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가습기살균제 업체 '무혐의'..피해자 반발(종합)

by최훈길 기자
2016.08.24 06:55:30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 애경·SK케미칼·이마트에 심의절차종료
"CMIT/MIT 유해성 확인된 바 없고 희석해 제조돼"
피해자측 "희석하면 안전? 귀막은 불공정 공정위"
우원식 국조위원장 "불공정 공정위 문제, 호되게 다룰 것"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업체인 애경산업, SK케미칼(006120), 이마트(139480)가 인체에 유해한 성분을 숨기고 광고했다는 혐의에 대해 사실상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측은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결정”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공정거래위원회는 CMIT/MIT를 주성분으로 하는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업체인 이들 3곳이 제품의 주성분이 독성물질이라는 점을 은폐·누락해 광고했다는 혐의에 대해 지난 19일 제3소회의에서 ‘심의절차 종료’를 의결했다고 24일 밝혔다. 심의절차 종료는 관련 혐의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이 곤란해 법 위반 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추가 조치 없이 조사를 종료하는 것이다.

공정위는 “인체 위해성에 대한 추가적 사실관계가 확인돼 위법으로 판단될 경우 제재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과거 선례를 보면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심의절차 종료’는 무혐의와 비슷한 효과를 지닌다.

김성하 상임위원은 “이 사건 가습기살균제의 인체위해성 여부가 확인된 바 없고 현재 이에 대한 환경부의 추가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심의절차 종료를 의결했다”고 설명했다. 또 “문제가 된 행위가 2011년 8월에 종료돼 검찰에 고발할 수 있는 공소시효가 이달 31일까지여서 이번 달에 심의를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애경산업은 SK케미칼이 제조한 ‘홈클리닉 가습기메이트’를 2002년 10월부터 2011년 8월31일까지 팔았다. 이마트는 이 제품을 애경으로부터 납품받아 ‘이마트(이플러스) 가습기살균제’라는 이름의 상품으로 2006년 10월부터 2011년 8월31일까지 판매했다. 환경부는 2012년 9월 CMIT/MIT 및 이를 1% 이상 함유한 혼합물질을 유독물로 지정했다.

공정위는 올해 4월 애경 및 SK케미칼에 대한 신고 접수, 이마트의 경우 직권인지를 통해 조사에 착수했다. 사건을 조사한 심사관들은 이들 업체가 제품의 주성분명 및 주성분이 독성물질이라는 점을 은폐·누락해 표시·광고했다고 판단했다. 또 ‘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품공법)’ 상 안전관리대상이 아님에도 ‘품공법에 의한 품질표시’ 등으로 표기하고 ‘천연솔잎향의 산림욕 효과’ 등으로 인체에 유익한 것처럼 광고했다고 봤다.

그러나 위법 여부를 결정하는 위원회 판단은 달랐다. 위원회는 2012년 질병관리본부 발표 등을 근거로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인체 위해성 여부는 명확히 확인된 바 없다”고 결론 내렸다. 또 “CMIT/MIT 원액의 유독성은 인정되나 이를 희석해 제조(약 0.015%)된 제품의 인체 위해성이 인정되지 않는 한 곧바로 표시광고법 위법 행위로 판단하기 곤란하다”고 판단했다.



김 위원은 “이들 업체가 안전인증마크(KC마크)를 부착하는 등 품공법 상 안전관리대상이라고 적극적으로 표시한 것이 아니다”며 “소비자 정보제공 측면에서 품명, 제조자명, 액성 등 품공법 상 표시사항을 차용해 기재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품에 포함된 천연솔잎향 등 성분에 의해 산림욕 효과를 느낄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측은 “공정위가 가습기살균제 피해에 귀를 막고 있다”며 반발했다. 강찬호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대표는 통화에서 “피해자들이 국정조사에서 CMIT/MIT 성분의 유해성을 계속 얘기해 왔고 추가적인 독성검사도 진행 중”이라며 “국정조사가 진행 중인 시점에서 서둘러 결정을 내리는 건 진상규명 의지가 없고 문제를 축소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이번 국정조사에서도 CMIT/MIT 성분이 독성이 있고 관련 피해자도 존재하는 게 확인됐는데 공정위는 여전히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2012년 질병관리본부 발표 이후 수년간 수많은 유해성 문제가 지적됐는데 귀를 막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최 소장은 “공정위가 ‘희석하면 유해하지 않다’고 했는데 독극물도 한강에 풀면 농도가 뚝 떨어져 독성이 떨어진다”면서 “피해자 절반이 3세 이하의 영유아나 산모들이다. 공정위는 피해자들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불공정하고 불합리하고 비과학적인 접근을 했다”고 비판했다.

국회도 공정위의 심의결과가 부적절하다고 판단, 국정조사에서 이 문제를 짚기로 했다. 우원식 국회 가습기살균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은 “SK케미칼이 ‘제조할 당시 CMIT/MIT 성분의 흡입 독성이 있었다’고 확인했다. ‘독성 물질의 농도를 낮추면 괜찮을 수 있다’고 했지만 피해자들이 발생했다”며 “CMIT/MIT 성분이 포함된 가습기살균제로 사람이 다쳤는데 공정위는 이를 인정 안 하는 형편 없는 심의결과를 내놓았다”고 문제 삼았다.

우 위원장은 “질병관리본부가 2012년 당시 ‘추후 조사를 더 해야 한다’고 했는데 후속 조사를 안 했고 검찰도 수사를 제대로 안 했다. 공정위까지 이런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며 “이번 국정조사에서 불공정한 심의결과를 내놓은 공정위의 문제를 호되게 다룰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