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CC 오해와 진실]조종사 빼가기 우려가 있다?

by이소현 기자
2019.02.09 08:00:00

신규 LCC 생기면 조종사 부족 '갑론을박'
"기존 항공사 기재 도입 늘어난 요인이 더 커"
조종사 지망생 늘었지만, '베테랑' 기장 수급 부족
"자체 조종사 인력 양성 및 확충에 힘써야 할 때"

토니 페르난데스(가운데)에어아시아 회장(사진=에어아시아)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어처구니가 없는(ridiculous) 이유다.”

아시아 최대 저비용항공사(LCC) 에어아시아의 토니 페르난데스 회장은 지난해 12월 한국어판 자서전 발간을 기념해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자와 만나 국내 항공사에 조종사가 부족하다는 논란에 이같이 말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페르난데스 회장은 15여년전에 항공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에어아시아 아카데미를 설립한 것이 항공 비즈니스에서 결정한 일 중 최고의 선택이라고 자부했다. 그는 에어아시아 아카데미는 초기에 20명으로 시작해 현재 2500명이 교육을 받고 있으며, 에어아시아에서 근무하는 인력 80%가 이곳에서 직접 배출한 인재라고 강조했다.

페르난데스 회장은 “에어아시아 설립 초기에 번 수익 전부를 아카데미에 투자한 덕분에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아시아 최대 LCC인 에어아시아 최고경영자(CEO)의 조종사 인력 육성에 대한 경영철학은 국내 항공업계에 뼈아픈 대목이자 시사점을 준다.

국내 항공업계가 가파른 성장 속도를 견인할 조종사 수급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어서다. 전 세계적으로 항공수요가 늘어나는 가운데 국적 항공사들이 잇따라 항공기를 도입, 덩치를 키우면서 숙련된 조종사에 대한 수요가 넘쳐나고 있다.

실제 신규 LCC 진입을 앞두고 기존 항공사들은 ‘조종사 빼가기’ 우려가 크다고 주장했다. 과거 LCC가 생겨날 때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에서 인력 유출이 잇따랐던 경험이 있어서다.

신규 항공사 도전에 나선 에어로케이, 에어필립, 에어프레미아, 플라이강원(사진=각 사)
이에 신규 LCC 설립을 추진 중인 관계자는 “조종사 부족 문제는 신규 항공사 설립보다는 기존 항공사의 신규 항공기 추가 도입으로 인한 요인이 더 크다”고 반박했다. 지난해 새로 등록한 운송사업용 항공기 29대 중 LCC가 도입한 것은 19대로 66%에 해당한다. 올해 국내 항공사들은 총 40대 규모의 신규 항공기 도입 계획을 세웠다.

또 신규 항공사 1개 설립으로 필요한 조종사는 36명(비행기 3대)으로 기존 항공사 조종사 채용인원 6000여명 중 0.6%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신규 LCC 면허심사에서도 조종사 수급은 주된 평가 요소다. 항공운송사업 면허 심사를 주관하는 국토교통부는 최근 신규 LCC에 채용 방안을 확정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신규 LCC는 조종사 빼가기 등의 불필요한 이슈를 없애기 위해 국내 항공사가 아닌 중국, 중동 등 외국항공사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기장 등 명단이 담긴 계획서를 제출했다.

국내에 조종사를 지망하는 인력은 매년 늘고 있지만, 자격증을 취득하고도 항공사에 취업하지 못한 이들이 절반이 넘는 등 국내 항공사 취업 적체현상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교통안전공단의 항공종사자 자격증명 취득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운송용 조종사(기장)’ 386명, ‘사업용 조종사(부기장)’ 1544명 등 총 1930명이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항공일자리포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적 9개 항공사 운항(조종) 부문에 신규로 취직한 인원은 대한항공 200명, 아시아나항공 128명, 제주항공 126명 등 총 848명이다.

지난해 조종사 자격을 취득한 이들이 지난해 항공사 조종사로 신규로 취직했다고 가정하면, 취업률은 43.9%에 그친 셈이다. 매년 수백명 조종사 지망생들이 자격증을 취득하고도 취업하지 못해 실업자로 전락하고 있는 것. 2017년 1864명, 2016년 1665명 등이 사업용 조종사(부기장) 자격증을 취득했으나 절반가량이 취업하지 못해 적체된 인원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사업용 조종사(부기장) 자격증을 취득한 인원 1만2152명 중 여객 운송용 조종사(기장) 자격증으로 교체한 인원은 5192명(42.7%)에 그쳤다반면 항공사들이 원하는 현장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베테랑’ 조종사 수급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항공기 급증과 함께 한편으로 국내 조종사 인력이 해외로 유출되고 있어서다. 최근 5년간 외항사로 이직한 국내 조종사는 393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국내 항공사의 높은 근무강도와 낮은 처우 등으로 고액의 연봉을 제시하는 중국과 중동 등 해외로 이직하는 베테랑 조종사들이 늘고 있다”며 “반면 외국인 조종사는 내국인 고용문제로 확대가 어려워 항공 조종사 순유출 규모가 매년 증가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항공사 자체 조종사 인력 양성에 힘써야

항공사 내 승진 적체도 조종사 인력 유출의 원인 중 하나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대형항공사는 부기장이 기장으로 올라서는 데 걸리는 시간은 통상 12~14년, 제주항공과 진에어 등 LCC는 5~6년이 소요된다.

LCC업계 관계자는 “대형항공사 부기장들은 조기 기장승급을 위해 LCC로 이직하고, 이후 일정의 기장 비행시간을 채우면 보수가 좋은 중국이나 중동 항공사로 이직하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국내 항공사들이 장기적인 관점으로 숙련된 조종사를 자체적으로 양성하는 데 힘써야 한다는 지적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기존 항공사들이 조종사를 자체적으로 양성하는 데 투자하지 않고 타 항공사에 근무하는 경력 있는 조종사를 스카우트하는 방식으로 인력을 충원하는 데 급급하다”며 “항공전문 인력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면서 해외 인력 유출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조종사 수급 대책을 위해 오는 2022년까지 5년간 양질의 신규 조종사 3000명을 양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워 항공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비행훈련 인프라 확충 등에 나섰다.

“항공 전문 인력에 대한 교육과 훈련은 하나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한 페르난데스 에어아시아 회장의 이야기에 항공사들이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