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유명세에 시끄럽고 임대료 뛸라…`혐핫` 퍼지는 홍은·청파동

by최정훈 기자
2019.01.21 08:51:45

"동네 소란해지고 단골집 뺏겨"…`핫플레이스 혐오증`
일부 상인들 “유명세에 임대료 오를까 봐 겁나”
전문가 "건물주와 임차인 상생 방안 마련 필요"

지난 14일 서울 용산구 청파동의 한 냉면집 앞에서 시민들은 미세먼지 경보가 내린 날씨에도 줄을 길게 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사진=최정훈 기자)


[사진·글=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미세먼지 경보가 발령된 지난 14일 오전 11시 서울 용산구 청파동에 위치한 유명 냉면집 앞에는 수십명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소개한 청파동 거리에는 탁한 공기에도 삼삼오오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청파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김모(44)씨는 이런 상황이 마냥 달갑지 않다고 말했다.

김씨는 “예능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우리 가게에도 손님이 늘었다”면서도 “동네가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고 말하는 주민들도 있는데다 인기가 많아져 임대료가 상승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든다”고 말했다.

최근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홍은동과 청파동을 찾는 방문객들이 급격하게 늘면서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일부 상인들도 유명세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낙후됐던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을 우려하며 본인의 동네나 가게가 유명세를 타는 걸 꺼리는 이른바 `혐핫` 현상이 퍼지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과 용산구 청파동은 SBS의 인기 예능프로그램인 `골목식당`에 소개되면서 유명세를 얻었다. 특히 홍은동의 돈가스집과 청파동 냉면집은 프로그램 내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고 동네를 찾는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늘었다.

하지만 청파동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갑작스런 유명세가 달갑지 않다는 입장이다. 청파동에 거주한다는 장모(55)씨는 “이른 아침부터 냉면집에서 식사하려는 사람들로 동네가 소란스럽다”며 “방송이 나간 이후로 조용할 날이 없는 것 같다”고 전했다. 김모(35)씨도 “냉면집은 집 근처여서 자주 찾아갔던 단골 가게인데 요즘엔 먹을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15일에 만난 홍은동 주민들은 소란해진 동네 분위기에 불안하다고 했다. 10년째 거주했다는 정모(48)씨는 “이쪽 동네는 서울의 외곽에 있어서 조용했었다”며 “방송이 나간 이후 새벽에 사람들이 가게 앞에 진을 치고 있는 모습을 보면 ‘혹여나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불안하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 9일 오전에 돈가스를 판매하는 식당 앞에서 줄을 서 있던 방문객들 간에 다툼이 벌어져 해당 식당이 영업을 중단하기도 했다.

지난 14일 서울 용산구 청파동의 한 햄버거 집 앞에는 주민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예약제로 손님을 받고 있다.(사진=최정훈 기자)
주민들이 소란스런 분위기와 빼앗긴 단골집에 `혐핫`을 한다면 상인들은 다른 이유로 늘어난 발걸음이 마냥 즐겁지 않다. 유명세를 얻은 동네에서 임대료 상승으로 원주민이 내몰리는 젠트리피케이션이 그 이유다. 대표적인 예로 이태원은 이국적인 분위기로 유명세를 얻어 방문객들이 늘었지만 상가 임대료가 최근 3년간 10.16%로 서울 지역 평균의 6배나 올랐고 상가의 공실률도 21%에 달했다. 전통문화가 남아 있어서 유명세를 얻은 서울 종로구 삼청동과 익선동도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 중이다.

홍은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김모(48)씨는 “요즘은 동네가 조금만 뜬다는 말만 돌아도 임대료 오를 걱정부터 든다”며 “유명세로 하루에 손님 20여 명을 더 받는 것보다 임대료가 안 오르는 게 훨씬 낫다”고 말했다.

공인중개사들은 청파동과 홍은동 모두 임대료나 월세가 오르지는 않았지만 건물주 등의 임대료 상승 문의가 늘어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청파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청파동은 원래 임대료 수준이 낮지 않아 오를 기미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면서도 “방송 이후에 건물주 등의 문의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두려움을 느끼는 상인들에게 제도적인 보호막과 건물주와의 상생전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한번 유명세를 탔다고 반드시 젠트리피케이션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현상 자체가 지역 상권 활성화 자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적은 자본을 가진 상인들이 많은 자본을 가진 기업들에게 상권을 잠식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남승하 숙명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상인의 생존권까지 위협하지 않도록 촘촘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성동구청이 건물주와 임차인의 상생협약을 주선해 임대료 상승을 막았듯이 지방자치단체 등이 건물주와 임차인이 상생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적극적으로 실행해야 한다”고 전했다.

혐오(嫌惡·싫어하고 미워함)와 핫플레이스(Hot Place·인기있는 장소)가 합쳐진 말이다. 특정 장소가 지나치게 인기를 끌면서 사람이 한꺼번에 몰리는 것에 염증을 느끼는 것을 일컫는 신조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