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조성욱 후보자 ‘김상조 아바타’ 벗어나려면

by김상윤 기자
2019.08.12 06:00:00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9일 오후 서울 중구 공정거래조정원에서 소감을 말하기 전 웃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세종=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김상조 아바타(분신).”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하마평에 오를 때부터 들려온 얘기다. 조 후보자에 대한 비하가 아닌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전 공정거래위원장)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진 공정위에서 후임 위원장으로서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우려한 목소리다. 조 후보자와 김 실장간의 사적인 인연도 한 몫을 했다.

그가 지난 9일 공정위원장 내정 직후 밝힌 소감은 아쉬웠다. 쏟아지는 질문에 ‘문재인 정부의 공정경제의 틀을 유지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뿐이었다. 청문회를 앞둔 시점이어서 조심스럽다고 했지만 그래도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의 한 축인 공정경제를 책임질 새로운 수장의 의지와 방향은 보여 줬어야 했다. 시장경제 주체에게 불확실성은 가장 리스크이기 때문이다.

사실 조 후보자의 공정거래에 대한 식견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김 실장이 현실 참여형 학자였던데 비해 조 후보자는 학구파였던 탓이다. 2003년 발표한 ‘공정거래법상 대기업정책의 평가 및 과제’ 논문은 탁월한 식견과 논리를 보여주기는 했지만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났다. 조 후보자가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지목한 잘못된 대기업 지배구조와 과도한 부채는 이미 상당 부분 시정됐다. 김 실장 말대로 재벌은 끊임없이 변화했고, 또 진화했다. 시장 친화적이었다고 평가를 받은 김 실장의 정책을 이어받겠지만, 한일 경제전쟁 등 변화된 상황 속에서 진화된 공정위 수장의 판단에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공정위의 경쟁주창 역할 강화도 마찬가지다. 해외 경쟁법학자들은 공정거래위원장이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것을 높게 평가한다. 다른 부처의 경쟁제한 정책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어서다. 공정위가 저비용항공사(LCC) 진입 문턱을 낮춘게 대표적이다. 다만 전임인 김 실장이 재벌정책과 갑을관계 개선에 집중한 탓에 상대적으로 소외받던 분야다.



성장엔진이 식어가는 한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방법이 규제 개혁이다. 진입장벽을 허물어 기존 시장을 독과점한 채 안주하고 있는 기업들을 무한경쟁 속으로 몰아넣어야 한다. 일례로 공정위는 최근 공기업의 갑질을 개선하는 대책을 발표하긴 했지만, 정작 공기업의 독과점 구조 개선이라는 핵심에는 손을 대지 못했다.

공정위가 지난 2년간 적극적으로 규제개혁에 나서지 못한 것은 기득권과 충돌 우려가 사실 컸지만 공정위가 경제분석 분야에 충분한 역량을 쌓지 못한 탓도 있다.

전 세계 경쟁당국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분야는 경제분석 기능이다. 단순히 시장의 독과점 상황만 조사를 하는 게 아니라, 독과점을 고착화시키는 제도, 시장 형태 등에 대해 상시적으로 조사가 이뤄진다. 반면 한국 공정위는 특정 불공정행위가 발생했을 때 조사를 지원하는 식으로 경제분석이 이뤄지는 것에 불과한 실정이다.

경제분석 기능이 강화되면 기업 결합(M&A) 심사도 속도를 낼 수 있다. 제때 공정위의 승인이 떨어져야 하지만, M&A 신청이 들어온 후에야 시장분석을 시작하기 때문에 심사가 지연될 수밖에 없고, 기업들의 리스크만 확대될 뿐이다.

조 후보자가 ‘김상조 아바타’라는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색깔을 보여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