고 가고 싶은 물건은?” 답은 휴대폰. 두 번째 질문,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은?” 답은 세계일주로 나타났다.



5월 2일 석탄일과 5월 5일 어린이날을 낀 황금 연휴 동안의 항공권이 이미 다 예약이 끝났다고 한다. 비교적 돈이 많이 들어가는 미국이나 유럽 여행을 위한 항공권도 다 예약이 되었다고 하니, 불경기라고 하지만 그 동안 해외 여행을 계획하고 있던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던 것이다. 조금만 사치를 부리면 누구나 쉽게 해외 여행을 떠날 수 있고 또 굳이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방송이나 각종 뉴스를 통해 세계 곳곳의 소식과 풍경을 접할 수 있는 요즈음임에도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에 세계일주를 꼽을 정도로 아직도 많은 이들은 세계일주를 꿈꾸고 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여행을 떠나고 싶어할까? 이 질문을 받은 이들은 대부분 “새로운 풍경과 문화를 접해보고 싶어서”라는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답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답은 그리 정확한 답은 아니다. 정확한 답은 “인생 자체가 여행”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로 세계일주로 꼽았을 때, 이 답을 통해 우리는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고 싶어하는 진정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인생은 나그네 길이며 인간은 그 길을 가는 나그네이다. 유행가 속에도 등장하는 이 인생에 대한 비유는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려는 이유가 거의 무의식적인 것임을 일러준다. 떠나고 돌아옴이 반복되고 만나고 헤어짐이 반복되는 것이 인생일 것이다. 이 반복 속에서 누구나 묻는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며, 우리는 누군가?’라고. 세계일주라는 말 속에는 처음 떠났던 곳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귀소본능이 들어가 있다. 일주란 다시 돌아오는 것 아닌가.

1828년에 태어나 1905년에 죽은 프랑스 소설가 쥘 베른이 살았던 시대만해도 <80일간의 세계일주>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대 모험이었다. 누구나 한두 권은 읽었을 공상과학 소설의 아버지인 쥘 베른의 소설들 중에서 <80일간의 세계일주>는 지금 보면 가장 현실적인 소설이지만, 소설이 쓰여진 19세기만 해도 세계일주는 해저나 달나라 여행 못지않은 일대 모험이었다. 
 

▲ "80일간의 세계일주" 1956년작 영화포스터

쥘 베른의 소설은 물론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를 향해 서구 열강들이 제국주의의 마수를 뻗치던 시절에 쓰여진 소설들이라는 점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제 그런 시대는 거의 완전히 끝났다. 세계일주는 이젠 꿈도 아니고 여유만 있다면 누구나 한 번쯤 떠날 수 있는 흔한 여행상품이 되었다.

이렇게 보면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에 “세계일주”라고 답을 한 사람들은 어쩌면 아직 한 번도 해외 여행을 안 해본 이들일 가능성이 많다. 야자수 그늘의 푸른 해변을 떠올리며 그런 답을 했을 수도 있고 에펠탑이나 콜로세움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그런 답을 했을 수도 있다. 사실 관광 팜플렛이나 광고에 등장하는 야자수 그늘과 에펠탑은 현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 로마 콜로세움 앞
▲ 베르사유궁

여행은 인생처럼 환상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우린 모두 인생에 대해 자신이 생각해도 웃음이 나올 정도로 많은 환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환상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으며 또 부정적이지만도 않다. 환상을 먹고 사는 것이 인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행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환상이 깨질 때 인생과 여행은 그 실체를 드러내며 그때부터 진짜 여행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콜로세움 앞에 가면 고대 로마는 온데 간데 없고 동전을 벌려는 로마 병정들만 진을 치고 있다.

▲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

진짜 여행이란 무엇인가? 길 위에서 집을 생각하는 여행이 진정한 여행인지도 모른다. 남태평양의 타히티 섬 등지로 떠나 야인으로 살다가 숨을 거둔 고갱은 마지막 작품으로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작품을 그리고 숨을 거두었다. 고갱 역시 열대의 순수 속에서도 “길과 집”에 대한 궁극적 의문에 대해 답을 찾지 못한 것이다. 그가 불교, 샤머니즘, 기독교를 하나의 종교로 통합하려는 야릇한 종교적 열정에 시달렸던 것도 이 때문이다.

가장 예리하게 인간의 허영과 심리를 묘파한 소설가 스탕달도 같은 질문을 했다. 알프스를 넘어 피렌체에 들어선다는 생각만으로도 숨이 가빴고 레오나르도,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를 직접 본다는 생각에 그만 식은땀을 흘리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던 스탕달이었다. 스탕달 신드롬이라고 부르는 이 과민반응을 보이며 이탈리아와 예술 속에서 스탕달이 찾은 것은 무엇인가? 그가 찾은 것은 여지없이 깨진 환상의 초라한 실체가 아니라 환상의 위대함이었다. 그는 낭만주의자였던 것이다.



모든 이들은 길을 떠나고 싶어하지만 이 욕망의 저변에는 길에 대한 의문이 아니라 오히려집에 대한 의문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반 고흐 역시 집을 떠나 10년 가까이 길 위에서 헤맨 끝에 마지막 숨을 거두기 직전에 오베르 성당을 그렸다. 아버지처럼 목사가 되려고 했던 반 고흐는 마지막에 상징적인 의미의 아버지의 집을 찾은 것이다. 그림 속에서.



