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역사에 기록될 ‘엔씨 블소2 사태’[비사이드IT]
by이대호 기자
2021.09.04 19:16:02
엔씨, ‘혹시나’ 했던 리니지식 수익모델 채택 이어가
이용자 간 경쟁 붙여 과금 유도하는 성공 방정식 답습
中 원신, 1주년 업데이트로 세계 각지서 인기 반등
겜심 저격한 콘텐츠 설계로 ‘자기만족’ 과금 평가
블소2, 반전의 기회 또는 K-게임 흑역사 남을지 주목
때로는 미발표곡이나 보너스 영상이 더 흥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IT업계를 취재하면서 알게 된 ‘B-Side’ 스토리와 전문가는 아니지만 옆에서(Beside) 지켜본 IT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보려고 합니다. 취재활동 중 얻은 비하인드 스토리, 알아두면 쓸모 있는 ‘꿀팁’, 사용기에 다 담지 못한 신제품 정보 등 기사에는 다 못 담은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이데일리 이대호 기자] 엔씨소프트(036570)(엔씨)가 지난 26일 출시한 초대형 야심작 ‘블레이드&소울(블소)2’로 게임 시장 분위기가 냉랭합니다. 엔씨가 일관되게 고수한 리니지식 수익모델(BM)에 대한 비판이 거센데요. ‘혹시나’했던 리니지식 BM을 엔씨가 또 다시 들고나오자 ‘역시나’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잘 알려졌다시피 블소2 출시 이후 초반 흥행 부진과 주가 폭락이라는 후폭풍도 있었습니다.
리니지식 BM을 쉽게 말하면 캐릭터의 강함을 돈 주고 살 수 있게 만든 과금 설계입니다. 이 과정에서 뽑기 또는 성공 확률이 들어가 상황에 따라 수십, 수백, 수천만원의 돈을 들이고도 목표했던 효과를 얻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합니다.
지금까지 엔씨는 이용자 간 경쟁을 붙여 과금 심리를 자극하는 콘텐츠 설계로 매출을 확보했는데요. 처음엔 호응했던 린저씨(리니지를 즐기는 아저씨의 준말)들도 고강도 BM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리니지M, 리니지2M에 이어 트릭스터M까지 판박이 BM이 이어졌고, 블소2에서도 이 같은 BM을 재확인하자 잠잠했던 휴화산이 대폭발한 상황이 됐습니다. 엔씨를 도박업체로 칭하는 등 분기탱천한 겜심이 업계 전반을 뒤덮었네요.
현재 구글플레이 매출 1위인 오딘도 범(汎)리니지류 게임에 속합니다. ‘리니지 라이크(like)’ 게임으로도 불리는데요. 다수의 범리니지류 게임이 있지만, 유독 엔씨에 비판이 쏠린 것은 1등 업체에 대한 몇 차례 기대가 매번 실망으로 바뀐 까닭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택진 대표가 공식 석상에서 여러 번 ‘혁신’을 강조한 바 있었으나, 블소2를 보면 사실상 ‘말만 앞선 혁신’으로 나타난 상황입니다.
최근 게임 내 혁신은 한국이 아닌 중국 게임에서 볼 수 있습니다. 상당수 중국 게임이 자극적인 광고로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하지만, 일부는 K-게임을 훌쩍 앞선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작년 9월 말 중국 미호요가 출시한 ‘원신’이 대표적 사례인데요.
미호요 ‘원신’이 다시 국내 앱마켓 최상위권에 진입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전체 3위에 올라 막 출시된 블소2를 한 계단 제친 상황입니다.
원신을 즐기는 이들은 모바일게임보다는 ‘콘솔 비디오 또는 PC패키지 같다’는 평가를 합니다. 모바일게임의 대세 기능인 ‘자동 사냥’이 없는 것이 주요 특징입니다. 이 경우 이용자가 일일이 조작하고 스킬을 선택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오히려 이 같은 시도가 상당수 이용자들에게 기분 좋은 자극이 됐습니다. 지금 원신은 세계적인 대박 타이틀 반열에 올랐습니다. 자동 사냥의 발원지인 중국 게임 기업에서 이 같은 선택을 했다는 점이 눈에 띄네요.
‘유료 결제를 하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게임’이라는 커뮤니티 반응도 보입니다. 평소 과금 유도가 한국 게임보다 확실히 덜하고 결제는 ‘남들을 이기기 위해서’라기보다 ‘자기만족’이라는 것인데요. 이처럼 하나하나 열거하다 보면 미호요가 원신으로 K-게임과 여러 측면에서 다른 설계를 적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일 구글플레이 매출 기준 원신은 △홍콩 등 6개국 1위 △일본과 독일 등 7개국 2위 △한국과 프랑스 등 4개국 3위 등 세계 각지에서 매출 최상위권을 휩쓸었네요. 총 36개국에서 매출 톱10 내 순위를 기록했습니다.
지난 몇 년 간 엔씨를 포함해 여러 국내 기업이 리니지식 BM이라는 흥행 방정식으로 덩치를 불렸습니다. 수익 극대화를 위한 전략 타이틀 출시가 이어졌을 뿐, 눈에 띄는 실험적 시도는 시장에서 실종된 상황이었는데요. 블소2는 K-게임의 현주소를 되짚은 사례로 역사에 기록될 법합니다. 이후 엔씨를 포함해 국내 게임 기업이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면 ‘반전의 역사’로, 아니라면 ‘K-게임의 흑역사’가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