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물에 관한 알쓸신잡]

by이명철 기자
2022.07.23 11:30:00

여름휴가와 수영복

[최종수 환경칼럼니스트(박사/기술사)] 여름휴가, 어디로 떠날 계획이세요? 코로나 재유행 조짐이 있긴 하지만 올 여름은 오랜만에 마스크를 쓰지 않고 해수욕을 즐길 수 있을 듯합니다. 우리는 매년 이맘때면 마치 정해진 연례행사처럼 휴가를 떠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휴가를 떠나기 시작한 역사는 그리 오래 되지 않습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유명한 휴가지로 사람이 몰리기 시작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60년대 후반 철도와 도로 교통 발달과 이어집니다. 교통수단이 발달하기 전에 피서는 대부분 가까운 물가를 찾는 게 유일한 대안이었습니다.

철도와 도로 교통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의 이동 거리는 조금씩 늘어납니다. 경인선이 개통되면서 지금은 사라진 인천 송도해수욕장이 인기를 끌었고, 장항선을 따라 대천해수욕장 등 서해안 해수욕장으로 사람들이 몰렸습니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에 이어 1975년 영동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서해안에 집중되던 휴가 인파가 동해안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더운 여름엔 뭐니 뭐니 해도 시원한 물이 최고죠. 맑고 시원한 계곡도 좋고 하얀 파도가 부서지는 바다도 좋습니다. 물속에 풍덩 뛰어들면 무더위도 스트레스도 한방에 싹 달아나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체면 때문에 옷을 훌렁 벗고 물속에 뛰어들지 못했던 옛날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무더위를 이겨냈을까요? 서민들은 지금과 별반 차이 없이 개울에서 멱을 감기도 하고 우물가에서 등목도 하면서 더위를 피할 수 있었지만, 체면을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겼던 양반들은 그럴 수 없었지요.

더위를 피하는 방법 대신 솔밭에서 활쏘기, 대나무 자리에서 바둑두기 등과 같이 마음 수양으로 더위를 잊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다리를 걷어 발을 물에 담그는 탁족이 그나마 몸을 물에 담그고 더위를 식힐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과거에 신체 노출을 꺼렸던 문화는 우리나라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더운 여름에도 팔다리를 내놓을 수 없는 건 서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수영복 형태의 옷이 나타나고 노출되는 부위도 조금씩 많아집니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 수영복은 짧은 치마 형태였고 남자는 바지 형태였습니다. 치마 길이도 제한이 있어서 1920년대까지 미국 해변에는 자를 들고 수영복 치마 길이를 재는 경찰이 있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 1960~1970년대에 미니스커트 길이를 단속하는 경찰이 있었던 것처럼 말이죠.

지금처럼 아슬아슬하고 파격적인 수영복으로 발전하는 과정에는 수영복 때문에 재판까지 받았던 한 여자의 웃지 못할 사연이 있습니다.



호주의 수영선수 겸 배우였던 아네트 켈러먼(Annette Kellerman)은 1907년 미국 보스턴의 한 해변에서 지나치게 노출이 심한 수영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음란죄로 체포됩니다. 그녀는 대체 어떤 수영복을 입었기에 재판까지 받았던 걸까요?

당시 언론기사를 보면 그녀가 입었던 ‘음란한’ 수영복은 위아래 한 벌의 민소매에 반바지 형태였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헬스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수준의 운동복이지만 당시에는 이 수영복 착용에 대한 논란이 법정 재판까지 이어집니다. 재판 결과 법정은 아네트의 손을 들어줬고 이 사건을 계기로 여성 수영복에 파격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나라에 수영복이 처음 들어왔을 때도 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았습니다. 1937년 8월 10일자 동아일보의 ‘피서지 통신_분실된 해안정서’라는 기사를 보면 “집에서는 적삼도 안 벗고 거리에서는 입술조차 안보이려고 붉은 칠로 감추고 다니는 여자들도 이곳만 오면 얄팍한 해수욕복 한 장에 맘 놓고 몸을 맡긴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기사 중 여자라는 단어는 눈에 잘 띄게 크고 진한 글씨로 표시하고 큰따옴표까지 붙였습니다. 당시 수영복을 입은 모습이 사회에 어떻게 비쳤는지 짐작되는 대목입니다.

휴가가 일상을 떠나 잠시나마 더위를 잊고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한다는 의미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듯합니다. 하지만 휴가기간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다 보니 휴가가 끝나고 나면 오히려 몸과 마음이 방전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휴가를 떠나는 기간은 7월말부터 8월초까지 2주간입니다. 극성수기인 이 기간을 피해서 휴가를 가면 조금은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듯한데 우리는 왜 이 기간에 한꺼번에 휴가를 가는 걸까요?

할당관세 적용 수입축산물 대형마트 판매상황 현장점검이유는 이 기간이 가장 덥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제구조와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제조업인 반도체, 자동차, 조선 등은 생산공장이 쉬면 협력업체도 쉬어야 합니다. 생산공장과 협력업체가 쉬면 주변의 식당 등 자영업자도 쉬어야 합니다.

학원도, 법원도 이때를 여름휴가 기간으로 정합니다. 우리나라 부모 중에 아이들 학원 신경 쓰지 않고 휴가를 떠날 수 있는 두둑한 배짱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자연스레 우리나라 사람들의 휴가는 7월말부터 8월초 기간에 몰립니다.

휴가지로 가는 도로는 여전히 막히고 계곡과 바다는 물 반 사람 반일 테지만 그래도 여름휴가의 동의어는 짜증이 아닌 설렘입니다. 휴가는 힘든 직장 생활을 이겨내는 낙이자 보상입니다.

오래 전 유명했던 광고 카피가 떠오릅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최종수 환경칼럼니스트(박사/기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