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규태의 코덱스] 마스크를 쓴 모나리지

by편집국 기자
2020.11.12 06:00:00

[임규태 공학박사·전 조지아공대 교수] 마스크 쓴 모나리자를 상상해본 적 있는가. 모나리자가 인류 역사상 가장 가치 있는 미술 작품이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1972년 프랑스 정부는 처음으로 미국에 모나리자의 해외 전시를 허락했다. 워싱턴D.C.와 뉴욕 메트로폴리탄에 전시된 단 한 장의 그림을 보기 위해 관람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한 사람의 관람객이 모나리자를 보는데 허락된 시간은 불과 20초. 그럼에도 불구하고 4개월의 전시기간 동안 170만명의 관람객을 기록했다.

이듬해인 1973년 일본은 프랑스 정부로부터 두 번째 모나리자 해외 전시를 허락 받는다. 미국보다 짧은 두달간의 전시기간 동안 150만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이번엔 한 사람에게 허용된 시간은 10초였다. 모나리자의 가치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2018년 루브르 박물관이 1000만 관객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쓰는데 모나리자는 결정적으로 기여했으니까.

모나리자가 단순히 경제적 가치만 지닌 것은 아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 다빈치가 창조한 모나리자의 예술적 가치를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다빈치가 수푸마토 기법으로 구현한 그림 속 여인의 ‘신비한 미소’는 모나리자의 천문학적인 경제적 가치를 쉽사리 정당화니까.

자, 이제 모나리자에 마스크를 씌워보자. 마스크로 신비한 미소가 가려진 모나리자는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 마스크를 쓴 모나리자와 10초간 눈을 마주치기 위해 장사진을 이룰 리가 없다. 모나리자의 천문학적인 경제적 가치는 상당 부분 감소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 최대 유산을 쥐락펴락하는 모나리자의 ‘신비한 미소’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모나리자의 ‘신비한 미소’는 정보이다. 당신 머릿속에는 이미 모나리자 미소의 가치가 프로그램 되어 있다. 당신의 눈을 통해 모나리자라는 시각적 정보가 입력될 때마다 당신의 뇌는 익숙한 반응(아름답다, 신비롭다)을 일으킨다. 당신을 포함한 일반인들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감상은 스스로의 경험보다는 외부로부터 주입된 학습의 덕분이다.

인간이 입력 정보에 대한 가치판단을 기존 프로그램에 의존하는 이유는 에너지 효율 때문이다. 불과 체중의 2%를 차지하는 뇌가 전체 에너지 소모의 25%를 차지한다. 정보가 입력될 때마다 두뇌의 판단 회로를 가동하는 것은 에너지 낭비이다. 인간은 이미 경험한 정보 처리를 프로그램으로 간단히 처리하고, 오직 새롭게 입력된 낯선 정보에 대해서만 판단 회로를 돌리는 방식으로 에너지 소비를 효율화한다.

마스크를 쓴 모나리자는 새로운 정보다. 따라서 당신은 마스크를 쓴 모나리자를 본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다. 신비한 미소가 거세된 낯선 시각적 정보를 접한 당신의 뇌가 일순간 혼란을 일으킨 것이다. 하지만 혼란은 잠시일 뿐. 당신의 뇌는 신비한 미소가 거세된 모나라자에 대한 새로운 가치 판단(괴이하다, 우스광스럽다)을 내린다. 그리고 이 새로운 가치 판단 경험은 재활용을 위해 기록된다.



인간은 정보처리 기기이다. 인류 문명이 탄생한 이후 정보의 양은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인간은 늘어난 정보를 처리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 팬더믹에서 살아남은 인간들은 유례를 찾기 어려운 정보 결핍의 위기를 맞닥뜨리고 있다. 지금 지구촌의 거의 모든 인간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마스크는 상대 얼굴을 인식하기 어렵게 만든다. 즉 마스크를 쓰지 않던 시절에 비해 상대방을 판단할 정보가 부족해졌다는 의미다. 심지어 마스크 쓴 사진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 프로필 사진으로 교체한 사람도 적지 않다. 인간 스스로 관계 형성에 필요한 정보를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인류가 겪고 있는 정보 부족 현상은 마스크 착용에 그치지 않는다. 이전에는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던 미팅과 행사들이 줄줄이 온라인으로 전환되고 있다.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대면 미팅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 출석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던 학교도 다르지 않다. 그동안 학계가 거부해왔던 온라인 수업이 큰 저항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끼리 오프라인에서 접촉할 기회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정보 관점에서 코로나에 의한 커뮤니케이션의 언택트화는 명백한 한계를 안고 있다. 오프라인 미팅에서는 ‘같은 공간’에 마주 앉은 상대와의 대화 이외에 다양한 ‘정황적 정보’를 확보할 수 있었다. 때로는 정황적 정보가 실제 대화보다 더 큰 가치를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줌이나 메신저와 같은 온라인 미팅에서는 메마른 대화 이외의 정황적 정보는 꿈도 꿀 수 없다. 코로나가 촉발한 언택트 시대에는 정확한 의사 결정을 위해 필요한 정보의 절대적인 양과 질이 턱없이 모자란다.

인간은 관계의 동물이다. 코로나 팬더믹이라는 위기적 상황에서는 원활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데 필요한 정보의 유통양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관계 지향적인 젊은 계층에서 코로나 우울증이 더욱 확산하는 이유다. 기업도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이다. 언택트 미팅에서 정황 정보가 거세된 적당한 깊이의 정보만으로는 효율적 기업 활동을 유지하기 어렵다. 코로나 이전에 유능하다는 소리를 듣던 직장인들은 뒤바뀐 환경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깊이 있는 인간관계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정보가 급속도로 줄어든 상황에서 정보기기로서의 인류는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걱정할 것 없다. 인간은 하나의 거대하고 복잡한 정보처리 장치이다. 인간은 입력되는 정보를 경제적으로 처리한다. 만약 정확한 가치 판단에 필요한 정보가 차단되면, 이를 보완하기 위한 전혀 새로운 형태의 정보를 찾아낸다.

그렇다. 지금 당신이 겪고 있는 정보의 결핍은 일시적 현상일 뿐이다. 결국 인류는 코로나가 거세한 정보를 대체할 새로운 정보를 찾아낼 것이다. 그 새로운 정보는 양과 질 면에서 포기해야 했던 기존의 정보를 넘어설 것이며, 인류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 것이다. 그날이 오면 우리는 ‘마스크를 쓴 모나리자’를 보고 아름답다고 감탄을 할 것이다.

결국 선택은 당신이 몫이다. 과거에 사로잡혀 도태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정보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시대에 올라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