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의 신경영 비전]기업주도형 벤처캐피탈 성공을 위한 제언

bye뉴스팀 기자
2020.07.13 08:20:47

[이상훈 전 두산 사장·물리학 박사]기업 주도형 벤처캐피탈(CVC)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비금융 사업을 운영 중인 기존 기업이 세운 벤처캐피탈을 일컫는 기업 주도형 벤처캐피탈은 이미 전 세계 벤처 투자의 30%를 담당하고 있는 중요한 투자 재원일 뿐 아니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바이두, 알리바바 등 혁신을 이끄는 기업들에게 오픈 마켓으로부터 아이디어와 기술을 끌어올 수 있는 혁신의 중요 원천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비금융 지주회사에 대한 규제 때문에 지주회사 지배 구조를 갖춘 대기업들의 CVC 설립이나 운영이 불가능했는데 최근 정부가 규제 완화를 발표하면서 공정거래법과 충돌이 생겨 논쟁이 일고 있다. 벤처 투자 활성화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을 것인지는 정부와 국회가 논의 끝에 정리를 하겠지만 실제로 CVC가 허용됐을 때 어떻게 해야 이를 잘 운영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구글이 알파고를 개발한 딥마인드를 7000억 원에 인수하고 인텔이 자율주행차의 비전 시스템 개발 회사인 모빌아이를 17조 원에 인수한 것을 보고 우리나라 대기업들도 CVC를 설립하면 그런 혁신 기술을 가진 벤처기업에 투자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 섞인 추측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알파고와 모빌아이는 구글과 인텔의 CVC의 성공사례가 아니라 실패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구글의 CVC는 딥마인드가 벤처캐피탈 자금을 끌어들일 때 그 회사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다.

호라이즌 벤처와 파운더스 벤처, 그리고 페이팰의 창업자인 피터 틸과 일론 머스크가 벤처 투자를 했고 구글은 CVC가 아니라 지주회사인 알파벳이 창업자와 벤처 투자가들로부터 딥마인드를 인수한 것이다. 모빌아이 역시 마찬가지다. 인텔의 CVC가 아닌 골드만삭스에서 벤처 자금을 대고 있었고 인텔의 CVC가 아닌 인텔이 모빌아이를 인수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것은 비금융회사가 CVC를 설립해서 잘 운영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CVC는 투자 대상 벤처회사를 찾을 때 일반 벤처캐피탈 회사와 경쟁해야 한다. 그런데 일반 벤처캐피탈 회사와 달리 CVC는 회사를 설립한 모기업이 투자 의사 결정 과정에 관여하는 경우가 많다.

모기업과의 시너지, 기술의 성공 가능성, 향후 인수 가능성 등을 점검하다 보면 의사결정이 느려질 수도 있고, 격변하는 세상에서 모기업의 판단이 잘못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투자 수익성만을 쫓는 일반 벤처캐피탈에 비해 몸이 무거워질 수 있고 빠른 판단과 위험 부담의 감수가 필수적인 벤처 투자에서 일반 벤처캐피탈에 밀릴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런 약점 때문에 벤처캐피탈에서 일하려는 인재들 역시 선택의 옵션이 있으면 CVC를 회피하고 일반 벤처캐피탈을 선호하는 것이 현실이다.

투자를 받는 벤처기업도 CVC의 투자를 받았다가 기술을 유출 당하거나 CVC의 모기업에 예속되는 건 아닌지 걱정하게 된다. 따라서 CVC를 설립해서 잘 운영하려면 CVC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 CVC 팀의 평가 보상 역시 벤처캐피탈 업계의 기준을 따라야 한다. 그리고 조급증을 버리고 멀리 내다볼 수 있어야 한다.

규제 완화와 함께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CVC 설립 붐이 일 것으로 보인다. 시류를 좇아 CVC를 설립하는 것보다 어떻게 해야 설립된 CVC가 모기업의 혁신과 미래 성장의 진정한 원동력이 될지 고민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