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는 숏컷이 국룰"…낙인찍기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by공예은 기자
2021.09.19 21:40:55

[20대에게 젠더란]②
"원래 페미는 숏컷에 아무것도 안 꾸미는 게 국룰"
'숏컷=페미니스트' 인식 2018년부터 시작
전문가, "외적 요소로 검열로 페미니즘 배척 의도"

"탈코르셋 하는 페미들 때문에 숏컷 이미지 망가져", "여대에 숏컷이면 페미니스트"

(사진=이미지투데이)

지난 도쿄올림픽 당시 양궁 국가대표이자 금메달리스트인 안산 선수는 쇼컷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페미니스트 아니냐는 의혹을 샀다. 안 선수가 별다른 해명없이 이를 무시하자 온라인상에서 '페미' 낙인찍기가 이뤄져 논쟁이 벌어졌다. 유명 치어리더인 하지원도 숏컷을 했다가 비슷한 곤혹을 치렀다.

'숏컷=페미니스트'라는 편견과 이를 근거로 한 비난은 역풍을 맞았다. 구혜선, 황혜영 등 연예인들과 심상정, 류호정 등 정치인들이 SNS를 통해 숏컷 커밍아웃에 나섰다.

이한상 고려대 교수가 당시 숏컷을 비난하는 일부 몰지각한 네티즌을 향해 던진 일침은 정곡을 찌른다.

이 교수는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게 여자들 히잡, 차도르, 부르카, 니캅 안 쓰면 총으로 쏴버리자는 극렬 무슬림들과 뭐가 다른 건가. 서울에서 까불지 말고 아프카니스탄으로 가 탈레반이나 되든지"라고 비꼬았다.

2018년부터 이어진 탈코르셋 붐에... '탈코르셋=페미니스트' 인식 생겨

'숏컷=페미니스트' 편견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탈코르셋 운동 붐이 일었던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탈코르셋 운동은 짙은 색조화장이나 렌즈, 긴생머리 등 일반적으로 '여성스럽다'고 규정한 것들을 거부하는 운동이다.

2018년 6월 여성 시민단체 '불꽃페미액션'은 서울 강남구 역삼동 페이스북코리아 사옥 앞에서 상의탈의 시위를 했다.

이 단체가 '월경페스티벌' 행사에서 노브라 운동 실천과 여성의 몸에 부여되는 음란물의 이미지에 저항하기 위해 가슴을 드러낸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지만 페이스북코리아에서 이를 '나체 이미지 또는 성적 행위에 관한 페이스북 규정을 위반했다'며 사진을 삭제하고 계정 1개월 정지 처분을 내렸기 때문이다.

(사진=연합뉴스)

이들은 남성의 가슴은 삭제나 모자이크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반면 여성의 가슴은 음란물로 규정되는 것이 차별적 규정이라고 주장하며 몸에 한 글자씩 '내 몸은 음란물이 아니다'라는 문구를 작성한 후 상의탈의를 했다.

그 결과 페이스북코리아는 삭제한 게시물을 복원하고 사과 입장을 불꽃페미액션에게 전했다.

이때부터 여성들 사이에서 탈코르셋 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됐다.

트위터에 '탈코르셋_인증'을 검색하면 숏컷을 한 자신의 모습, 잘려나간 머리카락, 화장품을 깨부순 사진 등을 찾아볼 수 있다. (사진=트위터)

SNS를 중심으로 긴 머리를 짧게 자른 모습, 잘려나간 긴 머리카락, 화장품들을 깨부순 사진 등을 '탈코르셋_인증' 해시태그와 함께 올려 탈코르셋 운동이 급속도로 번졌다.

일반인들 뿐만 아니라 방송·연예계에서도 탈코르셋 운동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잇따랐다.



지상파 여자 아나운서 최초로 안경을 쓰고 뉴스를 진행한 MBC 임현주 아나운서는 자신의 SNS에 "처음으로 속눈썹을 안 붙이고 방송을 했다"며 "안풀메이크업을 했을 때도 속눈썹 없이 해보니 눈이 한결 편안하고 생각보다 큰 차이가 없는 듯 하다"고 토로했다.

심지어 유명 뷰티 유튜버 '데일리룸 우뇌'는 '탈코르셋을 하고 뷰티 유튜브를 내려놓으려고 합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숏컷을 하고 등장해 앞으로 뷰티 영상을 올리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숏컷'을 검색하면 나오는 글이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이같은 움직임이 확산하면서 '탈코르셋=페미니스트'라는 편견이 고착화했고, '탈코르셋'을 숏컷과 동일시 하는 사람들들이 늘어났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지하철에서 오늘 여대 과잠+숏컷 안경+바지+화장 안 한 사람 봤는데 그쪽(페미니스트) 맞지?', '우연히 뭐 검색하다가 지인 블로그 찾았는데 되게 예쁘장하고 탈코도 안 하는 앤데 페미하네... 원래 페미는 숏컷에 아무것도 안 꾸미는 게 국룰 아님?' 등 단지 여성의 외적 요소만으로 검열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지난 2018년 11월 이수역 근처의 한 주점에서 남성과 여성 일행이 몸싸움을 벌인 사건이 남녀갈등으로 번졌다.

사건 당사자 여성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화장을 하지 않고 머리가 짧다는 이유로 메갈이라며 남성에게 폭행을 당했다'라는 내용의 글을 피해를 입은 사진과 함께 올려 여성혐오 범죄로 논란이 커졌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이수역 폭행사건의 철저한 수사와 진상규명을 촉구합니다'라는 취지의 글이 올라왔고, 당시 36만여명의 동의를 얻었다.

또한 트위터를 중심으로 '내가_탈코러다'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이수역 폭행 사건 피해자 여성에 연대한다는 뜻으로 많은 여성들이 숏컷을 한 사진을 올렸다.

그러나 경찰조사 결과 싸움이 시작된 원인은 자신을 피해자라고 밝힌 여성이 근처에 있던 커플들을 향해 비하하는 발언을 했고, 다른 테이블에 있던 남성들이 커플들을 옹호하는 과정에서 서로 싸움이 붙은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사건 당사자 남성과 여성들은 쌍방폭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작년 5월에 각각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숏컷 등 외적 요소로 검열 통해 페미니즘이 자리잡지 못하게 하는 것"

전문가는 숏컷이 페미니스트를 걸러내기 위한 수단이 된 것은 페미니즘을 우리 사회에서 입에 올려서도 안 되는 낙인범주로 규정하기 위한 전술 중 하나로 보았다.

윤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는 "페미니스트 요소를 갖춘 여성들을 가려내고자 하는 행동패턴은 페미니즘이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지 못하게 하는 인간힘"이라며 "2021년은 페미니즘이 대중화된 지 5~6년차에 해당하는 것으로 더 이상 페미니즘이 단기적이고 한시적인 이슈가 아닌 중장기적인 비전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시기적 분기점에 해당하기 때문"이라며 숏컷 등 외적 요소로 여성을 검열하는 현상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면서 "외형에 해당하는 머리 길이나 특정 말투 등을 문제 삼는 것은 그것이 가장 손쉬운 검열 방식이자 공포정치의 효율성을 최적화 하는 방식"이라며 "여성들에게 외모와 말투 등을 문제 삼은 후에 페미니스트인지 아닌지를 입증하길 요구하는 것은 1950년대 미국 사회를 휩쓸었던 매카시즘(공산주의자 색출 열풍)에 비견되는 행태다"고 지적했다.

스냅타임 공예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