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시장, 내년 역성장?…기업들 하반기 위기 타개책은

by최영지 기자
2022.08.15 13:39:16

올 하반기 PC·모바일 구매 수요 둔화
가트너, 올해 반도체시장 성장률 하향조정..13.6%→7.4%
서버용 메모리 수요 견조 전망에 기술경쟁 치열
고성능 낸드 토대로 eSSD 주력..DDR5 가격 반등 기대

[이데일리 최영지 기자]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 우려가 심화하며 팬데믹 호황을 누리던 반도체 산업에 빨간불이 켜졌다. 미국 반도체기업들이 하나둘 올해 2분기와 3분기 실적을 기존보다 하향조정하는가하면 시장조사기관들도 반도체 산업이 역성장 가능성을 점치고 있어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정보기술(IT) 기기 구매가 둔화하는 상황에서도 수요가 견조할 것으로 보이는 데이터센터용 메모리반도체 수익성 확대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최근 불거진 낸드플래시 적층경쟁과 초미세공정을 통한 D램 개발 등이 업계 내 기술력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포석으로 읽히며 고부가제품 개발·양산 경쟁이 격화할 것이라는 게 업계 전망이다.

인플레 우려·D램값 하락…얼어붙는 반도체 시장

15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반도체 시장 전망은 밝지 않다. 반도체 산업이 전 세계적 반도체 공급난에 이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 코로나 봉쇄, 초인플레이션 우려 등 여러 외부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이같은 이유로 올해 세계 반도체 시장의 성장률을 하향 조정했다. 전 세계 반도체 매출 증가율 전망치를 직전 분기에 발표한 기존 13.6%에서 7.4%로 하향 조정한 것으로, 지난해 반도체 시장 성장률 26.3%와 비교해 대폭 낮아진 수준이다. 또 내년까지 약세가 지속할 것이며 2023년 반도체 매출은 올해 대비 2.5% 감소할 전망이라고 했다.

미국 굴지의 반도체기업들도 올해 2, 3분기 실적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미국 최대의 메모리반도체기업이자 세계 5위 반도체기업인 마이크론은 지난 9일 공시를 통해 올해 6~8월 실적 전망을 하향했다. 마이크론은 6월 말 실적 발표 당시 6~8월 매출 전망치가 68억~76억달러(약 8조9000억~9조9000억원)라고 예측했지만 이 전망치의 하단을 밑돌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엔비디아도 2분기 매출이 67억달러(약 8조7000억원)로, 시장 전망치인 81억달러(약 10조5000억원)보다 17% 낮아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우리나라 상황도 다르지 않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10일 반도체 수출액(통관기준 잠정치)은 20억9100만달러(약 3조900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1% 줄었다. 반도체 수출 증가율은 지난 3월(36.9%) 이후 감소세를 보이다 지난 7월 반도체 수출액이 2.5% 증가에 그친 상황이다. 정보기술(IT) 기기에 대한 수요가 줄면서 메모리 가격이 하락한 여파를 고스란히 받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 등 우리 기업들 역시 2분기 실적발표에서 이 같은 대외 악재를 언급한 바 있다. 특히 D램값이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어 ‘반도체 겨울’이 현실화하는 분위기다.

▲최근 SK하이닉스가 공개한 238단 세계 최고층 낸드플래시(왼쪽)와 삼성전자가 선보인 CXL 차세대 인터페이스 기반 ‘메모리 시맨틱 SSD’ (사진=SK하이닉스·삼성전자)
‘고부가가치’ 제품이 결국 경쟁력…DDR5·eSSD 수익낼까



수요 감소가 전망되는 PC, 모바일 등 소비자 제품과 달리 서버의 경우 하반기에도 수요가 견조할 것으로 보인다. IBK투자증권은 “PC시장은 특히 소비자, 교육시장에서 수요가 둔화됐고 코로나로 인한 중국지역 봉쇄로 모바일 시장이 둔화됐다”면서도 “기업 시장은 유일하게 전망이 밝으며 올해 하반기까지 안정적인 수요가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다만 현재 대외 상황이 유지될 경우 기업 시장의 둔화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특히 메모리업체들은 대규모 서버 및 데이터 구축에 필요한 저장장치인 고성능·고용량인 기업용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eSSD) 개발·양산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최근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 등 메모리반도체 생산업체들의 낸드 적층경쟁이 치열한 양상을 보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기술력으로 고객사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차세대 낸드 제품의 원가 절감과 공정 개선이 앞으로 시장점유율 확대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했다.

앞서 SK하이닉스는 지난 3일 세계 최고층인 238단 낸드플래시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마이크론 역시 232단 낸드 개발에 이어 데이터센터용 176단 낸드플래시 SATA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5400도 출시했다.

전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 1위인 삼성전자는 여유로운 모습이다. 단을 높이 쌓아올리는 방식으로 제품 성능을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데이터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시대를 내다보고 고객사 입장에서 필요한 대량의 데이터 이동·저장·처리·관리 최적화 솔루션을 마련했다는 게 삼성전자 측의 설명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올 하반기 eSSD 등 고부가 낸드제품의 각사 매출 비중을 통해 향후 실적을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올해 삼성전자 반도체 영업이익의 28%를 차지하는 낸드 부문은 하반기 20% 이상 가격이 하락해도 원가구조 개선 효과로 영업이익률이 20% 이상 유지될 것”이라며 “4분기 적자전환이 예상되는 경쟁사 대비 차별화된 수익성을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처리장치(CPU)의 연산을 돕는 메모리반도체 D램의 경우, 가격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DDR5로의 세대 교체를 통해 반등을 노려볼만 하다. 인텔과 AMD가 올해 하반기 데스크톱과 노트북용 CPU에 이어 서버용 CPU 등 새 프로세서를 출시할 계획이다. 해당 CPU는 모두 차세대 D램 규격인 DDR5를 지원한다. DDR5는 DDR4 대비 평균판매가격이 30% 비싸 이를 양산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입장에서 수익개선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양사 모두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활용해 10㎚(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급 D램 양산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