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예외 또 예외‥누더기 된 부동산 대출규제

by장순원 기자
2018.09.21 07:00:00

금융당국, 실수요 고려한다지만
수많은 예외 '시장 내성'만 키워

<그래픽=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서울에 집이 있는 공무원이 새로 발령받은 세종시의 아파트를 사려 대출을 받을 수 있을까? 지방 요지의 주택을 한 채 보유한 사람이 자식을 서울의 대학으로 보내면서 대출을 받아 학교 근처의 집을 구매할 수 있을까?

이런 사례의 주택 구매와 대출은 불가피한 실수요로 생각할 수 있다. 갑작스레 전학이나 전근을 가면 당장 머무를 곳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세나 월세라는 제도를 고려하면 굳이 집을 사지 않아도 살 곳은 마련할 수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투자로 해석될 여지도 많다.

정부가 내놓은 9·13 대책만 보면 이런 종류의 대출은 차단되는 것처럼 보인다. 주택보유자들이 대출로 집을 사는 것을 원천봉쇄하겠다며 초고강도 규제를 쏟아냈기 때문이다. 특히 집이 한 채 있어도 아주 예외적인 상황을 빼면 대출을 끼고 집을 더 사는 상황은 틀어막겠다고 공언했다. 뜨겁게 달아오른 부동산 시장을 식히려면 집으로 흐르는 돈줄을 꽉 죄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다.

하지만 일주일쯤 시간이 흐르면서 정부의 규제 칼날은 점점 무뎌지고 있다. 원칙은 주택담보인정비율(LTV) 0%가 적용되는 초강도 대출규제인데 각론에서는 수많은 예외를 인정해줘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의 세부지침에 따르면 1주택자도 자녀 교육이나 보육, 부모봉양, 전근 같은 사유가 있으면 대출을 끼고 집을 사는 게 허용된다. 자녀를 서울 대치동 고등학교로 옮기면서 대출을 받아 그 동네 아파트를 살 수도 있고 병원의 진단서나 진료 기록만 있어도 주택구매용 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다. 금융권에서조차 지방 유지의 서울주택 투자 길을 열어준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올 정도다.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심지어 다른 사례라도 금융회사 여신심사위원회에서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면 대출을 해줄 수도 있다. 대출을 늘려야 하는 은행으로서는 관대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공시지가 9억원 미만이란 단서를 달았어도 공시지가가 실거래가의 50~60%에 불과한 현실을 고려하면, 1주택자들이 이런 다양한 예외를 통해 서울 강남권 소수 아파트만 제외하고는 대출로 집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아예 대출 문을 닫을 것처럼 얘기했던 2주택자 규제도 빈틈이 많다. 생활안정자금이 대표적이다. 한채 당 최대 연간 1억원 씩 대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출 없이 서울에 7억원 짜리 집이 두 채 있다면 내년 초까지 약 4억원 가량의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다른 길도 많다. 임대사업자 등록을 하고 보유주택을 임대용으로 돌리면 된다. 임대용 주택은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주택 수에서 빠진다. 집이 서너 채인 임대사업자도 거주할 주택을 새로 살 때 은행에서 가계대출을 받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물론 금융당국으로서는 실수요자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규제강도가 강해 이들의 돈줄을 끊었다가는 큰 반발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연소득이 7000만원이 넘으면 공적 전세보증 지원을 끊기로 했다가 수도권 20~30대에 강력한 반발에 한발 물러섰던 기억도 선명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실수요와 투기수요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은 문제다. 또 손쉽게 대출을 받다가 문턱이 올라가면 반발은 어느정도 예견된 일이다. 그런데도 일부의 반발을 의식해 금융당국이 규제의 예외 범위를 넓게 해석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런 예외들은 주택시장이 다시 들썩일 때 언제든 돈이 유입되는 우회로가 될 수 있다.

정부가 부동산시장 과열이 지나쳐 규제를 강화하기로 했으면 뚝심을 바탕으로 원칙을 지켜야 한다. 수많은 예외를 만든 것은 당국이 원칙을 스스로 무력화하는 것이다. 반발에 밀리면 시장의 내성만 키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