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났습니다]"박스피 10년 응축됐던 에너지, 코로나로 터졌다"

by김재은 기자
2021.01.26 03:30:00

안희준 증권학회장 인터뷰
재벌·제조업 위주 성장모델 한계…코로나이후 구조적 변화
자산버블 가능성? 미래성장 반영돼 판단 유보

안희준 성균관대 교수이자 증권학회장이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 경영관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이데일리 김재은 기자] 코스피 3000시대가 열린 요즘. 갑론을박이 뜨겁다. ‘유동성 버블이다, 아니다. 공매도 금지 영향이다, 아니다….’

뭐니뭐니해도 투자자들의 관심은 상승이 지속될 지에 있다. 이 가운데 박스피 10년간 응축됐던 에너지가 코로나19로 발현됐다는 분석이 눈길을 끈다. 이 분석대로면 구조적 변화 속에 현재 증시가 미래성장 기대감을 반영한 만큼 당장 고꾸라지거나 폭락할 가능성보다 중장기 상승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지난해 2월 코로나19와 함께 증권학회장을 맡아 롤러코스터 증시를 겪어낸 안희준 성균관대 교수의 견해다.

“코스피 3000시대는 코로나 극복을 위한 확장 재정정책과 유동성이 유입된 영향을 분명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더 큰 기저에는 2010년 이후 10년여의 박스피를 거치면서 응축됐던 에너지가 코로나19를 계기로 터져나온 것이다. 단기 조정이나 일부 변동성이 있을 수 있지만, 다시 코스피 2000까지 떨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재벌·제조업 성장 한계 10년…구조적 변화 시작

코로나19 이후 3200까지 뚫어버린 코스피지수를 두고 공매도 금지 영향이 적지 않다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그는 박스피로 응축된 에너지가 이제 막 발휘되는 시기로 봤다. 지난 2010년대 박스피 10년이 외국인과 기관의 공매도 탓이라기보다, 재벌·제조업 위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새로운 주도주가 등장하지 못하면서 정체됐던 시간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2010년 들어 코스피지수가 2000대 박스권을 횡보했지만, 미국은 연 10% 수익률을 보이며 꾸준히 성장했다”며 “미국의 경우 주도주의 세대교체가 꾸준히 나타난 반면 재벌, 제조업 위주의 성장을 보이던 한국은 2010년대 들어 이같은 모델이 한계에 도달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여러 여건상 응축됐던 에너지가 코로나19라는 위기를 맞으며 전반적인 구조 변화를 크게 이끌었다는 설명이다.

수 년 전 시장에서 주축을 이뤘던 포스코나 한국전력이 시총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지 오래고, 네이버(035420), 카카오(035720),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 등 혁신기술과 바이오로 무장한 종목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시장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 때문에 유동성의 힘으로 밀려올린 증시라는 평가가 지배적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구조적 변화에 따른 미래성장 기대감이 반영된 측면이 크다고 판단했다.



이같은 맥락에서 안희준 증권학회장은 현재 증시가 버블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을 유보했다. 주가수익비율(PER)이라는 밸류에이션 자체가 혁신기술주의 주가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PER라는 판단이 미래 이익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인 만큼 현재 높은 PER이 고평가(버블)된 것인지, 성장성을 반영한 것인지는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는 것.

특히 바이오주의 경우 미래 불확실성이 존재해 상황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고, 혁신기술주 역시 미지의 부분이 많아 불확실성이 높다. 불확실성이 높다는 것은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의미이지만, 구조적 변화가 수반되는 만큼 조정이 오더라도 단기에 그칠 것이란 예상이다.

그는 “유동성 장세든, 자산버블이든, 구조적 변화이든, 구조적 변혁기엔 시장에 큰 변화가 있고, 미래가 불확실하다”며 “불확실성이 커지고 변동성이 커져 시장이 출렁일 수 있다”고 봤다. 최근 빚투 현상도 두드러지고, 많이 오른 만큼 위험에 대한, 변동성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코스피가 2000 부근까지 폭락하진 않을 것으로 봤다. 구조적 변화가 모멘텀을 어느 정도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안희준 성균관대 교수이자 증권학회장이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 경영관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펀드 ETF 활용해야…장기투자 세제혜택 필요

`동학개미운동`으로 불리는 개인투자자들의 증시 직접 참여가 늘어난 데 대해선 저금리 등과 함께 펀드수익률이 낮은 영향도 크다고 밝혔다. 공모펀드 등의 수익률 부진은 시장 채널의 문제와 구조적인 문제가 얽혀 있다. 미국의 경우 시장규모대비 펀드수가 많지 않은 반면 국내의 경우 시장규모는 작고 펀드수는 많다. 판매채널 위주의 시장구조로 판매수수료가 중요할 뿐, 과거펀드가 잘 유지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특히 10년간의 박스피 역시 펀드수익률 부진에 일조했다는 분석이다. 코스피가 박스권에 머무는데 공모펀드만 탁월한 성과를 내기 힘든 건 당연지사다.

하지만 결국 중장기적으로 장기투자를 하고, 수익을 내기 위해선 펀드나 ETF 등 분산투자가 필수적이다. 그는 “펀드와 상장지수펀드(ETF)의 장점은 분산투자가 가능하다는 것”이라며 “10년, 20년을 내다볼 경우 시장비중에 맞춰 가치 가중방식으로 담는 펀드나 ETF가 수익률이 나쁘지 않고,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같은 맥락에서 국내증시만 담기보다는 위험관리 차원에서 해외투자도 일정부분 비중을 가져가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증권거래세와 양도소득세 확대 관련해선 “세제의 철학을 감안할 때 거래세를 폐지하고 양도세로 가는 게 맞는 방향”이라며 “거래세 유지는 다소 아쉽다”고 했다.

이어 “장기적 시장 발전을 위해 금융당국의 일관된 정책이 필요하다”며 “일정기간 이상, 일정 금액에 대한 장기보유 세제혜택을 줘서 장기투자를 유도할만한 인센티브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년에 대해 그는 “코로나19로 의미있는 행사를 못해 아쉬움이 크다”면서도 “공매도, 증권거래세, 양도소득세, IPO 확대 등 자본시장 이슈가 굉장히 많았던 만큼 학술기관으로서 연구결과를 발표할 기회가 다수 있어 보람있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