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 불확실성 해소된 낸드 시장, 4세대 新경쟁체제로

by이재운 기자
2017.06.26 08:37:36

日 정부, 국민정서 업고 도시바 증산 추진 가능
美 웨스턴디지털 기술 분화 가능성 검토도 변수로
4세대 중심 시장 재편..속도조절하며 新 질서 등장

삼성전자의 4세대 V낸드플래시와 이를 기반으로 한 SSD 제품. 삼성전자 제공

[이데일리 이재운 기자] 도시바메모리 인수전이 사실상 마무리되면서 ‘슈퍼사이클’ 속 낸드플래시 시장이 다시 요동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공급 증가가 예상되는 가운데 업체들이 4세대 3D 낸드플래시 비중을 확대해 신제품 개발 속도를 조절해가며 새로운 질서를 만들 것으로 보인다.

26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3D 낸드 제품의 비중 확대와 도시바 인수전 진척에 따라 낸드 시장에도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도시바의 위축에 따라 수급이 빠듯했던 상황에서 공급이 다소 늘어나는 변화가 오고, 여기에 새로운 적층 기술 경쟁과 업체 간 관계 변화로 복잡한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주춤하던 도시바, 日 국민정서 타고 공급 확대 추진

3D낸드는 평면 위에 여러 단을 수직으로 쌓아서 만드는 3차원(3D) 구조의 낸드 제품이라는 의미에서 붙은 명칭이다. 같은 땅 위에 단독주택 형태로 짓던 것을 아파트 같은 고층 공동주택으로 올리는 셈인데, 그 높이가 아주 미세해 층고 제한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낸드 시장은 그 동안 엄청난 호황을 구가해왔다.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제조사들이 2D 낸드에서 3D 낸드로 생산라인을 전환하며 생긴 공급 부족이고, 또 하나는 도시바메모리가 모기업의 회계 부정에 따라 휘청이면서 설비 확충 같은 증설 투자에 나서지 못한 점이 함께 작용했다. 월터 쿤 IHS마킷 선임연구원은 “낸드 시장 수급이 ‘극히 빠듯하다(extremely tight)’”며 “2분기에도 이 같은 상황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도시바메모리가 21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한·미·일 연합 컨소시엄에 매각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일본 정부와 금융사들이 주도하는 컨소시엄은 일본의 ‘국민 감정’을 고려해 설비 투자를 늘려 증설에 나설 확률이 높다. 일본은 지난 2014년 D램 분야의 유일한 업체였던 엘피다가 미국 마이크론에 흡수된 뒤 메모리 분야에서 유일하게 도시바 만이 홀로 남아있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시장 내 입지를 살리기 위해서 공격적인 태세를 취할 확률이 적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낸드 수요는 여전히 견조하지만, 도시바메모리 등 업체들이 공급을 늘리면 지금보다는 호황이 둔화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분노한 웨스턴디지털, 새로운 불확실성 요인으로

도시바와 연합전선을 펴다 이번 매각을 계기로 사이가 틀어진 웨스턴디지털도 변수다. 웨스턴디지털은 그 동안 도시바와 공동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생산도 같은 라인에서 해왔다. 하지만 이번 매각 결정으로 SK하이닉스(000660) 가 투자자로 관여하게 되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당장 21일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발표 직후 내놓은 반박 성명에서도 ‘SK하이닉스와 베인캐피털이 이끄는 컨소시엄’의 참여를 거론하며 국제상업회의소(ICC)에 분쟁조정신청을 낸 상태다. 이 조정의 결과에 관계없이 웨스턴디지털은 향후 도시바메모리와 다른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크다. 서로 간의 신뢰관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다만 단기간에 새로운 기술 개발에 돌입할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현재 등장해 이제 막 시장을 넓혀가고 있는 이른바 ‘4세대 제품’이 본격화되는 동안은 현재 개발 소식을 전한 기술 위주의 시장 전개가 예상된다.

올 1분기 낸드플래시 시장 현황(매출 기준). 점유율을 보면 삼성전자가 35.4%, 웨스턴디지털이 17.9%, 도시바메모리가 16.5%, 마이크론이 11.9%, SK하이닉스가 11.0%를 각각 차지했다. D램익스체인지 제공

◇“64단이 최적” 4세대 시대 당분간 지속

웨스턴디지털의 시바 시바람(Siva Sivaram) 메모리사업부 전무(EVP)는 최근 미국 반도체 전문매체 EE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64단 적층은 우리가 (기존)2D낸드와 비교해 경쟁 우위를 갖출 수 있는 첫 번째 지점”이라며 당분간 이를 넘는 적층 기술의 양산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삼성전자도 현재 64단에 이어 96단 적층 기술을 연구, 개발 중인데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이는 적층 단수 증가에 따라 생산 비용이 올라가고, 기존 제품의 판매량에 악영향을 주는 자기잠식(Cannibalization)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005930) 는 최근 공식 발표를 통해 올해 안에 64단 적층 4세대 제품의 월간 생산 비중을 50% 이상으로 높이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다른 주자들보다 늦은 올 하반기 중반부터 양산을 본격화하는 가운데 도시바메모리와의 협력 등으로 뒤쳐졌던 차세대 제품 개발에 필요한 시간을 벌게 된다.

이처럼 속도 조절은 있겠지만, 적층 기술의 발전은 계속될 전망이다. 비단 메모리반도체뿐 아니라 다른 영역으로 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업체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의 개리 디커슨 회장은 최근 서울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3D 낸드의 확산에 따라 관련 시장은 3배 이상 늘어났다”며 “새로 등장하는 인공지능(AI) 분야 칩의 겨우 현재는 물리적 한계가 있지만, (적층 기술을 통해)혁신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