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정책 다시보기-호외편]대계마을과 하의도의 그 검푸른 바다

by김정남 기자
2015.11.23 08:55:57

여의도 여야 정치권의 정쟁에 숨겨진 정책 이야기

김영삼 전 대통령(오른쪽)과 김대중 전 대통령. 사진=AFPBBNews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지난 21일 밤, 저는 전날 과음에 지쳐 일찍 잠들었습니다. 그러기를 몇 시간 후. 22일로 넘어가는 새벽 12시30분께 전화가 계속 걸려왔습니다. 주말 밤인데 이상하다 싶었지요. 이미 한 후배에게 2~3통의 전화가 와있었습니다.

저는 기어들어가는 낮은 목소리로 “왜?”라고 물었는데, 그 후배는 다급했습니다. “선배,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서거했답니다. XX선배(사회 데스크)께도 말씀드렸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저는 지금 병원 갑니다.”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고, 수소문해보니 사실이었습니다. 곧바로 다른 선배들에게서도 전화가 밀려들어왔습니다.

그 새벽 3시간 가까이 정신없이 기사를 넘긴 뒤, 저는 문득 그 시절 그 바다가 떠올랐습니다. 저는 어릴적 10년 가까이 거제에서 살았습니다. 그때가 참 행복했는지 거제를 지금도 ‘마음의 고향’으로 여깁니다. 아버지 어머니께는 경상도 사투리를 쓸 정도로 알게모르게 몸에 밴 곳이기도 합니다.

당시 저희 집에서 차로 10~20분 거리였던 ‘대계마을(김영삼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던 곳)’을 알지 못했습니다. 1992년 혹은 1993년으로 기억합니다. 대계마을이 갑자기 유명해졌고 저도 처음 그 존재를 알게 됐습니다.

수영을 좋아했던 저는 생가보다 그 앞 바다를 더 사랑했습니다. 대계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덕포해수욕장보다는 훨씬 작고 수심도 깊어 수영하기 애매했지만, 그래도 아기자기한 몽돌이 깔려있는 그 바다가 저는 좋았습니다. 커다란 바위들 사이로 마치 ‘비밀장소’처럼 숨어있던 곳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때마다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이곳이 김영삼 대통령이 어릴 때 맨날 수영하던 곳이란다.” 그 바다는 유명한 해수욕장에 비해 인적은 드물었지만 그래서 더 아득하고 드넓은 바다를 볼 수 있었습니다. ‘소년 김영삼’은 바다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일제시절을 경험한 YS가 통영중 재학시절 한인을 차별하는 일본인 교장을 골탕 먹였다고 하니, 대강 짐작은 됩니다.

요즘도 몇 년에 한번은 거제, 특히 제가 살던 옥포에 꼭 갑니다. 남해 바다는 시원합니다. 강한 짠내가 코를 때리는데, 그 기운이 호탕합니다. 거제대교를 건너면서부터 그 너른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지요. 햇볕이라도 내리쬐는 날이면 반짝반짝 강한 빛이 바다를 감쌉니다.



남해와 서해는 냄새가 다릅니다. 저는 공교롭게도 청소년기 일부를 DJ(김대중 전 대통령) 임기 초 목포에서 보냈습니다. DJ의 정치적 고향인 그곳 말이지요. 이사를 간 후 회도 먹을겸 목포항에 가봤습니다. 가장 먼저 다가왔던 게 잔잔한 그 느낌이었습니다. 거제 바다, 혹은 부산항과는 또다른 풍경이었지요. “목포가 원래 전국 5대 도시였당께. 호남 들어오는 건 다 여기로 들어왔어. 이리 쪼그라들줄 몰랐제.” 그때 어르신들에게 이런 얘기를 참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예향’ 목포는 더 뻗어나가지 못하고 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DJ의 고향은 목포와 가까운 신안의 한 작은 섬(하의도)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됐습니다. 하의도는 토지수탈에 저항한 역사가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 작은 섬의 바다 역시 멀고 아득했습니다. 남해와는 또다른 냄새의 강한 짠내였지요.

어느 정치 전문가는 현대사를 수놓은 불세출의 영웅 YS와 DJ를 두고 ‘바다의 기운’을 얘기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검푸른 파도를 보고 자라 지도자의 정열이 넘쳐난다는 것이지요. 어린 YS와 DJ도 그 바다를 보고 또 봤을 겁니다. 다른듯 같고, 같은듯 다른 그 바다 말이지요.

저도 이제 그 너른 바다를 큰 마음 먹어야 내려가서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세월이 지났을까요. YS와 DJ는 감히 넘볼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카리스마를 내뿜었는데, 이제는 지도자급이 된 그 정치 문하생들은 ‘춘추전국시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포스트 YS, 포스트 DJ는 없다고 봐야 겠지요. 박정희 전 대통령과 특수관계인 박근혜 대통령이 마지막 카리스마형 정치인이라는 얘기도 많습니다.

민주화가 절실했던 그 시절, 두 영웅이 싸우던 방식은 시대가 원하는 것이었지요. 그러면서도 이들은 ‘정치가 살아있는’ 기본을 지켰습니다. 민주화추진협의회가 그 결실입니다. 지금도 많은 현역 정치인들은 민추협 시절 상대를 인정하는 그 정치의 본질을 그리워하지요. 극한 대립으로 정치의 비용을 높이는 게 요즘 국회입니다. YS DJ 키즈들은 두 거인의 유산을 계승 발전시켜야 합니다. 다양성 다원화의 시대, 협력정치가 그 첫 손에 꼽힌다고 봅니다. 하늘나라로 간 YS와 DJ도 그걸 원할 겁니다.

굴곡진 현대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갔습니다. 두 거인의 위대함을 느끼며 새삼 대계마을과 하의도의 그 바다가 그리워집니다. 수십년 전 놀았던 그 검푸른 바다도 이제는 잔잔하게 웃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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