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닥터]근본 치료법 없는 황반변성, 망막박리 환자에게 '핫라인' 개방해 빠른 대처

by이순용 기자
2020.10.14 06:49:58

황반변성, 망막박리 환자의 희망 전도사, 이성진 순천향대서울병원 안과 교수
보이는 것이 아닌 의사의 목소리에 의조하는 환자들에게 믿음을
의학용어보다는 환자가 알아듣기 쉬운말로 질환을 설명하는 의사
이교수는 치료가 어려운 황반변성과 망막박리 같은 망막질환 치료 권위자

[이데일리 이순용 기자]의사의 목소리에 유독 의존하는 환자들이 있다. 바로 의사의 얼굴을 또렷하게 볼 수 없거나 전혀 볼 수 없는 안(眼) 환자들이다. 그래서 안과 전문의는 더 친절하고 더 잘 소통해야 한다고 말하는 안과 권위자가 있다. 낮에는 환자들에게 의학용어를 쓰지 않는 ‘쉬운 의사’ 로,한 밤 중에도 수술하는 안과 의사, 직원들과 소통하는 부원장, 세상에서 가장 바쁜 의사 중 하나인 이성진 순천향대서울병원 안과 교수를 만났다.

◇황반변성, 조기에 치료해야 시력 보전

이 교수는 황반변성과 망막박리 같은 망막질환에 정통한 안과 전문의다. 요즘은 백내장수술의 노하우를 쌓기 위해 망막 쪽에 지원하는 전공의가 많다. 하지만 이 교수가 수련할 때만 해도 망막은 좀처럼 도전하지 않은 어려운 분야였다. 백내장은 재수술의 기회가 있지만 망막은 실패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실명의 위험이 따른다. 백내장수술이 맹장수술이라면 망막수술은 대장암수술에 비견할 만큼 힘든 수술이다. 망막질환 중 특히 황반변성은 언제든지 시력 소실이 발생할 수 있는 난치 분야라서 전문의의 세심한 관심과 빠른 대처가 매우 중요하다.

이성진 교수는 황반변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눈을 카메라에 비유하면 눈 속에는 망막이라는 얇은 필름이 벽지처럼 발라져 있다. 망막의 뒤쪽 중심부에는 갈색소가 진하게 뭉쳐 있는 황색반점(황반)이 있는데, 이곳에 사물의 초점이 맺히게 된다. 황반은 색을 구분하는 원뿔모양의 시(視)세포 600만개가 모여 있는 0.5mm의 작은 점이다. 노화로 황반 바닥에 노폐물이 쌓이게 되고 이것이 산소공급을 방해하게 돼 황반이 서서히 손상되는 병이 황반변성이다. 더 진행되면 산소가 모자란 황반을 돕기 위해 반갑지 않은 신생혈관들이 생겨 웅크리고 있다가 출혈을 일으켜 황반부의 시세포를 망가뜨리게 된다”

황반변성 환자는 신생혈관이 생기면 갑자기 사물이 찌그러져 보이고 문장의 글자 중 보이지 않는 부분이 생긴다. 밝고 어두운 정도를 구분하는 능력도 점차 떨어지게 된다. 황반변성은미국과 유럽에서는 실명 1위 질환이고 우리나라에서는 65세 이상의 실명 원인 1위 질환이다. 대부분 노화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는 청장년층에서도 발병이 증가하고 있다.

황반변성의 가장 큰 문제는 근본적인 치료법이 없다는 것이다. 출혈의 원인이 되는 신생혈관을 제거하기 위해 최근에는 신생혈관생성단백질을 억제하는 항체를 눈 속에 주사하는 치료법이 사용되고 있지만, 약효가 사라지면 신생혈관은 다시 살아난다. 시력을 보전하는 길은 신생혈관이 생기기 전이나 생긴 직후 출혈을 일으키기 전에 빨리 주사를 맞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러한 부분을 환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용어로 설명을 해 준다. “환자가 이 병을 잘 이해해야 눈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 또한 이 병은 자외선, 담배, 콜레스테롤, 고혈압과 같은 위험 요인을 피해야 한다.”

특히 이 교수는 본인에게 주사를 맞은 환자들에게는 개인 연락처를 알려주고 언제라나 사물이 휘어져 보이거나 검게 가리는 증상이 생기면 아무 날이나 빨리 안과로 오거나 다른 문제가 있으면 직접 연락하라고 당부한다. 이 교수는 “빨리 주사를 맞는 것도 중요하지만 눈이 나빠질 때 의지할 수 있는 의사가 곁에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망막클리닉 원스톱·온콜 시스템 갖춰

망막박리 수술도 이성진 교수에겐 응급이다. 스승인 권오웅 세브란스병원 교수에게 망막수술을 배울 때부터 지켰던 원칙이다. 가능하면 당일에 수술을 해 주고, 늦어도 24시간 내 수술을 해 주는 것이 원칙이다. 당장 생명이 위급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서둘 이유가 있을까 싶지만 이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눈을 뜨고 있는데 검은 커튼이 서서히 내려와 세상이 점점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끔찍하겠어요? 정말 ‘암담한’ 상황이죠. ‘이렇게 실명이 되는 구나’하는 음악선생님의 망막박리 경험을 중학생 때 들은 적이 있어요. 선생님을 생각해서라도 수술을 한시도 늦출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성진 교수는 한밤중에도 수술을 집도하는 게 다반사가 됐다.

이 교수의 노력으로 2018년 6월 순천향대 서울병원 안과는 망막박리수술 1,000례를 기록했다. 당시 조촐하게 감사의 행사를 열었다. 이 교수의 스승인 권오웅 누네안과 병원장은 당시 “이성진 교수를 보면 망막박리 수술을 하고 싶다며,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에 온 환자를 당일에 수술을 할 테니 보내달라고 떼쓰던 때가 생각난다.”며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해 망막박리수술 1,000례라는 큰 업적을 이뤘다. 한 사람이라도 더 잘 보게 하기 위한 헌신적인 노력에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고 격려했다.

순천향대 서울병원은 1991년 온영훈 교수가 처음 망막진료를 시행했고, 2001년부터 이성진 교수가 24시간 내 응급 망막박리수술을 시작해 연간 30~40건을 집도해 왔다. 2010년부터는 연간 100건 이상의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1주일에 두 번은 망막박리로 야간 응급수술이 이루어졌다는 의미이다. 이 교수의 40대는 그렇게 응급망막박리 수술과 함께 흘러갔다.

이 교수가 이끄는 망막클리닉은 현재 원스톱(One-stop)· 온콜(On-call) 시스템을 갖추고 24시간 응급수술을 시행한다. 병원 차원에서도 망막진료와 망막박리 응급수술이 가능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밤늦은 퇴근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성진 교수는 일단 진료를 시작해 인연을 맺은 환자는 언제든 그와 연결되고 만날 수 있다. 자신이 수술한 망막 환자라면 누구든 이메일 주소는 물론이고 휴대전화 번호까지 알려준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증상에 변화가 생겨서 궁금하거나 걱정이 되면 아무 때나 망설이지 말고 연락하라고 주문한다. 대학병원이라 전문의를 다시 만나는 절차가 까다로울 거라 생각했던 환자들은 이런 ‘핫라인(hotline)’을 개통한 것만으로도 안심이 된다.

이성진 순천향대 서울병원 안과 교수가 망막에 이상이 생겨 내원한 환자의 눈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