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성의 금융CAST]시중은행이 인뱅을 한다면…

by김유성 기자
2021.04.17 11:00:00

시중은행 인터넷뱅크, 존재 이유가 뭐?
소비자 편익 증진과 과연 맞는지 살펴봐야
진짜 소비자 불만은 금리, 또 그리고 금리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냉혹한 스타트업의 세계. 스타트업 열 중 아홉은 사라집니다. 대부분은 망하고 성공한 몇몇 소수만이 신화로 알려질 뿐입니다.

살아남는 스타트업과 그렇지 못한 스타트업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다양한 이유가 있긴 하지만, 시장내 ‘불합리함’ 혹은 ‘부조리함’을 찾아서 개선시켜준 곳이 확실히 살아남는 것 같습니다. 쉬운 말로 소비자들이 뭘 불편해하는지, 혹은 어떤 것을 필요로하는지 인지한 스타트업이 성공했다는 뜻입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은 말할 것도 없고 카카오 같은 기업들도 스타트업에서 대형 기업으로 올라서게 된 배경에는 명분처럼 ‘세상을 바꾼 무언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진 : 이미지투데이
소비자들의 열망을 이용했던 극단적인 사례 하나

이런 명분을 잘 잡으면 사기도 칠 수 있습니다. 성공한 창업자로 연극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테라노스라는 바이오 진단 업체가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을 10년 넘게 속일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테라노스는 미국 의료 시장의 어떤 부분을 건드렸을까요? 바로 취약한 의료보장 제도입니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미국내 의료비는 살인적이라고 합니다. 한 예로 의료보험 미가입자가 코로나19 치료를 받게 되면 4000만원 넘는 돈을 부담해야 합니다.

의료보험에 가입돼 있다고 해도 한 번 보험 혜택을 받으면, 보험료가 크게 올라갑니다. 섣불리 비싼 치료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세계 최첨단 전투기를 만들고 화성에 로봇까지 보내면서 돈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국민이 수두룩하다는 게 미국이 가진 아이러니였던 것입니다.

이런 미국 사회에 엘리자베스 홈즈가 나타납니다. 스탠포드 대학 중퇴자, 파란 눈의 금발머리. 미국 백인 주류 사회가 환영할 만한 외모의 그는 그만의 스토리텔링으로 주변 사람들을 매혹시킵니다.

엘리자베스 홈즈 테라노스 창업자
피 한 방울로 수백가지 질병을 미리 진단할 수 있다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던 것입니다. 동네 상점이나 집에서 싼 값에 건강 진단을 하면서 미리 중병을 막을 수 있다는 개념인 것이지요. 보통의 미국인이라면 느낄 수 밖에 없는 불안감(병에 걸리면 어떻게 하지?)을 자극합니다.

미국 의료 시장이 갖고 있는 모순점을 테라노스의 제품이 해결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면서 투자금이 몰려옵니다. 순식간에 우버를 뛰어넘는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으로 발돋움합니다.

조지 슐츠, 헨리 키신저 같은 미국 전직 국무부장관들마저도 이 회사의 이사진으로 합류하면서 홈즈를 감쌉니다. 사기극이 천하에 드러나도 그를 감싸려고 했던 것을 보면 홈즈가 줬던 환상(세상을 바꾸겠다)은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간편결제와 인터넷뱅크가 바꾼 세상

2000년대 PC 시대로 돌아간다고 생각해봅시다. 아니 2015년 이전을 생각해보세요. 당신이 온라인 쇼핑을 하고 마음에 드는 상품을 사기 위해 카드 결제를 한다면….

‘구매하기’ 버튼을 누르면 별도의 창이 뜹니다. 신용카드로 결제하기 위해서는 본인 인증을 해야 합니다. 공인인증서로 하고, 이동을 합니다. 카드사 로그인을 하고 비밀번호를 누르는 과정을 거칩니다.

문제는 카드사마다 이런 과정이 달랐고 비밀번호 체계도 달랐답니다. 빈번하게 카드 결제를 온라인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헷갈리기 쉬웠습니다. ‘비밀번호 5회 입력 오류 시 거래 중단’이라는 강력한 벽 앞에 결제를 포기한 적도 있을 것입니다.

