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인재 양성하고, 기초과학 상용화 꽃 피웠다···이건희 회장 '과학사랑'

by강민구 기자
2020.10.28 06:00:00

1990년 ''한국의 노벨상'' 불리는 호암상 제정
이건희장학생으로 엘리트 과학인재 육성 도움
CDMA·KSTAR 등 원천기술 상용화 초석

[이데일리 강민구 기자]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별세하면서 그의 남다른 ‘과학 사랑’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엘리트 이공계 꿈나무를 육성하기 위한 장학제도를 설립하고, ‘한국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삼성그룹 주관의 호암상을 제정해 국내 과학계 저변을 넓혔다.

또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수행한 핵융합연구기술, 반도체·이동통신 기술을 상용화하는데 앞장서며 연구 저변을 만들고, 산업계 발전의 초석을 다진 것으로 과학계에서 평가를 받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핵융합실험로의 상용화 기반을 다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지난 1995년 국가연구개발 과제로 KSTAR(한국형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 상용화가 추진되면서 총 예산 1500억원 중 300억원의 민간 기업 투자가 필요했다.

당시 과학계 내외부에서 KSTAR 상용화 필요성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이었다. 이론에만 머물러 있던 핵융합실험로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낮게 봤다. 이 회장의 지시를 기반으로 삼성전자, 삼성종합기술원 등이 함께 하며 상황이 반전됐다. 삼성전자는 현 KAIST 문지캠퍼스에 핵융합 실험장치를 설립하는 등 초전도자석 분야를 맡았다. 당시 시설 투자액만 500억원 이상이 투입됐다. 삼성이 참여하자 국내 다른 기업들도 흔쾌히 참여하면서 훗날 한국이 ITER(국제핵융합실험로) 건설을 이끄는 핵심 국가로 발전하는데 기반이 됐다. 이경수 전 ITER 사무차장은 “삼성이 참여하면서 핵융합실험로의 기틀을 마련했고, ITER 참여와 국내 산업계의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며 “당시 국가적인 사명에 도움이 돼야 한다는 인식을 가졌던 이 회장의 혜안과 적극적 투자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반도체, 이동통신 기술 상용화를 위해 정부 출연연구기관과의 협력에도 관심을 가졌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의 적극적 협력과 원천기술을 활용해 반도체 기술과 이동통신 발전을 일궈냈다. 최문기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삼성은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반도체, 90년대 CDMA를 비롯한 이동통신 원천기술과 관련해 ETRI와 협력해 상용화를 이뤄냈다”며 “당시 미국 퀄컴이 개발한 CDMA 기술과 GSM(국제표준기술) 활용을 놓고 말이 많았는데 이 회장을 중심으로 삼성에서 상용화를 추진하면서 반도체, CDMA, 스마트폰 기술의 상용화를 이뤄내며 한국이 반도체·통신 기술 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기틀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해외에서도 이러한 삼성의 연구개발 역할에 주목했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지난해 발간한 ‘네이처 인덱스’의 한국 특집편을 통해 한국 과학계 발전사를 조명하며 국내 연구개발에 가장 많은 지원을 한 기업으로 삼성을 지목했다. 삼성의 가장 큰 연구 파트너는 성균관대, 서울대, KAIST, 스탠포드대,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순으로 나타났다. 네이처 인덱스에 따르면 삼성은 2019년 82건의 우수논문을 게재해 10.36으로 국내 기업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12 호암상 시상식 기념촬영 사진. 1열 좌측부터 사회봉사상 이동한 이사장 내외, 이현재 이사장, 김황식 국무총리, 이건희 회장 내외, 예술상 진은숙 작곡가 내외, 2열 좌측부터 과학상 김민형 교수 내외, 공학상 현택환 교수 내외, 의학상 정재웅 교수 내외.(사진=호암재단)
지난 1990년 이건희 회장이 부친의 뜻을 기려 공학, 의학, 예술, 사회봉사 등에서 상을 수상해 온 ‘호암상’은 한국을 대표하는 과학분야 상으로 발전했다. ‘노벨상 족집게’로 통하는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예측한 노벨상 한국인 후보 대부분이 호암상을 거쳤다. 올해 노벨화학상 분야 수상 후보로 거론된 현택환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석좌교수를 비롯해 유룡 KAIST 화학과 특훈교수, 박남규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 김빛내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등이 상을 받았다.

이 회장은 엘리트 중심 과학인재 양성에도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삼성이건희장학재단(現 삼성장학회)는 지난 2002년 설립이래 2016년 신규 장학생 선발을 중단하기까지 국내 과학계 엘리트 인재를 양성했다. 매년 50명~100명의 장학생들을 선발했는데 이중 상당수가 과학기술인이었다. 1인당 25만달러(약 3억원)에 해당하는 규모로 생활비, 학비를 충당하도록 했다. 이러한 제도를 기반으로 해외에서 유학한 연구자들은 대부분 과학계를 이끌 거목으로 성장했다. 노준석 포항공대 기계·화학공학과 교수(6기 장학생)는 “장학금을 통해 해외에서 안정적으로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고, 대부분의 장학생들이 국내외 연구계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며 “현재까지도 매년 정기적으로 장학생들이 모이며 교류하고, 협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