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이성기 기자
2016.08.18 06:30:00
정태수 김우중 전 회장도 숨긴 재산 들통나 압류
2012년 발족 후 5조 2000억 체납세 징수 실적 성과
FIU 정보 활용으로 해외 은닉 등 지능적 수법도 감시
[이데일리 이성기 기자] 지난 1997년 건국 이래 최대 금융부정 사건으로 기록된 ‘한보 사태’를 일으킨 정태수(93) 전 한보그룹 회장. 정 전 회장은 재판을 받던 중 2007년 5월 치료 목적으로 일본으로 출국한 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외 도피 생활 중이다.
일본 출국 뒤 카자흐스탄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정부가 2008년 1월 범죄인 인도 청구를 하자 그는 같은 해 범죄인 인도 조약 미체결국인 인근의 키르기스스탄으로 자취를 감췄다. 정 전 회장은 증여세 등 2225억원의 세금을 내지 않아 2004년 이후 줄곧 ‘고액·상습 체납자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리무중이던 그의 행적이 지난 2012년 국세청의 ‘숨김재산 무한추적팀’(무한추적팀) 감시망에 포착됐다. 10여 년 전 서울시가 공익 목적으로 수용한 송파구 일대 노른자위 땅(1만여㎡)을 정 전 회장이 다시 사들이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서울시는 1999년 쓰레기소각장을 지으려 해당 땅을 80억원에 사들였는데 주민 반대로 공사는 10년 넘게 진척이 없었다. 서울시는 사업 미시행에 따른 환매의무 때문에 이 땅을 다시 정 전 회장에게 되팔아야 하는 처지였다.
정 전 회장은 이 땅을 다시 회수해 되팔면 최소 수백억 원대의 차익을 남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첩보를 입수한 무한추적팀은 해당 토지의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을 압류했다.
또 정 전 회장의 부동산 거래 내역과 재산변동 상황을 샅샅이 훑어보는 과정에서 30년 동안 등기하지 않은 시가 180억원 상당의 토지를 찾아내 등기촉탁 소송을 제기했다. 이를 통해 무한추적팀은 807억원 상당의 조세 채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김우중(80) 전 대우그룹 회장은 조세회피지역에 페이퍼 컴퍼니(Paper company)를 세워 남몰래 국내 법인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가 들통났다. 본인 명의 재산이 없으면서도 해외를 자주 드나드는 점을 수상히 여긴 무한추적팀은 김 전 회장의 생활 실태를 밀착 감시했다. 그러던 중 김 전 회장이 페이퍼 컴퍼니 명의로 재산을 숨긴 사실을 파악하고 해당 주식을 압류, 공매절차를 거쳐 163억원을 징수했다.
정 전 회장과 김 전 회장 뿐만 아니라 “세금 낼 돈이 없다”며 버티는 고액체납자들이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배우자 명의로 된 강남 고급 아파트에 거주하며 수시로 해외 골프여행을 다니거나 배우자와 자녀에게 미리 재산을 이전하고 파산신청을 한 뒤 해외로 달아나 유명 휴양지에 머무는 경우도 있다. 자금난을 이유로 양도세 수십 억원을 체납한 A기업 회장은 회사 명의의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고 해외에 초호화 콘도미니엄을 보유, 출장이나 여행시 수시로 이곳을 드나들었다.
부동산·금융자산 등을 다른 사람 명의로 은닉하는 수법 외에 배우자 명의로 고가의 미술품·골동품을 구입하는 방법으로 세금 체납추적은 피하면서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하는 일석이조(?) 수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국세청 징세과 관계자는 “기상천외한 재산 은닉 수법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현장수색 집중기간’ 운영 도중 적발된 사례도 성실한 납세자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부동산 경매로 거액의 양도차익을 챙긴 50대 서모씨는 양도세를 체납한 뒤 자취를 감췄다.
내사와 잠복 끝에 국세청 조사반원들은 그가 은거 중인 전원주택에 들이닥쳤다. 경찰과 함께 집안 곳곳을 뒤진 끝에 가마솥 아궁이 속 검은 가방을 발견했다. 5만원권과 미화 100달러짜리 돈다발 6억원이 쏟아져 나왔다.
소득세 등 1000억원대 세금을 체납한 중개업자 이모씨는 재산 추적을 따돌리려 미국에 페이퍼 컴퍼니를 세웠다. 이씨는 이 회사 명의로 서울 성북동 호화 주택을 구입해 살고 있었다. 국세청은 주택처분금지가처분 소송을 제기한 뒤 가택수색을 실시해 고급 와인 1200병과포장도 뜯지 않은 명품가방 30개, 고급 골프채 두 세트 등을 압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