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야인시대]④ 나는 한밤에 일한다 고로 존재한다

by김미경 기자
2016.08.05 06:05:30

CGV 명동역점 영사기사 조영신 씨
3교대 순환 근무…영화 관찰하는 게 일
남들 일할 때 놀아…은행·병원업무는 수월
누군가 문화생활 책임져 보람 느껴
"밤낮 바뀌어도 틈틈이 소개팅도"

CGV명동역점 영사기사 조영신 씨가 영화 상영시간에 맞춰 현장 스태프와 무전을 하며 상영관 상황을 체크하고 있다(사진=한대욱 기자 doorim@).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연애요? 밤낮이 자주 바뀌는 직업이지만 선배들 보면 다들 결혼했던데요. 틈틈이 소개팅도 하고요. 하하하.”

3교대 순환 근무는 기본이다. 매일 영화를 틀면서도 정작 자신은 마음 편하게 감상할 처지도 못 된다. 영화 한 편을 무사히 상영할 때까지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한다. 중압감도 상당할 터다. 그럼에도 서울 중구 퇴계로 CGV 명동역점에 근무하는 1년 6개월 차 ‘초짜’ 영사기사 조영신(27) 씨는 ‘천직’이라며 웃었다.

조씨는 “첫 영화 상영 1시간 전부터 9시간 오픈 근무와 낮 업무, 마지막 마감 3교대로 나눠 일하다 보니 균형적인 생활은 못 하지만 은행이나 병원업무를 볼 수 있고 한가하게 쇼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더라. 누군가의 문화생활에 기여하고 있다는 게 보람”이라고 말했다. 이어 “되도록 생체리듬이 깨지지 않도록 하루 전 패턴을 맞추는 편”이라면서 “다음 날이 마감 업무일이라면 잠이 안 와도 자려고 애쓴다”고 귀띔했다.

영사실은 극장건물 10층과 11층. 비상계단을 따라 오르다 보면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붉은색 팻말이 붙은 15~20평 작은 사무실이 나오는데 거기가 그의 작업실이다. 명동역점은 그나마 규모가 작아 6개 스크린을 동시에 관리한다.

“영사기사 하면 보통 영화 ‘시네마천국’을 떠올릴 테지만 영화이다 보니 연출한 면이 있다. 영사업무는 감독과 관객을 이어주는 역할이라고 보면 된다. 특히 영사환경이 디지털로 바뀐 후 영화 재생버튼만 누르면 되는 것으로 아는 이들이 많은데 CF·예고편·비상 시 대피 요령 등을 영화환경에 맡게 편집해야 하고 정전 등의 돌발상황 대응 등까지도 주요 업무다.”



CGV명동역점 영사기사 조영신 씨(사진=한대욱 기자).
낮이든 밤 근무든 영화시작 1~2시간 전 출근해 기계와 영사파일 상태를 점검한 뒤 음향에 노이즈가 끼는지, 조명과 관람환경은 이상이 없는지도 체크해야 한다. 영화 상영 중일 때는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보통 주문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운다. 각 관마다 영화 시작과 끝나는 시간이 달라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을 여유도 없다. 조씨는 “영화관에 근무하면 영화를 자주 보겠다고 부러워하는데 내용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관찰한다고 보면 된다”며 “영화는 근무가 끝난 뒤 일주일에 2~3편 보는 정도”라고 말했다.

애초에 영사기사가 되려던 것은 아니었다. 학비라도 벌 겸 영화관 매표안내 아르바이트에 지원하려다가 잘못 접수한 게 영사기사였다고 했다. 조씨는 “다행히 운 좋게 붙었다. 처음 영사실이란 곳에 들어갔는데 마음에 딱 들었다. 기계도 신기하고 호기심이 생기더라. 전공이 경영학이었는데 부모님 만류에도 ‘올인’하기로 결심하고 바로 중퇴했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 군대도 다녀왔고, 영사기사 자격시험도 4번 만에 붙었다. 2010년 1월 영화관 CGV 시간제 일자리 ‘미소지기’로 영사보조 일을 하며 어깨너머로 배운 지 3년. 그런 열정 덕에 2014년 10월 정규직으로 정식 입사했다.

명동이란 특성상 심야의 주 고객층은 상인들이란다. 조씨는 “가게 문 닫고 마지막 심야영화를 보러 오는 상인이 많은 편”이라며 “영화를 정하지 않고 와서 자문하는 단골도 생겼다. 영화 및 성수기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여가생활을 즐기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어 심야 관객 유입도 느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조씨는 자신이 상영한 영화를 보고 퇴장하는 관객들의 표정을 유심히 보는 편이라고 했다. 그는 “많은 사람이 행복해하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더라. 누군가의 재미와 감동, 슬픔을 책임진다는 게 멋졌고 그래서 이 일을 택했다”며 “관객은 영사의 존재를 잊겠지만 관객에게 영화 이상의 감동을 전하는 전도사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웃었다.

다만 고충은 있다고. “새벽에 홀로 콘텐츠 점검 차 공포영화를 봐야 할 때, 근무 중 영화의 반전이나 주요 장면을 보게 돼 영화에 흥미를 잃을 때가 있다. 특히 ‘이 영화 어떠냐’고 시도 때도 없이 물어들 오는데 개인취향이 있다 보니 호불호는 갈리더라. 흥행작을 맞힌 비율은 50대 50 정도였던 거 같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