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읽는증시]불매운동으로 기업이 아프려면

by전재욱 기자
2019.07.27 11:00:00

`낙동강 페놀유출` 두산 불매운동…계열사 주가↓
남양유업 `밀어내기 영업` 뭇매…적자전환, 주가 내리막
핵실험 강행한 佛…日 불매운동 일었지만 결과는 `배신`
"불매운동 버티면 그만"…성패는 지속으로 갈려

경기 의정부시 6개 고등학교 학생들이 26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산 제품 불매운동 동참 선언 기자회견’을 한 가운데 참가 학생이 소녀상 뒤로 손팻말을 들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1991년 3월14월, 낙동강에 페놀이 유출됐다. 두산그룹 계열 두산전자가 주범으로 밝혀졌다. 낙동강을 식수원으로 삼는 영남 지역에서 대규모 두산 불매운동이 일었다. 당시 계열사로 있던 동양맥주(현 OB맥주) 타격이 컸다. `맥주 맛은 물이 좌우한다`는 대중의 인식은 `물을 오염시킨 회사가 만든 맥주`를 용납하지 못했다. 경쟁 회사에 반사이익이 돌아갔다. 크라운맥주(조선맥주) 시장점유율은 당시 32%에서 한 달 만에 43%까지 증가(매일경제 그해 11월9일치)해 1위 OB맥주와 격차를 좁혔다.

불매운동은 두산그룹 계열 상장사 주가도 움직였다. 두산유리, 두산산업, 동남증권, 두산식품, 두산기계, 동산토건 등 주가에 연일 파란 불이 켜졌다. 업계에서는 ‘제품 불매운동으로 그룹 경영에 차질이 빚어지면 주가 하락폭이 커질 것’(매일경제 그해 3월22일 치)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두산 임원직원은 ‘창사 이후 최대 위기’(한겨레 같은 해 3월24일 치)라고 걱정했다.

한국에서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한창이다. 일본이 한국에 대해 수출규제에 나선 게 명분이다. 식음료와 의류, 미용용품 등 단순히 공산품 구매를 끊는 데서 시작한 불매운동은 고차원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일본 제품은 배송하지 않는가 하면, 일본 여행을 자제하는 분위기도 거세다. 심지어 일제 자동차를 망가뜨리는 행위도 발생했다. 일본 SPA 유니클로는 자사 제품 불매운동 영향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가 된서리를 맞고 사과했다.

유니클로가 사과한 이유는 실적 악화가 두려워서다. 결국 주가 하락이 무서운 것이다. `불매 운동→실적 악화→기업 가치 하락→주가 내림` 흐름은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 당시 두산그룹 상장사를 통해 증명됐다. 2013년 남양유업(003920) 불매 운동도 그랬다. 그해 5월 영업사원 폭언이 담긴 녹음파일이 공개되자 광범위한 불매운동이 진행됐다. 공정위가 조사해보니, 남양유업은 최근 7년간 이른바 ‘제품 밀어내기’로 대리점주와 판촉사원에게 2000억원이 넘는 피해를 준 것으로 드러났다. 녹음파일 공개 직전 114만원이던 회사 주가는 그해 8월28일 79만7000원까지 빠졌다. 주가 하락은 실적 우려를 반영한 결과였다. 실제로 그해 회사는 영업손실 174억원을 내고 적자로 전환했다. 전년 637억원이던 영업이익이 속수무책으로 빠졌다. 2014년도 260억원 적자를 봤다.



일본인에게도 불매 운동은 익숙하다. 프랑스는 1995년 9월 세계의 비난을 무릅쓰고 핵실험을 단행했다. 일본 반응이 거칠었다. 일본인에게 악몽 같은 핵폭탄을 프랑스가 개발한다고 하니 그럴 만하다. 그해는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이 폭발한 지 50년이 되던 해였다.

일본 정부 차원에서 ‘프랑스 불매’ 대국민 운동을 전개했다. ‘명품업체 루이뷔통 모에 헤네시(LVMH) 주가가 하루 만에 20프랑 하락하고, 코냑 제조사 레미 코엥트로 주가가 연중 최저치를 기록’(경향신문 그해 7월20일 치)할 정도로 파급력이 셌다. 그런데도 에디트 크레송 총리가 불타오르던 일본의 반불(反佛) 감정에 기름을 부었다. 공개석상에서 일본인을 ‘토끼장에 사는 개미’(열악한 주거환경 탓에 좁은 공간에 거주하며 일만 하고 지내는 생활상을 비아냥한 발언)라고 비하했다.

불매 운동 결과는 배신이었다. ‘그해 프랑스 코냑 생산업체 헤네시의 6~8월 일본 판매량은 전년 동기보다 10% 늘었고, 명품 제조사 루이비통의 대일 판매량은 꾸준히 증가했으며, 화장품 업체 로레알과 랑콤은 일본 수출 목표를 초과 달성’(동아일보 1995년 9월20일 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양유업도 그랬다. 내리막을 걷던 영업이익은 2015년 201억원으로 흑자 전환한 이래 2016년 418억원, 2017년 50억원, 지난해 85억원으로 회복했다.

동양맥주는 교훈을 남겼다. 조선맥주는 페놀사건 반사이익으로 10% 포인트 넘게 늘렸던 시장점유율을 연내 다시 잃었다. 업계에서는 `동양맥주 소비자 불매운동이 불과 1~2개월을 지속하지 못하고 끝나면서 시장 판도를 변화시킬 영향력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었다. 불매 운동 성패는 지속에 달렸다는 의미이고, 반대로 말하면 상대방은 `존버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