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 서가]이영 회장 "포용을 통해 유리천장에 균열을 일으켜라"

by채상우 기자
2015.10.13 08:26:50

"여성과 벤처를 약자로 치부하는 편견을 깨야"
"약자와 강자 모두 포용력을 지니면 편견 깨질 수 있어"

[이데일리 채상우 기자] “나는 마음에 균열을 일으키는 책을 좋아합니다. 균열은 내 스스로의 한계를 붕괴시키고 한 단계 나를 성장하게 만듭니다.”

이영(47) 여성벤처협회 회장이 이끄는 여성벤처는 아직까지 여전히 사회적인 약자의 위치에 서 있다. 약자를 이끄는 리더이기에 이 회장은 여성벤처가 겪고 있는 유리천장의 균열을 희망한다. “여성과 벤처가 차별받지 않고 그들의 노력과 성과를 객관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이 회장이 여성벤처협회를 이끈 지 9개월을 넘어섰다. 임기가 2년인 협회장 여정의 3분의 1지점을 통과한 것이다. 이제는 무언가 보여 줄 시점. 그녀는 최근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던 여성벤처와 관련된 데이터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일부터 시작하고 있다.

가장 기본이지만 아무도 손대지 않은 일. 임기 안에 끝내지 못할 수도 있는 일을 시작하는 데 많은 반대도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 여성벤처를 하나로 모으기 위해서라도 여성벤처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고 여성벤처를 계속해 발굴하는 일이 필요했다.

‘강자의 조건’이란 책은 이 회장의 시각과 마음에 ‘균열’을 일으켰다. 강자의 조건은 올해 초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추천한 서적 중 하나였다. 이 회장은 다른 유명 서적보다 이 책에 유독 눈길이 갔다. 그녀는 마치 ‘운명’ 같았다고 책에 대한 애정을 전했다.

이 회장이 말하는 균열은 마음에 큰 변화를 일으킬만한 충격이며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과 생각의 틀을 깨는 파열이다. 강자의 조건이 그녀의 마음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는 부족한 자가 이뤄낸 승리의 역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책에서 나온 로마·몽골·영국·네덜란드·미국 등 다섯 국가 모두 전 세계를 호령한 국가지만 한 때는 그리 주목받지 못했던 시기가 있었다. 사회적인 약자로 치부되는 여성과 벤처를 모두 아우르는 내가 느끼는 동질감이었을까. 상대적으로 부족한 점을 가지고 있던 다섯 국가의 승리는 그 자체로 나에게 새로운 자극이 됐다”고 말했다.

강자의 조건은 부족한 자가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포용’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회장은 다섯 국가 중 로마의 사례를 들었다.



“기원 전 3세기 포에니 전쟁 당시 카르타고는 지중해 최강국이었다.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의 공격에 로마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가 카르타고에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던 배경은 주변국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인 포용력에 있었다. 당시 주변국을 점령하며 성장하던 로마는 점령국의 인재를 등용하고 문화를 보존하는 등 포용정책을 펼쳐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반면 카르타고는 강압적인 정책으로 주변 국가의 반기를 사고 있었다. 포용력의 차이는 화려했던 카르타고의 역사를 지워버리고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제국으로 로마를 기억하게 만들었다.”

이 회장은 인터뷰 말미에 “강자의 조건을 읽고 나서 일어난 내 마음 속 균열을 통해 여성과 벤처, 그리고 장애인과 노인, 외국인 등 사회적인 약자를 짓누르는 유리천장에 또 다른 의미의 균열을 일으키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는 강자의 조건이 강조했듯 부족한 자는 포용을 무기로 승리를 쟁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자의 조건이 전하는 포용의 힘은 현대 사회에도 적용이 된다. 포용은 어쩌면 강자보다는 약자에게 어울리는 단어다. 강자로부터 받아온 핍박과 차별을 용서할 줄 아는 용기가 포용이다. 약자로 치부되는 여성과 벤처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모든 이를 감싸줄 수 있는 포용력을 가진다면 언젠가 세상이 우리를 인정하고 받아줄 것이라고 역사가 증명했다.”

이 회장은 강자가 중심인 사회 역시 포용력을 가진다면 유리천장의 균열은 더욱 빠르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약자에게 포용은 용서할 수 있는 용기라면 강자에게 포용은 편견을 제거하는 개방성이다.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편견들, 예컨대 민족, 지역, 성(性), 학벌..그런 것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강대국이 될 수 없다. 이것은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이다. 작은 편견에서 발생되는 차별과 모의를 제거하려는 노력을 해야한다.”

강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차별이라는 유리천장의 균열이 필요하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그리고 그 균열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약자는 그간의 억압을 용서하는 용기를 강자는 편견을 제거하는 개방성을 갖춰야 한다는 논리다.

이 회장은 마지막으로 이런 이상적인 이야기가 곧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고 말했다.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역사는 큰 파도와 같아 주기적으로 흥망성쇠를 반복한다.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약자도 없다. 차별받고 있는 여성과 벤처와 노인과 외국인에 대한 편견을 사회 스스로 자각하기 시작했다는 것부터가 새로운 흐름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포용력은 흐름을 좀 더 앞당기는 촉매제가 될 것이다.”

1969년 태어난 이 회장은 광운대 수학과를 졸업한 뒤 카이스트에서 암호학 관련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박사과정 졸업반에서 공부하던 2000년 데이터 보안회사 테르텐을 설립했다. 이후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협회 이사와 소프트웨어 전문기업협회 이사, 한국 CSO협회 이사를 역임하며 여성으로서 한국 소프트웨어 업계의 주축으로 활동해 왔다. 한국여성협회와는 2012년 부회장직을 맡으며 인연을 맺어 올해 2월 회장으로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