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공정위 권위, 엄벌 아닌 신뢰가 기반이다

by김상윤 기자
2020.02.11 06:00:00

검찰 고발 이후 기소여부 통계 없어
부처간 협업 등으로 해결할 수 있어도
공정위 의지부족에 피심의인만 피해

[세종=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고발한 이후엔 검찰이 알아서 할 일이죠”

공정거래위원회는 중대한 법 위반이라고 판단되면 해당 기업 및 관련자를 검찰에 고발한다. 공정위가 고발하면 피심의인은 피의자로 신분이 빠뀌어 검찰의 추가 조사를 받고, 법 위반 고의성이 입증되면 행정처분과 별개로 징역형, 벌금형 등 형사처벌을 받는다.

‘형벌만능주의 폐해’ 기획시리즈를 준비하면서 공정위의 검찰 고발의 실효성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했다. 공정위가 고발하면 피심의인이 징역을 받는 경우가 있는지, 기소율은 얼마나 되는지, 무혐의는 어느 정도인지 데이터로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관련 통계에 대한 공정위의 답변은 “우린 모른다”였다.

공정위의 답변은 언뜻 당연한 얘기일 수도 있다. 기소 여부는 검찰 영역이지 공정위 영역은 아니기 때문이다. 취재 과정에서 기소 여부 및 재판 결과에 대해 검찰이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는 불평도 들었다.



하지만 공정위의 의지부족이 더 큰 문제로 보인다. 검찰에 고발했다면 최소한 기소 여부와 판결 내용은 파악하는 게 맞는다.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면 법무부와 소통해 정보를 공유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고발한 사안을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하든, 기소하든 공정위는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게 현실이다. 데이터가 없으니 검찰에 고발한 사안들 중 법적 처벌이 이뤄진 선례와 아닌 사례들에 대한 학습도 없다. 물론 유사 사안이라고 해서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니 과거 사례를 들여다볼 필요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검찰에 고발당해 수년간 악전고투 끝에 무혐의 처분이나 무죄 판결을 받은 기업과 개인 입장에선 공정위가 ‘면피용’ 고발을 남발한다는 의심을 버리기 어렵다.

시장질서를 해친 이들에 대해서는 정교하게 제재를 내려야 한다. 특히 형사처벌을 전제로 한 검찰 고발이라는 큰 칼을 꺼낼 때는 가능한 신중해야 한다. 형사처벌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사안은 행정처분이나 과태료 등 경제적 제재로 갈음하는 방법도 보다 다양하고 심도있게 모색해야 한다. 공정위의 권위는 엄벌이 아니라 시장의 신뢰 위에서 싹튼다는 걸 명심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