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멋대로 캠핑]여름캠핑, '부채와 선풍기' 사이

by함정선 기자
2015.05.24 09:00:00

[이데일리 함정선 기자] 애초 캠핑을 시작할 때 남편과 나의 약속은 이랬다. 봄이 시작되는 4월부터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기 전인 6월까지, 가을이 시작되는 9월부터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기 전인 10월까지만 캠핑을 떠나자고. 즉, 덥고 추울 때는 캠핑을 하지 말자는 게 목표였다.

그러나 막상 캠핑을 시작하고 보니 이렇게 기한을 정해두면 막상 1년에 캠핑에 떠나는 날이 많지 않았다. 주말 당직이라 출근하는 경우도 있고 결혼식 등 행사가 있을 때는 캠핑을 포기해야 했다. 어린아이가 감기나 장염으로 아플 때도 캠핑은 불가능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애초 약속을 깨고 7월에도 캠핑을 떠났는데, 한낮 더위가 만만치 않았다. 둘이서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전실이 있는 커다란 텐트를 치고 나면 진이 다 빠졌다. 게다가 텐트는 낮에는 더워서 안이 찜통 같았다. 잠을 잘 때 빼고는 여름 캠핑의 모든 생활은 타프 아래서 했다. 굳이 힘들게 커다란 텐트를 칠 필요가 없었다. 결국 지갑을 열었다. 여름에 꼭 필요한 타프 치는데 모든 힘을 쓰고, 텐트는 쉽게 치자는 생각에 던지면 펴지는 ‘팝업’ 텐트를 구매했다. 국산 K사의 제품으로 어른 두 명과 아이 한 명이 자기 딱 좋은 크기다. 접는 것이 약간 어렵긴 하지만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동영상을 보고 한 두 번만 따라 하면 접는 것도 일이 아니다.

캠핑을 함께 떠나는 두 가족은 동시에 ‘팝업’텐트를 구매했다.
이 텐트를 구매하고 여름 캠핑이 달라졌다. 던지는데 몇 초, 접는데 몇 초면 텐트를 설치하고 거둘 수 있으니 여름 캠핑도 크게 두렵지 않았다.



7월 중순, 8월 초까지 캠핑을 다녔는데 이제 텐트의 문제가 아니었다. 계곡과 그늘이 있는 캠핑장으로 떠나면 한낮에도 더위를 식힐 수 있으련만 캠핑장 예약이 쉽지 않았다. 타프 그늘도 한계가 있었다.

두 가족이 시원한 여름을 위해 구매한 캠핑용 선풍기
나는 또 지갑을 열었다. 인터넷을 뒤지고 뒤져 차에 싣기 좋은 네모난 모양의 선풍기를 산 것이다. 남편은 “선풍기까지 싣고 다니는 것이 무슨 캠핑이냐”고 나를 비판했다. 그러나 한낮 더위 아래 선풍기를 안고 있었던 것은 남편이다. 그는 그 이후부터 그 어떤 장비보다 선풍기를 먼저 챙겼다.

캠핑에 정석이 어디 있으랴. 즐겁자고 떠나는 게 캠핑이고, 문명의 이기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좋다면 그리하면 되는 것 아닐까. 부채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견딜 수 있다면 그것도 캠핑의 재미다.

일부 캠핑족들을 보면 캠핑용 냉장고를 가지고 다니는 경우도 많다. 한여름에는 아이스박스가 냉기를 지속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팀은 얼음을 만들어내는 제빙기도 가지고 다닌다. 방금 만든 얼음을 넣고 아이스커피 한 잔을 즐기는 것을 상상하면 지금이라도 지갑을 다시 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