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방 무인도의 취준생, 꿈 찾아 떠납니다

by장병호 기자
2021.06.17 06:30:00

MZ세대가 만든 뮤지컬 '무인도 탈출기'
윤상원 연출, 자전적 경험 무대로
공감가는 청춘 이야기로 대학로 '눈도장'
"거창하지 않아도 되는 꿈 전하고파"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서울 종로구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2관. 지난달 18일부터 이곳은 MZ세대 취업준비생 동현과 봉수가 살고 있는 반지하방으로 변신했다. 위층에 사는 편의점 알바생 수아도 틈만 나면 놀러오는 이곳, 무인도 같은 반지하방에서 청춘들은 각자의 꿈을 찾아 노래한다.

뮤지컬 ‘무인도 탈출기’의 한 장면(사진=섬으로 간 나비)
2인극과 여성 서사 작품이 대세인 대학로에서 취준생을 위로하는 창작뮤지컬이 있어 눈길을 끈다. 30대 창작진과 배우들이 뭉쳐 만든 뮤지컬 ‘무인도 탈출기’다. 극단 섬으로 간 나비가 2016년과 2017년 연극으로 먼저 선보인 작품으로 지난해 뮤지컬로 재창작돼 초연에 올랐고, 1년 만에 재연으로 관객과 다시 만나고 있다.

극작과 연출을 맡은 윤상원(33) 연출은 최근 이데일리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6년 전 극단을 창단한 뒤 공연을 하다 손해를 많이 본 때가 있었다”며 “마침 반지하방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때 패닉의 노래 ‘달팽이’를 듣다 ‘무인도 탈출기’를 구상하게 됐다”고 밝혔다.

작품은 취준생인 동현과 봉수, 수아가 상금 500만원의 연극 공모전에 함께 도전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꿈을 이룰 수 없어서, 또는 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 답답해 하던 이들 세 청춘은 반지하방을 이상향과 같은 무인도로 삼아 각자 생각하는 꿈에 대한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인다.

면접 결과를 기다리며 안절부절 못하는 봉수, 취업이 번번이 좌절되면서 오히려 백수의 삶을 즐기는 동현, 알바 인생이지만 매일 밝은 표정을 잃지 않는 수아는 힘겨운 현실 속에서도 열심히 삶을 이어가고 있는 MZ세대의 표상이다. 현실적이면서도 공감가는 캐릭터는 윤상원 연출의 개인적인 경험과 주변 친구들의 모습이 반영된 결과다.



윤상원 연출은 “나도 한때는 취업 준비를 하고 실업 급여를 받으며 지낸 적이 있다”며 “동현과 봉수는 반지하방에서 지내던 나의 양가적인 모습을 담은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또한 “수아는 ‘난 꿈이 없는 게 아니라 찾고 있다’는 모티브를 준 친구에게서 캐릭터를 많이 빌려왔다”며 “친구들도 이 작품을 보고 많은 응원을 받아갔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뮤지컬 ‘무인도 탈출기’의 한 장면(사진=섬으로 간 나비)
‘무인도 탈출기’의 미덕은 청춘에게 섣부른 응원이나 위로를 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한 청춘에게 무작정 꿈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도 ‘무인도 탈출기’가 MZ세대와 교감하는 지점이다. 윤상원 연출은 “처음 이 극을 쓸 때는 ‘청춘은 꿈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꿈에 대한 나의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면서 작품의 메시지도 바뀌어가고 있다”며 “이번 시즌에는 꿈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사소한 것도 꿈이라 생각하면 그만이라는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고 말했다.

골목길과 반지하방을 표현한 정겨운 무대 세트,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위로를 전한다는 점은 창작뮤지컬의 대명사 ‘빨래’의 정서와도 닮아 있다. 윤상원 연출은 “‘빨래’처럼 오픈런 공연으로 선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작은 극단의 작품이기에 구체적인 계획은 갖고 있지 않다”며 “매년 공연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꾸준히 무대에 올리며 성장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전했다.

배우 박영수·안재영·박건이 동현 역을, 박정원·강찬·김동준이 봉수 역을, 박란주·손지애·이휴가 수아 역을 맡는다. ‘무인도 탈출기’는 오는 8월 1일까지 공연한다.

뮤지컬 ‘무인도 탈출기’의 한 장면(사진=섬으로 간 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