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 떠버린 1조원 상권…강제로 떠나야 하는 직원들

by김진우 기자
2016.05.29 10:41:56

24일 찾은 월드타워점 주중 낮임에도 외국인 관광객 북적…일평균 3천~4천명 방문
본사·파견·용역 등 직원 1300여명 일터 사라져…'5년 한시법'으로 경제·고용에 타격
월드타워점 올해 매출 8000억원 예상…테마파크·호텔·극장 등 총 1조원 상권 날아가

[이데일리 김진우 기자] 지난 24일 오후 3시께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 7~8층에 위치한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에는 주중 낮시간임에도 외국인 관광객들이 북적였다.

글로벌 3대 명품인 루이비통·샤넬·에르메스 등 패션·잡화·의류 매장이 위치한 7층에는 커다란 쇼핑백을 양손에 쥐고 쇼핑을 즐기는 관광객들이 눈에 띄었고, 화장품·향수·액세서리 등이 있는 8층에는 설화수·후(后) 등 한국(K) 뷰티 제품들을 구매하려는 인파로 매장이 가득 찼다. 월드타워점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은 하루평균 3000~4000명 수준이다.

△서울 잠실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K뷰티 매장을 둘러보고 있다.
활기찬 매장 분위기와는 달리 월드타워점은 오는 6월 30일 면세특허 만료로 문을 닫아야 한다. ‘5년 한시법’인 현행 관세법에 따라 지난해 11월 실시된 경쟁입찰에서 탈락하면서다. 월드타워점은 공식 홈페이지에 ‘특허 만료에 따라 6월 26일까지 영업합니다’란 문구를 걸어놨다. 지난 1989년 1월 처음 매장을 열어 27년간 영업을 이어온 사업장이 하루아침에 폐점하게 된 것이다.

월드타워점 화장품 매장에서 10년간 근무해 온 30대 여직원 A씨는 오는 7월부터 ㈜두산(000150)이 운영하는 두타면세점으로 이동한다. 브랜드 파견직원인 A씨는 다행히 신규 면세점에서 인력이 필요해 새 일터를 구하게 됐다. A씨는 “저는 두타면세점으로 가지만 아직 갈 곳을 찾지 못한 직원들이 많다”며 “매대 직원들은 브랜드뿐 아니라 매장에 대한 애착이 큰데 10년 넘게 근무한 곳에서 떠나려고 하니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이 공식 홈페이지에 올린 폐점예고 알림(사진=홈페이지)
월드타워점에는 롯데 소속 직원 150여명과 청소·창고관리 등 용역업체 직원 150여명, 브랜드 파견직원 1000여명이 근무하고 있는데 모두가 A씨와 같은 사정은 아니다. 롯데 소속 직원들은 다른 면세점으로 이동하거나 휴직 등 인사처리를 하면 되지만 용역·파견업체 직원들은 일터를 잃고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롯데가 용역업체 직원들의 고용을 이어가기로 검토하고 있다는 점이다. 관세청이 이달 말에서 내달 초 신규 면세점 특허 4곳(대기업 3곳, 중견·중소기업 1곳)에 대해 공고를 내면 11~12월 중에 문을 다시 열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브랜드 파견직원들은 본사 정책과 개인별 상황에 따라 영영 월드타워점을 떠나야 하는 이들이 많다.

월드타워점에서 21년째 근무하고 있는 중간급 간부 B씨는 “월드타워점에서 장기간 근무한 직원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길 꺼린다. 6개월 동안 잠시 쉬거나 다른 곳에서 근무하다가 돌아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아무것도 결정된 건 없다”며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갈수록 이곳을 떠날 생각을 하니 애가 탄다”고 말했다.

△잠실 롯데월드몰 7~8층에 위치한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내부 모습
고용 문제뿐만 아니라 더 심각한 건 주변 상권이다. 월드타워점의 2015년 매출은 6112억원으로 국내 단일매장으로는 세 번째로 많다. 롯데면세점은 올해 월드타워점이 예상대로 영업을 이어갔을 경우 8000억원 매출을 달성할 걸로 예측했는데 테마파크·호텔·극장 등 주변 인프라를 합치면 총 1조원에 달하는 상권이다. 면세점이 문을 닫으면 연계관광 시스템이 무너질 수 있다.

월드타워점이 위치한 잠실은 서울시에서 지정한 관광특구 6곳 중에 한 곳이다. 명동·남대문, 동대문 패션타운, 종로·청계에는 이미 면세점이 들어서 서울 도심 일대는 이미 포화상태다. 서울 광진구에 있는 SK워커힐면세점이 지난 16일 특허만료로 문을 닫게 되면서 동남권에는 면세점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게 됐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10년 단위로 면세특허를 심사한다고 정책을 발표했지만 결국 20대 국회에서 법(관세법)이 바뀌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이번에 롯데·SK(034730)와 같이 중도에 사업을 철수해야 하는 기업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