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회계 읽어주는 남자]성완종 회장이 말하고 싶었던 것

by김도년 기자
2015.04.18 08:45:00

1조 규모 분식회계 눈감았다? 대주회계법인 문닫아야 할 사안
공사진행률 높여 매출 인식? 건설사 특유의 합법적인 회계처리 방식 있어
검찰, 공사진행률 높인 불법적인 방식이 뭔지 밝혀내야

[이데일리 김도년 기자] ‘(검찰이 주장하는) 1조원대 분식회계라는 게 말이 되는 겁니까. 잘 아시지만, 이건 우리가 작업진행률로 다 떨어낸 거거든요’ (故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 녹취록 중)

검찰은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총 9500억원대의 분식회계 사실을 파악했다고 몇몇 언론에 밝혔지만, 성 회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이를 전면 부인했습니다. 누구 말이 진실일까요. 검찰은 9500억원이란 숫자가 어떻게 나온 것인지, 공사진행률은 어떻게 조작했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분식회계의 내용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검찰은 우선 분식회계 금액 9500억원이 자산과 당기순이익 중 무엇을 부풀린 것인지부터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경남기업은 지난해 말 기준 총자산 1조 3100억원, 당기순손실 3500억원에 달하는 적자기업이었습니다.

검찰의 주장대로 이중 1조원이 부풀려졌다는 것은 경남기업 자산이나 순이익의 대부분이 허위였다는 것이고 당시 경남기업을 회계감사를 한 대주회계법인은 ‘눈뜬 장님’이었다는 말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렇다면, 금융감독원은 지금 당장 대주회계법인이 회계감사를 한 다른 기업의 재무제표까지도 모두 회계기준에 맞게 작성됐는지 다시 살펴봐야 합니다. 1조원의 분식회계를 숨겨준 회계법인이 있는데 버젓이 회계감사를 하도록 내버려둘 수 있을까요?

검찰 발표 금액 1조원은 매년 분식회계 규모를 누적한 숫자라는 언론보도도 나옵니다. 이건 또 뭘까요.

만약 경남기업이 20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부풀렸다고 가정합시다. 이 순이익은 이익잉여금이란 항목으로 자본총계에 남을 테지요. 분식회계를 바로잡지 않고 그대로 둔다면 회사가 사라질 때까지 계속 자본총계에 남아 있을 겁니다. 마치 몸에 생긴 혹 덩어리가 없어지지 않고 계속 남아 있는 것처럼 말이죠. 순이익을 부풀린 상태로 5년이 지난다면, 매년 2000억원씩 5년을 곱해 누적 기준으로 1조원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혹이 스스로 다섯 배나 커진 것도 아닐 텐데요.

여기서 성 회장이 남긴 말은 의미심장합니다.

“작업 진행률로 다 떨어냈다. 현대중공업 3조원, 현대엔지니어링 1조원, SK건설, 대림산업 다 그렇게 떨어냈는데 우리만 왜 이렇게 (수사) 하느냐”

현대중공업(009540), 현대엔지니어링, 대림산업(000210)…. 그가 언급한 우리나라 대표 건설회사들이 다 분식회계를 저질렀단 걸까요? ‘떨어냈다’는 건 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이 말을 이해하려면 건설사의 회계처리 방식부터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만드는 일반 제조업체의 매출액은 제품단가와 판매량을 곱해서 산출합니다. 100만원짜리 스마트폰 10대를 팔면 1000만원의 매출이 발생하는 겁니다. 하지만, 건설회사는 아파트 한 채 짓는 데 빨라야 1년은 더 걸리기 때문에 일반 제조업체처럼 매출액을 계산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공사가 끝나기 전까지 건설회사 매출은 ‘0원’일 수밖에 없고 매출도 나오지 않는 회사에 은행이 돈을 빌려줄 리가 없겠지요.



그래서 공사 발주처로부터 수주받은 금액에서 공사진행률을 곱해 매출액으로 인식하는 겁니다. 100억원 규모 공사를 수주했고 공사를 20%가량 진행했다면, 매출액을 20억원으로 계산하는 겁니다.

검찰은 성 회장이 공사진행률을 조작했다고 주장하지만, 건설사 회계에선 공사진행률을 ‘합법적’으로 조작할 수 있기도 합니다. 발주처는 줄 돈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건설사는 받을 돈이라고 ‘김칫국부터 마시는’ 계정, 즉 ‘미청구공사’라는 항목을 통해서이지요.

가령 100억원 규모 빌딩 공사를 수주한 건설사가 공사진행률을 30% 정도 잡았다고 가정합시다. 매출액은 30억원이 되겠지요. 하지만 발주처는 공사진행률이 30%는커녕 20%밖에 안된다고 봤습니다. 이렇게 되면 발주처가 인정한 20% 만큼만 매출채권으로 인정하고 나머지 인정받지 못한 10%의 금액은 미청구공사로 잡습니다. 시간이 흘러 공사진행률이 높아지면 미청구공사는 결국 발주처에 청구해 받을 수 있는 돈이 되기도 하니까 매출액으로 봅니다.

그런데 만약 건설 현장 상황이 나빠져 공사 기간이 지연되고 예상보다 많은 비용이 들어 공사진행률이 건설사 예상보다 낮아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미청구공사로 잡은 돈은 손실로 처리해야 합니다.

성 회장이 언급한 현대중공업, 현대엔지니어링, 대림산업 등이 수조원 규모를 떨어냈다는 얘기는 이들 건설사가 공사진행률을 높게 잡고 미청구공사로 매출액을 잡았던 돈이 결국 손실로 떨어져 나갔단 소리지요.

사우디아라비아처럼 자국민 고용 의무비율제(Saudization)와 같은 정책을 갑자기 실시하면 예상했던 공사원가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공사진행률이 갑자기 낮아질 수밖에 없고 이는 미청구공사가 손실로 돌변하는 원인이 됩니다.

수조원대의 매출액이 손실로 돌변하니 분식회계를 저지른 것 같지만, 이건 분식회계가 아닙니다. 공사진행률을 판단하기 쉽지 않고 공사기간 동안 어떤 돌발사태가 날 지 모르는 수주 산업의 특성상 합법적으로 인정해주는 건설사들의 회계처리 방식이지요. 성 회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이 부분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공사진행률을 높게 잡는 게 분식회계가 아니라는 소리지요.

물론 공사진행률을 조작해 진짜로 분식회계를 할 수 있는 방법도 있습니다. 공사진행률은 실제투입원가를 총공사예정원가로 나눈 금액인데요, 공사에 투입하지도 않은 철근이나 시멘트를 투입한 것처럼 속여 분자를 부풀리면 공사진행률이 높은 것처럼 조작할 수 있지요.

분식회계 규모 1조원. 어떻게 나온 수치인가요.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저지른 건가요. 지금까지 검찰이 언론에 이야기한 것만으로는 분식회계 규모를 분식(?)했을 가능성이 오히려 더 커 보입니다. 어디 한번 명확한 설명을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