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슬기로운 투자생활]하버드대·동경대 채권은 있어도 서울대채권은 없다

by이슬기 기자
2020.08.25 07:31:50

세계 대학, 기금 운용 적극적…채권까지 발행
우수한 교육환경 제공 위해…등록금·보조금 의존 탈피
대학 기금 운용에 착한 투자 압박하는 행동주의까지
한국 대학 기금은 여전히 정기예금 중심

[이데일리 이슬기 기자] 전세계의 대학이 이제 어엿한 금융계 ‘큰 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 수도, 정부에서 대주는 지원금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라 대학들이 돈을 적극적으로 굴리는 겁니다. 한편 이런 대학기금을 향해 ESG(환경·사회·가버넌스) 투자를 촉구하는 행동주의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최근 일본 동경대는 200억엔 규모의 채권을 발행해 시장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동경대는 일본 신용평가사 JCR로부터 AAA의 등급을 받았고요, 채권은 40년물입니다. 동경대는 지난 21일 다이와증권, SMBC닛코증권, 미즈호증권을 주관사로 정한 상태입니다. 조달한 금액으로는 첨단연구시설의 정비에 쓸 계획이라고 하네요.

대학이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건 그리 새로운 발상은 아닙니다. 이미 영국 케임브릿지대와 옥스퍼드대가 2018년과 2017년 각각 60년채와 100년채를 발행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죠. 케임브릿지대와 옥스퍼드대는 채권을 발행해 각각 8000억원, 1조원을 시장에서 조달했었습니다. 이렇게 조달한 금액으론 기초연구의 시설을 세우거나 캠퍼스 수리 등에 썼다고 하죠.

이미 영미 국가 대학을 중심으로 시장 참여는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400억달러(약 47조 6000억원) 가량의 기금을 운용하는 미국의 하버드대가 대표적이죠. 좋은 시설과 풍부한 장학금 등 우수한 교육환경을 지원하기 위해선 학교에 돈이 필요한데, 이때 등록금과 기부금에만 의존하지 않고 직접 돈을 굴려서 벌겠다는 겁니다. 정부로부터 받는 지원금도 계속 줄어드는 것도, 저출산으로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의 수가 줄어드는 것도 또 하나의 원인일 테죠.



심지어 대학 기금 운용에 행동주의까지 이뤄지고 있습니다. 주주가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 배당을 늘리거나 투자 지침을 바꾸듯, 학생과 동문들이 기금운용에 대한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이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1일(현지시간) 하버드대 동문으로 이뤄진 행동주의 그룹이 올해 대학 감독 위원회의 다섯 자리 중 세 자리를 차지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들은 하버드대의 기금을 석유·가스회사에 투자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위원회 선거에 나간 것입니다. 즉, 하버드대가 ‘착한 투자’를 하게끔 압박하고자 동문들이 행동주의에 나선 셈이죠.

글로벌 대학들이 활발히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반면, 한국 대학의 시장 참여는 지지부진합니다. 지난해 서울대가 삼성자산운용에 기금 2000억원의 운용을 맡기긴 했지만, 대부분의 대학이 여전히 정기예금에 돈을 묶어두는 실정입니다. 한국의 경우 저출산 문제가 더욱 심각해 앞으로 학생수가 줄어들 것으로 보이는 데다, 저금리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예금수익에만 기대서는 좋은 질의 교육을 제공하기 어려워집니다. 정부의 국고보조금이 언제까지나 지금 수준으로 유지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것이고요.

올해 발생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대학으로 하여금 더욱 적극적인 시장 참여를 떠밀고 있는 상황입니다. 기숙사비 수입도 들어오지 않고 온라인 수업을 위한 인프라 조성도 필요한데 들어올 돈은 마땅치 않기 때문이죠. 국내 대학들도 앞으론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더 좋은 교육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그것이 또 우리 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방향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