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무기체계 요구하면서 개발기간은 '찔끔'…'진화적 개발' 인정해야

by김관용 기자
2018.11.22 08:29:09

방위사업 패러다임 바꾸자①
완성형 무기개발 방식에만 집착
실패땐 방산비리 프레임 덧씌워
소량 생산 운영하며 성능 검증해
진화적 개발 방식으로 전환해야

우리 군은 ‘자주국방’의 기치 아래 1960년대부터 국산 무기 개발을 위해 노력해 왔다. 60여년 동안 쌓아온 기술력은 해외 수출로 이어지며 결실을 맺고 있다. 방위산업은 국가 안보를 위해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필수 산업인 동시에 일자리 창출 등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방위산업은 지난 2014년부터 불거진 일부 사업의 비리 문제로 산업 전체가 ‘방산비리’라는 프레임에 갇혀있다. 게다가 비효율적 사업 구조로 인해 업체들의 어려움은 커져가고 있다. 이데일리는 한계에 직면한 현재 한국 방위사업의 구조적 문제점을 진단하고 제도개선을 통한 방위산업 발전 방안을 모색하는 기획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육군 특공부대원들이 수리온 헬기에서 패스트로프를 이용해 강하하고 있다. [사진=육군]
[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무기체계를 해외에서 사오거나 국내에서 개발해 군에 납품하기까지의 과정을 ‘획득’이라고 한다. 무기 구매나 개발이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일련의 과정이 그만큼 복잡하고 전문적이기 때문이다. 어떤 무기를 만들거나 구매할지에 대한 개념 설정부터 최종생산품이 군에게 공급될 때까지 수많은 절차를 거친다. 무기체계 도입 사업이 수십년에 걸쳐 진행되는 이유다.

특히 무기체계 개발은 일반적으로 진화적 획득 과정을 거친다. 예를 들어 1단계에서 10단계 까지의 기술적 진화가 필요한 무기체계를 개발할 경우, 몇 단계로 구분해 세부적인 기술을 식별하고 첫 생산 시에는 소량 생산을 통해 기술적 진화와 무기체계의 안정성을 확보한다. 그 다음 2차 사업과 성능개량 등을 통해 단계적으로 기술적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진화적 획득이다. ‘배치’ 또는 ‘블록’이라고 하는 단계적 생산 과정을 거쳐 제품을 점점 완벽하게 하는 것이다. 어떤 나라 어느 회사든지 처음부터 제품을 완벽하게 만들 수 없다. 휴대폰이나 차량 등의 사례에서 보듯 심지어 잘 만들던 회사도 실수하는 경우가 있다.

한국 방위사업의 현실은 진화적 획득과는 거리가 멀다. 정부 당국이 말로는 진화적 개발을 얘기하고 있지만,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고라도 나면 국민 여론은 들불처럼 일어나 ‘불량무기’, ‘방산비리’라고 비난한다. 한국형기동헬기 ‘수리온’은 우리나라가 처음 만들어 본 헬기다. 조종석 앞 유리 파손이나 빗물 새는 고무 패킹 등은 단순 부품 교체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는데도 수리온에게는 ‘결함투성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특히 감사원은 수리온에 대한 감사보고서를 통해 추운 날씨에 얼음이 엔진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불량헬기’라고 낙인찍기까지 했다. 수리온은 진화적 개발을 거쳐 올해 체계결빙 테스트를 통과했다.



무기체계 개발 과정에서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K-11 차기복합형 소총과 K-2 전차 파워팩 등은 시험 평가 도중 품질 불량이 드러났다. 이는 연구개발(R&D) 실패였지만 감사원이나 검찰의 잣대로 들여다보니 곧 ‘방산 비리’가 됐다. 해당 업체들은 납기지연에 따른 지체상금 부담도 떠안고 있다. 미국의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 F-35도 개발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문제가 발생했지만, 이를 처벌의 대상이나 비리로 보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한국 방위산업의 현실은 그만큼 척박하다.

과도한 작전요구성능(ROC)도 문제다. 국내 기술역량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ROC만을 무리하게 반영하다 보니 무기체계 개발 과정에서 각종 결함들이 속출할 수밖에 없다. 군의 입장에선 좋은 물건을 사고 싶은게 당연하다. 그러나 기술 수준 등의 여건을 고려하지 않는 현행 ROC 제도는 개선돼야 한다는게 업계의 지적이다.

방위산업 전문가인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종대 의원은 “업체가 주도한 공군 장거리 레이더 사업과 소부대 무전기 사업의 경우에는 시험평가 성능이 90%를 상회함에도 불구하고 군 당국의 무지로 사업이 취소됐다”면서 “해외에서 직도입된 해군의 하푼미사일의 경우 최근 실사격에서 10발 중 7발 밖에 명중하지 않았음에도 아무런 문제제기가 없었다. 이는 방위사업제도의 모순이 전형적으로 드러나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충분치 않은 개발 기간도 현행 무기체계 개발 사업 구조의 폐단 중 하나다. 수리온 개발 과정도 그랬다. 통상 헬기 개발에는 10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수리온 개발은 군의 요구에 따라 6년이라는 짧은 기간 내에 마무리 해야 했다. 사업착수 3년 2개월만인 2009년 1월 시제 1호기가 출고됐다. 추가 시험평가 단서가 붙긴 했지만, 군 당국은 시간을 아끼기 위해 개발시험 평가와 운용시험평가를 동시에 실시해 4개월만에 끝냈다. 정부가 애초에 급했다면 개발을 더 일찍했어야 하지만, 중기계획에 올려놓고 방치하다가 나중에 급해지니 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일정을 재촉한다. 업체 입장에선 부랴부랴 만들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방위산업체 관계자는 “ROC를 무리하게 반영하고 충분치 않은 개발 예산과 개발 기간으로 개발에 성공하도록 요구하는 게 현행 무기체계 획득 제도”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