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가방' 전락한 건축사무소…"혁신·변화해야"

by김미영 기자
2021.01.12 05:30:00

건축사사무소 4곳 중 3곳, ‘소규모’ 개인 운영업체
“다양하고 창의적인 건축물 기대 어려워”
시공·설계 겸업 허용, 거듭된 요구에도 ‘불발’…변화 올까

[이데일리 김미영 기자] 국내에 포진한 건축사 사무소는 작년 기준 1만2600여곳. 이 가운데 법인 사무소는 3400여곳이고, 개인이 운영하는 사무소는 9200여곳으로 전체의 75%를 차지하고 있다. 대여섯명에서 많아야 십여명으로 꾸려진 소규모 사무소가 대부분이란 얘기다.

이들 중 상당수는 부가가치가 낮은 단순설계에만 치중하고 있다. 건축업계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건축사 사무소 절반 이상은 동네의 다가구·다세대 주택이나 근린생활시설 등을 주로 설계한다”며 “모두 비슷비슷한 건축물로 다양성이나 창의성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낮은 가격으로 발주하는 데다 최저가 수주 관행이 있어 창의성을 발휘하기도 어려운 것”이라며 “지자체에서 건축 허가만 대신 받아준단 ‘허가방’이란 자조어가 나오는 이유”라고 한탄했다.

이는 그동안 건축 설계와 시공 겸업 제한 규제를 떠받쳐온 논리 중 하나인 ‘다양한 건축물 양산’과는 맞지 않는 결과다. 건설업체들이 ‘건축사의 설계 독점이 오히려 창의성을 저해한다’며 설계업 진입 규제 개선을 정부에 요구해온 이유이기도 하다. 건설업계는 그동안 건축 설계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해달라고 정부에 촉구해왔다. 창의성 문제와 함께 설계·시공·감리 구분으로 원스톱 공사에 제약을 받고, 이 과정들을 통합 관리하는 세계적인 추세와 달라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건설업계가 겸업 허용을 처음 건의한 것은 1994년이다. 그 이후 매번 규제완화 대상으로 거론됐지만, 번번이 건축설계 업계의 강한 반발에 부딪쳐 무산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초 ‘주요업무 추진계획’에서 경쟁제한적 규제 개선 일환으로 건축 설계와 시공의 겸업 제한 등 업종 간 칸막이 규제 완화를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번엔 국가건축정책위원회의 반발에 유야무야됐다.

다만 정부에서도 업역 간 칸막이 규제의 부작용을 인지하고 건축업계 반발을 최소화하면서 규제를 개선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9월 “시공과 연계해 계획·설계부터 운영 관리 등을 포함한 건설 과정 전체를 관리하는 ‘건설 엔지니어링 발전방안’을 마련해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단순 시공을 넘어 설계·시공 등 전 과정 통합 중심의 고부가가치 건설 산업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는 선진국을 벤치마킹하겠단 구상이다.

이를 위해 국토부는 시공 책임형 CM, 기술형 입찰 등 시범사업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시공 책임형 CM은 시공사가 설계부터 참여해 시공사 노하우를 설계에 반영하고, 기술형 입찰은 기존 시공사 위주의 입찰 참여가 아닌 설계사와의 공동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건축학과 한 교수는 “겸업을 허용하면 효율성이 높은 굿 아키텍처(좋은 건축물)를, 겸업 금지를 유지하면 다양성이 보장되는 엑셀런트 아키텍처(훌륭한 건축물)를 지향하겠다는 뜻”이라며 “최종 소비자가 이를 결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