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의 시대]복잡한 가업승계‥신탁 100% 활용법

by장순원 기자
2020.11.21 09:17:12

원활한 가업승계를 위한 플랜

[배정식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 센터장] 기업의 승계는 단순히 자산의 이전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중소 및 중견기업은 우리 경제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기업의 창업과 혁신정신은 국가의 발전, 나아가 그 구성원들인 국민의 삶을 책임지고 있다. 그래서 가업승계를 단순히 ‘부의 대물림’이라는 관점에서만 인식하고 접근해서는 안된다. 우리나라에도 ‘100년 기업’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이 가업승계를 통해 견실한 기업으로 성장함으로써 경제에 크게 기여할 수 있도록 세제를 포함한 종합적 가업승계 지원 방안에 대한 연구와 정책이 필요하다.

배정식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 센터장
중견기업 40%, 경영권 승계가 화두

중소기업중앙회가 업력 10년 이상 50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8년 중소기업 가업승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소기업 58.0%가 가업승계를 계획 중이라고 응답했다. 반면 가업승계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기업은 40.4%로, 전년 대비 8.4%포인트 상승했고, 이유는 ‘불투명한 사업 전망 및 어려운 경영여건’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가업승계 과정에서 가장 큰 애로사항은 ‘조세부담’으로 나타났다. ‘2018년 중소기업 가업승계 실태조사’에서는 가업승계의 애로사항으로 ‘상속세 등 조세부담’이 69.8%였다. 또한 ‘복잡하고 까다로운 가업상속공제제도’ ‘후계자 역량부족’ 등도 애로사항으로 나타났다.

과거 손톱깎이 시장에서 세계 점유율 1위까지 올랐던 ‘쓰리세븐’이 2008년 창업주 사망 이후 150억 원가량의 상속세를 마련하지 못해 경영권을 매각한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이 사례는 적정한 가업승계제도가 마련되지 못할 경우 한 기업과 주주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라 국가적인 손실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삼성의 사례는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이 세계 최고수준임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우리나라의 상속세는 상속을 받는 사람 기준이 아니라, 돌아가신 분의 남겨진 전 재산에 대해 일정한 공제를 한 후 세율이 적용되는데 30억원이 넘으면 상속세율은 50%가 적용된다.

주식의 경우 고인이 대기업 최대 주주이거나 최대 주주의 가족 등 특수관계인이면 세율이 60%로 높아진다. 다만, 중소기업의 경우는 2020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할증평가 대상에서 제외된 상태다. 삼성의 경우 주식가치만 약 18조 수준으로 세금이 11조원에 육박하고 있으니 가업승계에 있어 세금은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가업상속공제

‘가업상속공제’란 중소기업 등의 원활한 가업승계를 지원하기 위해 거주자인 피상속인이 생전에 10년 이상 영위한 중소기업 등을 상속인에게 정상적으로 승계한 경우에 최대 500억 원까지 공제해 주어 가업승계에 따른 상속세 부담을 크게 경감시켜 주는 제도이다.(‘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18조)

가업상속공제는 시장환경을 반영한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2016년부터는 1인 승계방식에서 공동승계 방식으로 변경되거나, 2020년부터는 엄격한 사후관리 요건의 완화를 꼽을 수 있다.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가업상속공제 건수는 63건에서 80건으로 상승하고 공제금액도 940억원에서 2000억원으로 증가하였지만 아직은 제도활용은 낮은 편이다.



가업상속공제를 받기 위해서는 가업, 피상속인, 상속인 기준으로 요건을 충족해야 하고 일정기간 동안 충족해야 하는 사후관리 요건도 있다.

우선 ‘가업’은 피상속인이 10년 이상 계속하여 경영한 매출액 3000억원 미만의 중소·중견기업을 말한다. 피상속인은 피상속인을 포함한 최대주주 지분이 50% (상장주식인 경우 30%) 이상을 10년 이상 계속 보유하고 대표이사 재직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가업을 이어받을 상속인은 상속개시일 현대 18세 이상이어야 하고 상속개시일 전 2년 이상 직접 가업에 종사해야 한다. 또 상속세 과세표준 신고기한까지 임원으로 취임하고, 상속세 신고기한부터 2년 이내에 대표로 취임해야 한다.

사후관리 요건 중 하나로 사업의 이익 여부와는 관계없이 7년 동안 고용인원 유지에 대한 부담이 있다. 20년부터 과거 10년에서 7년으로 완화되었고, 시장환경변화에 따른 일정한 범위에서의 업종 변경도 허용하고 있다. 또 사후관리 기간 동안 자산 처분 허용 범위도 확대하였다.

가업승계에서 신탁 활용

가업의 승계는 결국 ‘주식 이전’을 뜻하며, 가업승계, 즉 주식승계 과정에서 세금을 줄이기 위해서는 기업의 가치를 중장기적으로 낮추는 컨설팅이 필요하였다. 또 다양한 지원정책도 필요하였다. 그런데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창업자의 창업정신을 받들고 날로 복잡해지는 기업환경을 개척해갈 수 있는 후계자를 양성하는 것이다. 적절한 신탁활용이 이에 대한 해법이 될 수 있다.

주식을 신탁함으로써 창업주는 자신이 생각하는 후계자에게 주식을 승계할 수 있고, 수탁자인 금융기관은 주식의 유언대용신탁계약에서 정해진 내용대로 주식을 관리하며 의결권을 행사하고 사후에는 지정된 사후 수익자에게 안전하게 주식을 이전할 수 있다. 또한 수익자 연속신탁의 개념과 결합할 경우 대를 이어 가업이 이어지도록 유연한 승계플랜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최근 유언대용신탁으로 맡겨진 재산은 유류분의 기초대상에서 제외된다는 1심 판결과 항소심 결과가 이어지면서 가족들간 상속이나 가업승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요소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직은 우리의 법 제도상 제한사항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수탁자인 금융기관이 의결권 있는 주식을 신탁할 경우 ‘자본시장법’ 규정에 의해 의결권은 15%를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15% 이상 신탁된 주식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이상의 주식을 보유한 대주주라면 경영상의 현황 등을 고려해 신탁 여부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주식의 이전 과정에서 신탁을 활용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창업주가 신탁의 사후 수익자를 지정함으로써 그에게 기업을 승계해줄 것이라는 의지를 분명히 밝힐 수 있고, 실제 유고가 발생할 경우 위탁자가 지정한 대로 주식승계가 좀 더 투명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배정식 센터장은…

1993년 하나은행에 입사해 현재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 센터장으로 재직 중이다. 2010년 금융권에서 처음으로 리빙트러스트를 연 뒤, 신탁의 사회적 역할을 확장하고 있다. 서울대 금융법무과정, 고려대 대학원(가족법), 건국대 부동산 대학원 등을 거쳐 호서대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현재 금융연수원 등에서 강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