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손 만든 3D 의수족 기술..다친 마음도 위로하고파"[따전소]

by이영민 기자
2024.04.16 06:10:00

소말리아 파병 계기로 의수족 제작
기계공학 전공 살려 새로운 기술 개발
"장애인의 사회 문턱 낮추고 싶어"

[이데일리 이영민 기자] “장애를 경시하는 말을 들은 장애인은 위축된 경우가 많아요. 더 완벽한 의수족을 만들어 장애인들의 문턱이 낮아지면 좋겠어요.”

허준성(51) 나만애(愛)의수족연구소 대표는 국내 최초로 3D 프린트 기술을 활용한 실리콘 의수족을 만든 제작자다. 이데일리가 15일 방문한 그의 사무실 한편에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신체 일부가 절단되거나 선천적 장애 등으로 몸의 일부가 없는 이들을 위한 의수족과 유방암 환자용 가슴 모형이 놓여 있었다. 채색을 마친 의수에는 손등 위 핏줄과 피부 주름, 손톱 옆 각질까지 고스란히 표현돼 있었다.

허준성(51) 나만애(愛)의수족연구소 대표가 서울 중구 사무실에서 의수를 제작하고 있다.(사진= 허준성 대표 제공)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뒤 대기업 연구소에서 근무한 허 대표가 의수족 제작에 눈을 돌린 것은 군 복무 시절 만난 장애인 때문이었다. 1993년 UN 평화유지군으로 아프리카 소말리아에 파병된 그는 매일 아침 폭격과 지뢰에 의해 사지를 잃은 주민을 만났다. 허 대표는 “다른 애들은 식량 배급 때 먼저 받으려고 뛰어오는데 한쪽 다리가 없는 아이들은 가장 늦게 온다”며 “그곳의 아이들은 의족은커녕 목발이 없어서 나무지팡이를 짚고 다녔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다리를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이 기억을 잊지 못한 허 대표는 2014년부터 의수족 제작자의 길로 들어섰다. 의수족 제작은 첫 단계부터 만만치 않았다. 허 대표는 “제일 못하는 일 중 하나가 그림과 디자인”이라며 “친언니와 온 손가락 절단 환자가 첫 번째 손님이었는데 의수가 기성품 같이 부자연스러웠다. 당시 기술로는 최선이었지만 스스로 이 일을 하면 안된다고 생각을 할 만큼 많이 좌절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그분의 손을 다시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고, 이때부터 어떻게 하면 더 자연스러운 손과 발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했다.

대학과 연구소에서 기른 공학적 사고는 허 대표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밑거름이 됐다. 남들보다 컴퓨터나 새로운 기술을 일찍 접한 덕분에 3D 프린터로 실리콘 의수족을 만들게 된 것이다. 그는 2017년부터 지금까지 ‘실리콘 박막 필름을 이용한 의지 제작 방법’ 등 총 4건의 특허를 등록했다.



이렇게 완성된 기술은 특별한 인연으로 이어졌다. 3살 때 철로에서 사고로 오른쪽 손을 잃은 한 여성이 지난 2017년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바로 허 대표의 현재 아내다. 허 대표는 “3D 프린터로 의수족을 만들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아내의 손을 만들어줬는데 10일쯤 뒤에 칠이 벗겨졌다는 전화를 받았다”며 “미안해서 새 의수를 만들어줬는데 그 손을 만드는 한 달 동안 계속 만나면서 지금까지 인연이 이어졌다”고 웃으며 말했다.

의수 제작 사례(사진=허준성 대표 제공)
의수족으로 맺어진 인연은 점차 넓어지고 있다. 허 대표는 지난 3월 말부터 한 달 동안 몽골 울란바토르대학의 호세르덴 호즈(Hoserdene Hoze)교수에게 3D 프린터 실리콘 의수족 제작 기술을 전수했다.

그는 “세계 어디든 절단장애는 알려진 것보다 많다”며 “개발도상국은 공장에서 일하다가 사고를 입는 노동자가 많고, 선진국은 당뇨나 합병증 때문에 아프리카는 전쟁 때문에 장애가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몽골은 추운 기후 때문에 동상을 입어서 손이나 발이 절단되는 사람이 많다”며 “의수족은 가족 단위로 폐쇄적으로 전수되는 경향이 있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기술 교류가 제한되는 문제가 있는데 최근 대학 측이 배우고 싶다는 뜻을 밝혀 기술을 알려주게 됐다”고 덧붙였다.

허 대표는 지난 10년간 몰두한 의수족 제작을 두고 ‘impossibe(불가능한 것)’로 표현했다. 그는 “의수족은 사실 100점짜리를 만들 수 없다”며 “그럼에도 100%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기 때문에 그 말을 ‘I’m possible’(나는 할 수 있다)로 바꿔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