이름만 대도 다들 아는 가방 브랜드에 루이 뷔통이라는 것이 있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19세기 중엽에 탄생한 회사인데, 당시 증기선이 떠다니고 철도가 부설되면서 불어 닥친 부호들의 여행을 위해 트렁크를 제작하는 기업이었다. 당시 부호들은 신혼여행도 서너 달씩 떠나곤 했고 대부분 여행지는 이탈리아였다. 피렌체, 로마, 베네치아 그리고 무엇보다 나폴리 인근의 폼페이와 카프리 섬은 필수 코스였다. 자연히 옷과 각종 필수품들을 챙겨가지고 떠나야 했고 어마어마한 크기의 가방들이 필요했다. 루비 뷔통은 이때 뚜껑이 둥근 기존의 가방 대신 차곡차곡 쌓을 수 있는 직사각형의 대형 트렁크를 제작해서 히트를 쳤다.

19세기 이전의 여행은 일반인들로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다. 여행은 단지 귀족 자제들이 귀족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로서 꼭 거쳐야 하는 코스였다. 물론 옛날부터 일반인들에게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 목숨을 걸어야 하는 순례여행이었다. 현재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지에 남아있는 수많은 수도원과 부속 성당들은 중세의 유명한 순례지였던 에스파냐의 산티에고 델 콤포스텔라로 가는 길목에 건설된 것들이다. 당시 순례객들은 모두 옷에 조개를 달고 있었고 이 마크만 있으면 잠자리와 음식을 대접받을 수 있었다. 조개는 야고보 성인의 시신이 조류에 실려 왔을 때 해안에 무리 지어 나타난 조개 때문에 생긴 상징이며, 10세기 말에 그 무덤이 발견되어 무어인을 물리치는 레콩키스타로 불리는 에스파냐의 국토회복운동의 도화선 역할을 했다. 지금도 세계에서 몰려오는 수많은 순례객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따라 도보 여행을 한다. 개중에는 고행을 하는 이들도 볼 수 있다.

▲ 엠마오의 만찬-카라바조, 옷에 조개를 달고 있다

귀족 자제들의 유럽일주 여행은 18세기 중엽부터 크게 유행을 했다. 이를 그랜드 투어 혹은 불어로는 그랑 투르Grand Tour라고 부를 정도로 거의 명사화 되어있다. 젊은 귀족들에게 그랑 투르는 프랑스 궁정과 이탈리아의 고대 문화를 접해보고 영어 이외의 다른 언어를 실습해 보는 요긴한 기회였고 그러면서 각 나라 귀족들과의 친목을 도모하는 초보적인 외교의 의미도 갖고 있었다. 
 
▲ 이탈리아 여행 중인 괴테의 초상 (티슈바인)

현재 영국 여러 곳에 남아있는 팔라디오 양식이나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들은 대부분 이러한 유럽일주 여행의 결과로 태어난 것들이다. 또 파리 인근의 베르사유 궁이 유럽 각국, 특히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의 왕궁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도 이 그랑 투르의 영향 덕택이었다.



멀지 않은 미래에 기차를 타고 육로를 통해 에스파냐의 산티아고를 갈 수 있는 날이 열릴 것이다. 아니 지금도 비행기만 타면 얼마든지 갔다 올 수 있다. 에스파냐뿐만이겠는가. 세계 어디라도 갈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중요한 것은 ‘모두를 다 보겠다’는 환상 속의 세계일주가 아니라 여행의 질을 확보하는 것이다. 모든 이들이 괴테처럼 <이탈리아 기행>을 남길 수는 없지만, 정확하게 알고 떠나야 하며 깊게 느끼고 돌아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즉흥적인 여행을 피하고 대략적이나마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 이 계획에는 여행 경비를 포함해 문화 예술에 대한 예습도 포함될 것이다.

EU와의 FTA가 체결되면 가장 각광받을 직업 중 하나가 투어플래너라는 예측이 나와있다. 즉 여행을 계획해 주는 직업이 생길 것이며 여행사들에서는 이 인원을 확보하려고 경쟁이 일어날 것이다. 해외 여행은 깃발 부대로 통칭되는 이전의 단체 여행에서 빠른 속도로 테마 여행으로 옮겨갈 것이며 승패는 여행 콘텐츠에서 갈릴 것이다.

나아가 여행은 갈수록 모바일화 될 것이다. “죽을 때 가장 갖고 가고 싶은 물건”으로 꼽힌 휴대폰, 이제 여행 콘텐츠를 이 휴대폰으로 받아 볼 수 있는 시대가 성큼 다가온 것이다. “죽기 전에 가장 하고 싶은” 세계일주를 “죽을 때 가장 갖고 가고 싶은 물건”으로 하는 시대가 21세기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여행 산업은 양이 아니라 질, 즉 여행, 문화, 예술 콘텐츠에서 승패가 갈릴 것이다. 이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할 것이며, 무엇보다 저작권 문제로 인해 자체 콘텐츠를 확보하는 일이 시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