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김영란으로 핑계대지 말자

by고규대 기자
2016.09.29 08:30:40

[이데일리 고규대 연예스포츠부장] 김영란을 만난 지 하루가 됐다. ‘김영란 법(부정청탁및금품등수수의금지에관한법률)이 28일 시행됐다. 김영란은 올해 공직자(라고 쓰고 언론이라 읽는다)의 입에서 자주 오르내린 이름이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영희를 만난 이후 ‘영란’만큼 회자되던 이름이 있었나 싶다.

부패청산이라는 김영란 법의 입법 목적은 사랑스럽다. 국제투명성기구의 CPI(부패인식지수)는 168개국 중 37위(56점)에 그치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대만 홍콩보다 못한 수준이다.그렇다 하더라도 웬만한 행동 하나하나를 법의 테두리 안에서 지켜야 한다는 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직무수행, 사교, 부조 목적 등에 한해 3만 원 미만의 식사 대접, 5만 원 이하의 선물, 10만 원 이하의 경조사비(축의금, 조의금, 화환, 조화 등)를 허용한다는 조항을 지키는 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얻어먹거나 부정청탁을 하려는 자에게만 불편할 뿐이다. 다만, 나도 모르게 받게 된 택배 때문에 귀찮아질 수도 있고, 공소시효가 5년이라니 하지도 않은 일로 5년 후에 괴롭힘을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성가시다.

언론 매체에서는 금품수수와 부정청탁 금지를 놓고 하나하나 사례별로 예상을 하기도 한다. 영화 VIP시사회 취재도 못 가는 것 아니냐, 홍대에서 열리는 가수 쇼케이스에 참석해도 되느냐는 후배의 질문을 받곤 한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건네는 말이 있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는데, 상식선에서 생각하면 될 일이다.” 입법권자의 의지에 따라 적혀 있는 것외에 웬만하면 안된다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제어를 했으니 당분간 웬만한 건 조심하면 된다.



김영란법은 한편으론 그동안 짓눌렀던 이상한 업무의 해방을 의미한다. 일반인이 모르는 기자의 또 다른 업무가 있다. 취재 외에 각종 민원(이라고 쓰고 청탁이라고 읽는다)의 해결사였다. 의학 담당기자라면 입원실을 빼달라는 부탁부터, 산업 담당기자라면 비행기 티켓 예약을 도와달라는 전화를 받고 한다. 대중문화 담당기자는 매진사례인 유명 아이돌 가수의 콘서트 티켓을 구해달라는 민원, 뮤지컬 좋은 좌석을 예약해달라는 요청 등으로 시달린다. 김영란 덕분에 모두 사양할 수 있게 됐으니 다행이다.

변화는 생각보다 클 것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인맥을 통해 이뤄지던 이른바 청탁이 사라지는 게 오히려 큰 변화다. 금품이 오가면서 그에 걸맞은 계약관계가 선행되어야 하고,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우대를 받을 생각을 저버려야 한다. 특히 김영란 법에서 규정한 공직자의 범위를 넘어 공직자와 연관 있는 국민 모두의 의무라는 걸 자칫 잊어서는 안 된다.

김영란 법은 애초 고위 공무원과 정치인이 대상자였다. 이후 언론과 사립학교 교직원들도 포함돼 민간 부문까지 확대됐다. 언론과 교육이 바로 서야 한다는 게 입법권자의 의지이자 헌법재판소의 합헌 이유다. 언론인으로서 부당한 정책을 옹호하는 ‘보호견(가드 도그)’이 아닌 ‘감시견(워치 도그)’로 되살아나야 한다. 앞으로는 사회적 영향력이 높은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와 변호사 등 법률 전문가 등 공적기능 종사자로 적용 범위를 넓혀야 하는 것도 과제다. 입법 과정에서 삭제된 이해충돌 방지조항을 되살려 공직자가 4촌 이내의 친족과 관련된 업무를 할 수 없도록 직무에서 배제하는 것도 필요하다.

부정한 금품과 청탁을 금지하는 게 입법 취지다. 인간의 접촉을 끊자는 게 아니니 자기 부담으로 만날 사람을 만나고 먹어야 할 음식은 먹으면 된다. 그러니 영화 ‘아수라’ 시사회에서 황정민을 만나야 하고, 에이핑크 쇼케이스에서 보미를 찾아야 한다. 김영란이 ‘핑계’의 다른 이름이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