송금은 어땠을까요? 1만원 송금하려고 은행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기본적으로 깔아야하는 프로그램이 다발로 있습니다. 그리고 공인인증서로 자기인증을 합니다. 로그인을 합니다.

실제 돈을 보내기 위해서는 보안카드나 OTP 번호를 눌러야 합니다. 보통은 이 과정까지 헤매다가 오곤 했습니다.

이런 과정은 금융사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장치였습니다. 소비자들은 이 장치를 하나하나 넘으면서 금융사들의 검증을 받아야 했던 것이지요.



쉽게 말해 은행과 카드사들이 만든 ‘결제와 송금’이라는 헤게모니에서 소비자들이 알아서 이 룰(rule)을 익혀야 했습니다. 외국인은 접근조차 하기 힘들었던 구조였습니다.

이미지투데이
이 헤게모니를 깬 게 간편결제, 송금 업체들입니다. 소비자들의 불만을 읽고 이를 개선하려고 노력했던 것입니다. 이젠 이들 서비스가 대세가 됐고 완고했던 금융사들도 이들을 닮아가려고 노력 중입니다.

은행들의 인터넷뱅크, 과연 뭘 바꿀것인지?

시중은행들이 인터넷뱅크 설립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 인가가 나고 자본금을 확충해 앱을 개발하고, 소비자들에게 소개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과연 시중은행들의 인터넷뱅크가 금융소비자들의 어떤 불편함을 해소시켜주고, 어떤 편익을 높여줄까요?

일단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가 초반에 인기몰이를 했던 맥락에 대해 되짚어 봅시다. 이들 인터넷뱅크는 모바일에서 거의 모든 개인금융서비스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비대면으로 통장이 개설됐고 마이너스통장도 모바일에서 됐습니다. 보안카드, OTP, 공인인증서 등의 관문이 많았던 은행 앱에서 볼 수 없었던 편리함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은행들이 자의반(운영의 편리성) 타의반(당국의 규제)으로 만들어놓았고, 소비자 편리성과 괴리돼 있던 금융시장 판도를 이들 인터넷뱅크가 바꿔놓았다는 뜻입니다.

이젠 상황이 바뀌어 시중은행들이 인터넷뱅크를 따라가야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그리고 인터넷뱅크를 출시하겠다는 속마음까지 내비쳤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인터넷뱅크를 내어 카카오뱅크나 케이뱅크를 따라잡겠다는 게 아니라, 소비자들이 뭐에 불만을 느끼는지 감지하고 이를 개선해 나가려는 노력입니다.

소비자들이 은행에 갖는 불만은..금리 그리고 금리

은행을 이용하는 데 있어 소비자들이 느끼는 불편함은 어디에 있을까요?

지난 1월 이데일리는 은행들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을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2000명이 참여한 이 조사에서 압도적 1위는 ‘낮은 금리’였습니다. 100만원 맡겨도 1년 이자가 7000원이 안되는 낮은 이자율에 대한 불만이 컸습니다. 다시 말해 소비자들이 원하는 수익의 상품 구성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노력을 은행들이 하려고 했다는 점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만....)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우리 사회가 금융권에 기대하고 있지만 잘 충족이 안되는 게 중금리 대출입니다. 1금융권에서 소외되면 2금융권 고리의 대출을 받아야 합니다. 그 골을 메우기 위한 노력을 해왔지만 잘 안된 것도 사실입니다.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의 인가 이유도 이런 간격을 메워달라는 데 있는데, 제대로 실현되지는 않았습니다.

보다 정교한 신용평가로 단순 씬파일러(금융이력 부족자)와 신용부도위험자를 구분할 수 있다면, 기존 은행들이 앞장서 금융 소외자들을 구한다면 어떨까요? (기술은 이 곳에 써야지요)

시중은행들이 인터넷은행을 하고 싶다면 시작점부터 달라야 합니다. ‘카카오뱅크를 잡겠다’가 아니라 ‘뭔가 소비자들의 편익을 높이겠다’로. 그리고 보다 정교한 기술로 신뢰받는 금융상품을 내놓아야 합니다.

결국 ‘기본에 충실한 은행’이 정답이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