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지]신혼부부의 ‘워너비’였던 ‘부곡하와이’

by김무연 기자
2020.12.26 11:00:00

1979년 개장한 우리나라 최초 워터 테마파크
1980년대 해외여행 어렵던 시절 신혼여행 명소
캐리비안 베이 등 경쟁자 등장에 관광객 줄어
2017년 폐업… 창녕군 등 재개장 위한 절차 착수

[이데일리 김무연 기자] “너 신혼 여행 어디로 가?” “제주도”

결혼을 앞둔 커플 10쌍에게 물었더니 8쌍에게서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대부분 제주도에 위치한 5성급 특급호텔에서 일주일을 푹 쉬겠다고 했다. 코로나19로 해외 여행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데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관광지 방문마저 여의치 않지만 신혼 여행을 내기엔 국내에서 제주도만한 곳이 없단 설명이다.

제주신라호텔 어덜트풀(사진=호텔신라)
실제로 제주도를 비롯해 경주, 남해 등으로 화촉을 밝힌 젊은 신혼부부가 몰려들고 있다. 이에 따라 고사 위기에 처했던 제주도, 경주, 남해 등에 위치한 고급호텔들도 한숨을 돌리게 됐다. 해외여행을 떠나기 위해 모아둔 경비를 국내 여행에 사용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숙소도 최고급 호텔을 묵는 경우가 늘었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1980년대까지만 해도 제주도는 신혼부부들에게는 ‘꿈의 관광지’였다. 신혼여행이란 개념 자체가 흔하지 않았던 당시로선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육지와 떨어진 섬으로 간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었다. 당시 대부분 신혼부부들은 온천에 들려 피로를 푼 뒤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이때 신혼부부들이 자주 찾던 곳 중 하나가 바로 경상남도 ‘부곡하와이’다.

부곡하와이 수영장(사진=트립어드바이저)


대한민국 최초 워터파크 ‘부곡하와이’

부곡하와이의 역사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남 창녕군 부곡면 지역은 과거 조선시대 온천수가 나오면서 ‘영산 온정’이라 불리다 1973년 본격적으로 온천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부곡 일대가 온천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1979년 부곡관광호텔과 더불어 국내 최초의 워터 테마파크인 ‘부곡하와이’도 함께 문을 열었다.

부곡하와이는 일본 후쿠시마 현에 위치한 스파 리조트인 ‘하와이언즈’를 참고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부곡하와이의 모기업은 재일교포 배종성 씨가 창업한 일본 에이스 전연그룹이다. 1976년 재일본한국인본국투자협회 결성 이후 재일교포 기업인들이 한국에 진출을 본격화하면서 일본인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관광지였던 하와이를 모티브로 삼은 ‘하와이언즈’를를 본따온 것으로 전해진다.



부곡하와이는 개관 당시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극장식 공연장과 워터파크 시설을 갖춰 신혼여행은 물론 수학여행의 필수 코스로 자리잡았다. 배 씨가 자신의 호를 붙여 만든 ‘백농관’에는 수천 점의 동물 박제·불상·석상·유물 컬렉션을 전시돼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했고 놀이동산인 ‘부곡하와이랜드’도 같이 운영해 가족 단위 관광객들도 빨아들였다.

부곡하와이는 개그맨들이 방송에서 언급할 정도로 전국적인 명소였다. 1991년 MBC 라디오 방송 ‘별이 빛나는 밤에’ 공개 방송에서 일반 대학생이 하와이 여행을 간다고 하자 코미디언 이경규가 “부곡 하와이 가나요?”라고 해 웃음바다로 만드는 일도 있었다.

폐업한 부곡하와이 전경(사진=인터넷 커뮤니티)


노후한 시설과 쇠퇴 그리고 폐업

하지만 1990년 대 들어 수도권을 비롯해 경남 인근에도 대규모 워터파크가 생기면서 부곡하와이는 점차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다. 1996년 삼성그룹에서 야심차게 내놓은 ‘캐리비안 베이’는 인공 파도풀과 다양한 워터 슬라이드로 물놀이를 즐기고자 하는 젊은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다만 이런 상황에도 부곡하와이는 기존 시설을 개보수한다던가 새로운 놀이기구를 들이지 않았다. 2000년대 접어들면서 경상도 지역에도 워터파크가 들어서면서 여름 피서객이 접근성이 떨어지는 부곡을 일부러 찾는 일은 더욱 줄어들면서 몰락이 가속화 됐다. 2000년 중후반부터는 부곡하와이가 아니라 직접 하와이를 갈 수 있을 정도로 해외여행이 정착화되면서 하와이 콘셉트도 무용지물이 됐다.

여기에 2014년 발생한 ‘세월호 참사’로 사실상 수학여행 등 대규모 여행이 대부분 중단됐고 이듬해 터진 ‘메르스 사태’로 관광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더 이상 운영이 어려워질 정도로 경영 사정이 나빠졌다. 2000년 약 100억원 수준이던 매출액은 2017년 26억원까지 떨어졌고 영업손실은 440억원을 넘어섰다. 결국 부곡하와이는 2017년 폐업을 결정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부곡하와이가 있는 창녕군은 과거 지역 명소였던 부곡하와이를 재개장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지난해 창녕군은 부곡하와이 운영사 제일흥업주식회사와 부곡하와이 부지 및 건물의 매각에 대해 우선 매각 협약을 체결했다. 다만 아직까지 부곡하와이 재개장과 관련한 구체적인 진척 사항은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