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감옥, 고시원

by장영락 기자
2018.11.10 03:00:00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장영락 기자] 9일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일용직 노동자 등 7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화재, 살인 등 잊을 만하면 벌어지는 고시원 사고는 한국의 빈부격차, 주거난 등 각종 사회문제를 응집해 보여준다고 할 만하다. 이번 사고 역시 그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사고는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관수동에 있는 한 고시원에서 발생했다. 모두 7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다치는 대형 참사였다. 고시원이 있는 건물은 1983년 사용승인을 받은 노후 건축물로, 스프링클러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건축대장에는 기타 사무소로 등록돼 올해 국가안전대진단 대상에서도 빠졌다.

이처럼 건물을 개조해 고시원을 운영해도 불법은 아니다. 구청 설명에 따르면 2009년 이전 지어진 건물의 경우 소방서에서 받은 필증만 있으면 영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건물은 소방시설법 시행령에 따른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 조건도 비껴갔다.

법에 따르면 고시원은 ‘구획된 실 안에 학습자가 공부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숙박 또는 숙식을 제공하는 형태의 영업’을 뜻한다. 그러나 한국 고시원의 정체성은 입주자 1명에게 보통 2평도 안되는 좁은 공간만 허용되는 기형적 공간 구성에서 찾을 수 있다. 이처럼 비정상적인 건물 형태는 사고를 악화시킨다.

긴급상황 시 고시원의 좁은 복도는 거주자의 대응에 혼란을 일으키고 탈출도 어렵게 만든다. 소방당국이 고시원 방문점검 때마다 복도에 물건을 쌓아두지 못하게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6명이 희생된 2008년 논현동 고시원 살인사건 당시에도 범인은 불을 지른 뒤 좁은 통로로 뛰어나오는 피해자들을 무차별 공격했다. 해외에서는 비슷한 형태를 찾기도 힘든 고시원의 내부 구조는 그 자체로 위험하다.



이같은 문제에도 고시원 영업이 아직까지 성행하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거주비용 때문이다. 대부분의 고시원은 보증금을 요구하지도 않고 월세도 원룸, 오피스텔 등 다른 주거형태보다 저렴하다. 여기에 인구 밀집 지역인 수도권은 노후된 아파트도 입지에 따라 억대를 호가할 정도로 부동산 시장이 과열돼 대체제를 찾기도 어렵다.

이 덕에 2007년 전국 4700여개였던 고시원은 2017년 기준 1만2000여개가 성업 중이다. 1인당 0.75평이 주어지는 내무실 환경이 장병 복지를 저해한다는 이유로 군이 막사 개선 작업을 시작한 지가 수년이 지났음에도, 이보다 결코 낫다고 할 수 없는 주거환경을 수많은 학생, 청년, 노동자들이 스스로 찾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사고가 난 고시원 역시 거주민 대다수가 생계형 일용직 노동자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희생된 이들도 40~60대의 노동자들로, 이들은 일을 하면서 값싸게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고시원을 찾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고시원은 소득 수준이 넉넉치 않은 이들이 주거비를 절약하기 위해 찾는 마지막 피난처가 됐다.

그럼에도 이러한 고시원 생활에 만족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고시원 생활을 마치고 더 나은 주거로 이동한 이들이 이를 자랑하거나, 고시원 생활의 피폐함을 토로하는 글들은 여러 생활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건설교통부가 정한 최소주거면적(쾌적하고 살기 좋은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최소 공간)이 14㎡(4.2평) 정도고, 선진국으로 갈수록 이 면적이 넓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반응이다. 2016년 서울시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지역 내 고시원의 1인당 평균 면적은 5㎡(약 1.5평) 밖에 되지 않는다.

이렇듯 거주자의 건강한 삶을 저해하는 고시원을 우리 시대의 감옥으로 부른다 해도 이를 부인할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수시로 강력사건, 화재 등 사고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감옥 만도 못한 곳이 오늘날 고시원이다.

이같은 현실은 2016년 기준 주택 보급률이 102.6%를 기록하고 있음에도 주거난민이 넘쳐나는 사정과도 무관치 않다. 시장은 인간다운 삶에 걸맞는 주거를 얻는 데 턱도 없이 많은 돈을 요구하고, 그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이들은 갈수록 늘고 있다. 현 정부가 보유세 강화 등 부동산 시장 정상화를 위한 강도 높은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번 고시원 화재 참사는 건물의 소방안전 강화, 그 이상의 사회적 해결책을 요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