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용의 軍界一學]호르무즈 갈 함정 없어…청해부대 임무 확대 '저울질'

by김관용 기자
2019.08.18 13:37:43

[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우리 해군 최초의 함정 이름은 ‘서울정’ 이었습니다. 1945년 해군 창설 이후 이듬해 해방병단이 미국 해군으로부터 인수한 상륙정입니다. 이후 도입된 함정에는 그 종류와 규모, 임무에 따라 도시·산·강·만·해전 등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1990년대부터는 함정에 인물의 이름이 붙었습니다. 국가 안보와 조국 독립, 해군 발전에 큰 공을 세운 인물의 이름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해군의 대표 전력인 구축함은 전통적으로 대잠전이 주임무였지만, 현대에는 대잠전과 대함전 뿐만 아니라 대공전 능력을 겸비한 해상기동부대의 주력함입니다. 과거부터 현대까지 국민들로부터 영웅으로 추앙받는 역사적 인물이나 국난 극복에 기여한 호국인물의 이름이 붙습니다.

청해부대 30진 강감찬함 장병들이 파병임무를 위해 지난 13일 부산작전기지에서 해군 장병들의 환송 속에 출항하고 있다. [사진=해군]
우리 해군의 첫 구축함(KDX-Ⅰ) 명칭은 광개토대왕함입니다. 고구려 시대 최전성기를 구가한 광개토대왕의 정신을 본받자는 취지입니다. 실제 우리 해군은 구축함 취역으로 북한을 상대하는 ‘연안 해군’에서 ‘대양 해군’으로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KDX-Ⅰ급 구축함은 고구려 시대 인물들로 채워졌습니다. 광개토대왕함에 이은 2번함은 고구려 영양왕 시절 총 지휘관으로 맹활약하며 수나라군을 대파한 을지문덕 장군의 이름입니다. 3번함 역시 고구려 때 안시성 전투에서 당나라 군대를 물리친 양만춘 장군의 이름이 함명입니다.

차세대 구축함(KDX-Ⅱ)은 KDX-Ⅰ급함에 비해 배수량과 전투력이 확대되고 최초로 스텔스 설계를 본격적으로 적용한 대양 함대용 전투함입니다. 해군의 기대가 컸던 함정이었기 때문에 1번함의 이름을 충무공이순신함이라고 지었습니다. 충무공의 이름값 답게 충무공이순신함급인 KDX-Ⅱ 구축함은 6대나 됩니다. 이전 KDX-Ⅰ 구축함과 이후 이지스 체계를 탑재한 KDX-Ⅲ 구축함은 3대에 불과합니다.

KDX-Ⅱ 구축함 역시 충무공이순신함을 시작으로 역사적 영웅들에서 함명을 따왔습니다.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문무대왕, 고구려를 계승해 발해를 세운 대조영, 고려를 건국한 왕건, 고려시대 거란 대군을 격퇴한 귀주대첩의 영웅 강감찬, 고려 말 최후의 명장으로 평가받는 최영 등입니다.

올해 1월 2018 대한민국 해군 순항훈련전단 충무공이순신함과 대청함의 입항을 중국 상해 오송항 부두 중국해군과 교민들이 기다리고 있다. [사진=해군]
KDX-Ⅱ 구축함은 대한민국 해군의 주력 함선 중에서도 가장 임무가 많고 바쁩니다. 기존의 해역 방어 임무 뿐만 아니라 각종 해외 훈련과 파견에 동원됩니다. 이 때문에 단 1척이라도 사고나 고장 등으로 편제에서 빠지게 되면 전체 작전 수행이 어려워집니다.



현재 해군은 6척의 KDX-Ⅱ급 구축함을 청해부대 파견(연 2~3회)과 순항훈련(연 1회) 등 연간 3~4회의 해외출항을 위해 순차적으로 운용하고 있습니다. 임관을 앞둔 해군사관학교 4학년 생도들의 순항훈련에 동원되는 KDX-Ⅱ는 보통 3개월여 동안 자리를 비웁니다. 청해부대에 파견되는 함정 역시 4.5개월 주기로 소말리아 아덴만 현지에서 임무를 교대합니다. 각 구축함이 파병, 순항훈련 및 정비 등의 사유로 매년 평균 7~8개월 이상 국내 해상 방위 임무에서 제외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 때문에 ‘국군부대의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 파견연장 동의안’에 대한 국회 검토보고서 역시 “최소한의 작전준비태세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수의 구축함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전력확보 및 운용방안 등의 개선책을 조속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바 있습니다.

미국 주도의 호르무즈 해협 호위 연합체에 우리 군이 참여할 경우 이 역시 파견 함정은 KDX-Ⅱ 구축함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우리 해군의 기본 임무수행이 빠듯합니다. 우리 해역 방어 임무를 포기하면서까지 KDX-Ⅱ 구축함을 또 1척 파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기존 청해부대 임무를 호르무즈 해협으로까지 확대하는 방안이 유력시 되는 이유입니다.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우리 선박 보호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며, 호르무즈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측의 호위 연합체 구상에 대한 참여 검토는 우리 선박과 국민 보호의 필요성에 따른 것이며, 국익 관점에서 신중하게 판단할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 파병에 대한 현재 우리 국방부의 공식 입장입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미국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 요청에 청해부대를 활용키로 결론을 내렸다는 얘기들이 나돕니다. 미국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고,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석유의 72%가 이곳을 통과하기 때문에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유사시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다만 정부는 청해부대의 병력은 추가로 확대하지 않고, 파병 전 호르무즈 해협 인근 중동 국가들에게 사전 설명도 진행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청해부대 검문검색대원들이 RIB(Rapid Inflatable Boat)을 타고 출동하고 있다. [사진=합동참모본부]
그러나 병력 추가나 인원 교체 없이 청해부대를 호르무즈 해협에 투입할 경우 여러 문제가 따릅니다. 우선은 두 지역에서의 작전 개념부터가 다른데 함정만 투입한다고 파병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기존 아덴만에서의 작전은 해적을 대상으로 하지만,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작전 대상은 이란 혁명수비대와 정규군입니다. UDT요원 중심의 검문검색대와 해상작전헬기를 운용하는 항공대로 꾸려진 현 청해부대는 임무 성격상 맞지 않는 구성입니다. 이에 걸맞는 새로운 훈련 체계도 필요합니다.

게다가 현재 아덴만 해역의 우리나라 선박의 통항량이 연간 400여척에 이르고 있고 해적 행위의 위험성은 여전히 크기 때문에 우리 선박에 대한 안전항해 지원은 여전히 필요합니다. 하지만 청해부대가 편도만 4일 안팎이 걸리는 호르무즈 해협으로 이동할 경우 기존 아덴만에서 수행하던 임무는 어려워집니다. 연간 약 300억 원이 드는 청해부대 파병 비용의 급격한 인상도 불가피합니다. 호르무즈 해협 파병은 이란 등과의 외교 갈등만이 고려 사안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