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이대론 안된다]②예산심사는 '얼치기 국회' 결정판

by김정남 기자
2015.12.04 06:01:32

정쟁 동반하면서 불과 한달간 나라살림 '얼치기' 감시
결산·국감 일정 당겨야…예결위 상임위化도 검토해야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국회 예결위 회의장 내부에는 10㎡(3평) 안팎 조그만 방이 하나 있다. 이 방의 4인용 탁자 위에 놓여진 것은 서류 몇장과 소량의 과자·음료 뿐. 창문도 하나 없는 이 밀실에서 387조원짜리 한해 나라 살림살이의 막판 향방이 결정된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여야 간사와 기획재정부 예산실장, 국회 예결위 수석전문위원(차관보급) 정도만이 이 조그만 방에 올 수 있다. 50명 정원의 예결위에서 15명의 예산안조정소위원을 추려 새해 예산안을 1차로 심사하고, 여기서도 여야 합의가 안 된 쟁점 예산들을 다시 2차, 3차로 논의하는 곳이다. 이른바 ‘예산소위 증액 소(小)소위’다. 소소위가 주무를 수 있는, 그러니까 감액하고 증액할 수 있는 규모는 전체 예산의 1%도 안 되는 각각 3조원 남짓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3조원 중에서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대한민국 전체가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쪽지예산’ ‘카톡예산’이 춤을 추는 시기다. 여야 간사 같은 ‘실세’에게는 하루에도 수십통씩 민원성 연락이 온다고 한다. 여기에 여야 각자의 정치적 이해관계까지 걸려 협상은 데드라인이 가까울수록 ‘고차방정식’이 되기 일쑤다.

예결위가 이렇게 예산안 심사의 키를 쥐는 기간은 겨우 한달 남짓이다. 4명이 밀실에서 머리를 맞대는 기간은 일주일도 안 된다. 예산정국이 ‘시간과의 싸움’으로 흐르는 관행도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예결위원장인 김재경 새누리당 의원은 “올해 결산심사와 국정감사가 늦어져 예산안 심사 전부터 이미 예견은 했지만 결국 또 이렇게 됐다”고 했다.

국회가 예산안을 다루는 방식이 비정상적이라는 건 모든 의원들이 다 안다. 한 달간 정쟁까지 동반해 가면서 얼치기 심사를 하고, 그 와중에 지역구 예산을 챙기는데 목숨을 거는 게 우리 국회의 실상이다.

누가봐도 상식적이지 않은 이 방식이 그대로 유지되는 건 왜일까. 아무도 총대를 메지 않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 앞장선다고 해도 힘이 모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구 예산을 따내는데 있어 현재의 구조가 오히려 더 편하다는 건 마냥 웃고 넘길 수 없는 얘기다. 여권 한 보좌관은 “예산만큼 지역구에 어필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짬짜미’ 악습이 관행처럼 굳어진 것이다.



올해 역시 악습의 전철을 그대로 밟았다. 여야는 예산정국 막판 정쟁 속에 처리 또한 법정시한을 넘겼지만, 그 와중에도 지역구 예산 챙기기는 여전했다. 국토교통부 산하 교통시설특별회계와 지역발전특별회계 예산 중 정부원안에는 빠져있다가 국회 심사 이후 생긴 지역구 사회간접자본(SOC) ‘문지방예산’ ‘미끼예산’만 46건에 달했다. 설계비 등으로 10억원 이하를 슬쩍 끼워넣은 후 본예산으로 연결시키기 위한 전략이다.

김용철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물리적인 시간 문제 혹은 정치적인 이슈 문제로 예결위가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는 일이 다반사”라면서 “의원들의 의식이 개선되지 않는 한 쪽지예산은 100% 해소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국감 시기를 당겨서 예산안 심사시간을 버는 것이다. 통상 국감은 10월 중·하순까지 이어진다. 결국 예결위는 사실상 11월 한 달간 운영되는 셈이다. 하지만 국감 시기도 여야 협상으로 결정되는 만큼 쉽게 당겨지는 게 아니다. 국회 한 관계자는 “국감 시기를 정하는 정기국회 전후로 해서 항상 정치쟁점이 있었다”면서 “국감 시기마저도 정치화돼 결정되는 구조”라고 했다.

장기적으로는 특위로 운영되는 예결위를 상임위화(化)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구 의원들이 마치 ‘선물’을 받은 것처럼 예결위원이 돼 예산을 더 가져가는 구조가 아니라 예산·재정 전문가들이 모여 1년 내내 국가 전체의 균형예산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는 예산편성권을 가진 정부가 반대하고, 집권여당도 반대하는 사안이다. 또다른 국회 관계자는 “정부나 의원이나 예결위를 상임위화 하면 예산 따내기가 더 피곤해질 걸로 여길 것”이라고 했다.

김민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정부와 여당이 반대하겠지만 예결위 상임화는 당연히 해야 한다”면서 “예산과 결산을 심사하기 위한 기간도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