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자중심 정산' 주목…음원사재기 해결책 되나

by한광범 기자
2020.02.22 12:00:00

'비례 배분' 산정, 美서도 '가짜 스트리밍' 논란
"이용자 중심 정산, 창작 생태계 도움" 연구 결과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세계 최대 음원 서비스 플랫폼인 스포티파이(Spotify)의 국내 진출 소식이 들려오며 국내 음원 서비스 업계의 치열한 경쟁이 예고되는 가운데, 차트 사재기가 더 심각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주로 차트를 중심으로 음원을 소비하는 패턴상, 스포티파이 역시도 국내에서는 사재기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업계 한편에서는 음원 사재기 논란의 배경에 자리 잡고 있던 저작권료 정산 방식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그동안 사재기 논란은 차트에 올라야 방송 기회 등이 많아지는 연예계 생리의 문제가 지적돼 왔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이면에 자리 잡고 있던 현행 저작권료 정산 방식에 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이미지=픽사베이)
음원 사재기 논란은 약 10여 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간다. 언론보도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건 4집 앨범을 발표한 가수 이루의 사례다. 초반 각종 음반 판매량 집계 사이트에서 순위권에 들지 못한 데다가 온라인 음원사이트에서도 50위 안에 들지 못했다가, 급격하게 1위까지 올라가며 네티즌들의 의혹을 샀다. 이어 2012년에는 한 방송사가 음원차트 순위 조작에 참여한 브로커와의 인터뷰를 통해 실상을 보도하기도 했다.

이후 문화체육관광부의 음원 사재기 근절 대책을 발표하고, 2016년 음악산업진흥법에 음원 사재기 처벌 조항이 추가됐지만, 2018년에도 닐로, 장덕철 등의 동일한 음원 사재기 논란이 이어지며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이어졌다. 비교적 최근에는 가수 박경이 연이은 사재기 실태를 폭로하며 논란이 점차 커져가고 있다.

현재 국내 음원 사업자들이 채택하고 있는 저작권료 정산 방식은 ‘비례 배분’ 방식이다. 개별 음원 서비스 단위로 이용자들이 지출한 총금액을, 다시 전체 이용자들의 총 재생수로 나눈 뒤 1재생당 단가를 산정한다. 여기에 해당 특정 음원의 재생 수를 곱해 지급될 저작권료가 산정된다.

언뜻 단순하고 효율적으로 보이지만 이 방식에는 몇 가지 문제점들이 존재한다. 자신의 음원이 얼마냐 재생됐느냐와는 관계없이, 총 재생 수에 비례해 천편일률적인 저작권료가 매겨진다는 점이다. 자연스레 차트 상위권 진입을 위한 각종 어뷰징이나 사재기 현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개인 이용자가 지불한 사용료 중 65%에 해당하는 저작권료가, 실제로 자신이 청취한 뮤지션들보다 실시간 인기 차트 상위에 속한 뮤지션들에게 더 많이 돌아간다는 의미다.

이용자 입장에서도 문제점이 있다. 자신이 실제로 듣지 않은 음원에 대해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구조적 문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해당 정산체계는 톱100 차트 등 실시간 차트를 중심으로 특정 음원이 많이 재생되는 현행 음원 서비스를 공고히 할 뿐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비단 국내에서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 세계 최대 음악 콘텐츠 시장인 미국에서도 음원 플랫폼 스포티파이에서의 음원 사재기와 같은 ‘가짜 스트리밍(fake streaming)’ 현상을 두고 래퍼 프랜치 몬타나(French Montana)’와 50센트의 설전이 있었다.

이 때문에 해외에서는 기존 저작권료 배분 방식에 대한 대안 모델에 대한 연구와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가장 유력한 대안은 일명 ‘이용자 중심’ 정산 방식이라고 불리는 모델이다. 해당 모델에 대한 연구는 2014년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의 안트 마스(Arnt Maasø) 와 덴마크 로스킬레(Roskilde) 대학의 라스무스 렉스 필러슨(Rasmus Rex Pedersen)에 의해 처음으로 시작돼 특히 북유럽 지역에서 논의가 활발히 진행돼 왔다.

해당 모델의 핵심은 ‘1인당 재생 수’를 기준으로 삼는다는 점에 있다. 개인 이용자의 지출 금액을 해당 개인의 월별 재생수로 나눠 1곡당 단가를 산정하고, 이 곡당 단가에 해당 음원의 재생 횟수를 곱해 저작권료를 최종 확정하는 형태다. 즉, 이용자가 재생한 곡의 저작권들에게 저작권료가 오롯이 지급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실제 창작 생태계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 연구 결과로 증명되기도 했다. 2017년 핀란드 음악가협회(Finnish Musicians’ Union)가 스포티파이 프리미엄 회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비례배분 방식에서는 상위 0.4%의 음원이 전체 저작권료의 10%를 차지하는 반면, 이용자 중심 정산 방식에서는 상위 0.4%의 음원이 5.6%만 차지하는 등 쏠림 현상이 줄어들고 보다 다양한 음원에 수익 배분이 가능하다고 발표했다.

예를 들어 지난달 8000원을 내고 총 100곡을 청취한 이용자 A씨의 상황을 가정해보자. A씨는 총 50회를 자신이 좋아하는 인디뮤지션 B그룹의 음원을 청취했는데 전체 이용자들의 총 재생수에 합산되다 보니 A씨가 낸 사용료 중 저작권료의 대부분은 인디뮤지션 B그룹보다 차트 상위 뮤지션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이용자 중심 정산방식에서는 조금 다르다. 이용자 A씨의 8000원 중 저작권료(65%)로는 5200원이 책정되고, 이 중 저작자 및 실연자에게는 1340원(16.75%)이 돌아가는 것까지는 동일하다. 하지만 B그룹의 음악만 100회 중 절반인 50회를 재생했다면 50%에 해당하는 670원이 오롯이 인디뮤지션 B그룹에게 돌아가게 된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정산방식이 더 세분화되는 탓에 다소 복잡해지지지만, 이용자 중심 정산 방식이 보다 공정한 대안이라고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프랑스 음원 사이트 ‘디저’ 홈페이지에서 제공되고 있는 기존 음원 정상 방식과 이용자 중심 정산 방식 차이.
해당 모델을 실제로 도입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2017년부터 해당 모델에 대해 연구해오던 프랑스의 음원 사이트 디저(Deezer)는 2020년 초 해당 방식을 도입한 파일럿 테스트 진행을 선언했다. 미국에서도 지난 2016년 애플이 미국 저작권 사용료 위원회에 유사한 수익 배분 방식을 제안했으나, 도입이 되진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사재기 이슈는 차트 위주의 음원 서비스에서 필연적으로 생기는데, 이는 현재 사업자들이 도입하고 있는 저작권료 정산 방식과도 관련이 있다”며 “초기와 달리 다양한 부작용들이 감지됐고 생태계 다양화 관점에서도 보다 정산 방식을 정밀하게 다듬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