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mp 2020) ICT 퀀텀점프!-③LGT "통신선을 사과나무로 바꿔라"

by함정선 기자
2010.04.07 10:24:19

[이데일리 창간10주년 특별기획]
탈통신 20개 프로젝트 가동..통신망 활용해 새로운 사업 창출
이상철 부회장 "빨랫줄에 불과한 통신선에 주렁주렁 열매가 열리게 하자"

[이데일리 함정선 기자] 올해 초, 서울 영등포에 위치한 CGV 영화관. 수행원과 함께 말쑥한 정장 차림의 중년 남성들이 속속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이들은 기업 임원회의같은 분위기속에 진지하게 영화를 관람했다. 
 
이 범상치 않은 풍경을 연출한 이들은 다름아닌 LG그룹 사장단. 이들은 영화관을 통째로 빌려 3D 영화 붐을 일으킨 아바타를 관람했다. LG그룹 사장단이 함께 아바타를 감상한 것은 이상철 LG텔레콤 부회장의 제안 때문이다.
 
특이한 것은 이상철 부회장이 아바타 관람을 제안한 첫번째 이유가 `3D기술이나 콘텐츠`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 부회장은 아바타를 통해 우선 `탈(脫) 영역`을 배워야 한다고 제시했다. 아바타가 국내에서만 1330만 관객을 동원한 힘의 원천은 `영역을 벗어나려는 노력 때문`이라고 봤다.
 
그는 "아바타는 그래픽 영화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사람의 연기까지 담으려 노력했다"며 "이 노력이 탈 영역, 탈 통신의 기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이미 지난 1월 취임 직후 "탈(脫)통신으로 통신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겠다"고 공표했다. 

◇변화에서 기회를 찾다

LG텔레콤은 그동안 통신시장에서 만년 3위란 꼬리표를 달고 KT·SK텔레콤과 힘겨운 싸움을 해왔다. 가입자수·매출·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마케팅 비용 싸움에서 번번히 밀렸다.
 
그러나 최근 상황이 바뀌었다. 스마트폰 도입, 무선인터넷 활성화로 가입자나 점유율 경쟁이 더 이상 통신시장 이슈가 아니기 때문이다. 통신망을 기반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며 시장을 장악했던 기존 사업모델로는 콘텐츠를 무기로 일어선 구글·애플에 대항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이에 따라 LG텔레콤은 다른 노선을 택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경쟁사들과 무리한 가입자 확보 경쟁을 펼치기 보다, 탈통신을 앞세워 새로운 사업을 개척하겠다는 전략이다.
 
이와 관련 LG텔레콤은 경쟁사인 KT·SK텔레콤보다 빠르게 새로운 사업을 전개하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LG텔레콤의 이점을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KT와 SK텔레콤은 스마트폰 활성화가 이슈가된 후에야 무선인터넷 활성화를 위한 요금제를 내놓았지만 LG텔레콤은 이전부터 월 6000원에 무선인터넷을 마음껏 사용하는 `오즈` 브랜드를 앞세워 무선인터넷 사용을 장려해왔다.
 
KT와 SK텔레콤이 무선인터넷 정액제 도입에 앞서 가입자당 매출이 줄어드는 것을 고민하고 있을 때, 상대적으로 가입자가 적었던 LG텔레콤은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20개 프로젝트 가동.."통신선을 사과나무로 바꿔라"

이상철 부회장 또는 LG텔레콤의 탈통신은 무엇일까.
 
말 그대로 통신사업을 벗어나는 것이다. 가입자를 유치해 통신망을 이용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존 사업방식을 타 산업으로 확대하는 것이 LG텔레콤이 강조하는 탈통신 전략이다.

이상철 부회장은 "빨랫줄에 불과했던 통신선을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는 사과나무 가지로 바꾸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통신망을 기본으로 두고, 이를 활용한 새로운 사업을 개척하는 것을 뜻한다.

이 부회장은 애플의 전략을 대표적인 예로 들고 있다. 수천개의 게임과 콘텐츠를 펼친 앱스토어에서 고객이 원하는 것을 골라 쓸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이 바로 탈통신의 기본이라는 것.

그러나 LG텔레콤은 앱스토어 전략을 그대로 따라해 애플·구글과 직접적인 경쟁을 펼치지는 않을 전망이다. 통신시장에서 후발주자로 나서는 어려움이 얼마나 큰 지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LG텔레콤 관계자는 "만약 A기업이 영업인력의 위치를 파악하고 그들이 고객과 통화하는 내역을 관리하고 싶다면, LG텔레콤은 기존 통신망에 A기업이 원하는 서비스를 개발해 제공할 수 있다"고 탈통신의 사례를 들었다. 

LG텔레콤은 미디어, 광고, 교육, 유틸리티, 자동차, 헬스케어 등 5대 산업을 중심으로 20개 탈통신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이를 위해 LG텔레콤은 고객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찾고 있다. 다양한 산업 관계자들과 잦은 미팅을 갖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에 앞서 LG텔레콤은 LG그룹의 다양한 계열사들과 탈통신 프로젝트를 진행해 실제 사례들을 만들어낸다는 복안이다.
 
이 과정에서 LG텔레콤은 기업시장에서 쌓아온 경쟁력이 발휘될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특히 합병 전 LG데이콤은 사진인화서비스, 인터넷데이터센터(IDC), 웹하드 등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사업노하우를 갖고 있다.
 

▲ LG텔레콤은 사내 업무 프로세스 개선과 탈통신을 위한 사업 아이디어 확보를 위해 블루보드를 출범했다.


LG텔레콤은 탈통신을 통해 매출경쟁에서 벗어나 기업가치 1위 회사로 거듭나겠다는 목표다. 새로운 목표를 가진 통신기업 이미지를 위해 오는 6월쯤 사명도 변경한다.
 
LG텔레콤은 홍콩의 유무선 사업자인 PCCW를 주목해왔다.

PCCW는 지난 1995년까지 유선전화 가입자 감소로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지난 2003년부터 탈통신 전략을 추진, TV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IPTV를 도입해 지난해 기준 10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하며 통신사업자라는 이미지를 벗고 미디어기업으로 탈바꿈했다.

PCCW는 IPTV로 탈통신의 첫걸음을 뗀 후 통신망을 활용한 다양한 사업을 만들어냈다. 시청자가 입맛에 맞는 채널만 골라볼 수 있는 `알라카르테` 상품을 제공해 미디어 분야서 선두를 달리는 한편 모바일서비스와 양방향 서비스 도입도 앞두고 있다.

LG텔레콤은 이러한 PCCW의 사례를 연구하며 국내 환경에 적합한 창조적인 사업모델을 찾겠다는 방침이다. 
 
◇탈통신 아이디어를 모아라

최근 LG텔레콤 직원들 사이에서는 `마일리지`를 모으는 것이 유행이다. 통신사 직원들이니 통화량을 늘려 통신 마일리지를 모으는 것이 아닌가 싶지만, 그들이 모으는 마일리지는 현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는 특별한 마일리지다.

이 마일리지는 LG텔레콤 직원이 신 사업과 체질개선을 위해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아이디어의 가치와 실용성을 판단해 부여된다. 이 마일리지는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일종의 성과급인 셈이다. 
 
탈통신 프로젝트는 전략조정실내 신설된 등대조직이 담당하지만, 누구나 아이디어를 내고 이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다.
 
▲ LG텔레콤은 탈통신 전략을 추진하기 위해 기존 상품 중심 조직을 고객 중심으로 개편, 체질개선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