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딜? 빅딜? 노딜?…비건 방한의 셈법

by정다슬 기자
2020.07.08 06:00:00

비건 美국무부 부장관 7일 도착
북한 방한 당일 권정근 성명 발표…"대화 없다"
8월 한미연합훈련 시행할까 '주목'

△미국의 북핵 협상 수석대표인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탑승한 것으로 추정되는 비행기가 7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주한미공군 오산기지에 착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7일 한국으로 입국했다. 남북 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되는 등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는 상황에서 비건 대표의 방한은 교착상태에 놓인 남·북·미 관계를 풀어나갈 변곡점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북한은 비건 대표의 방한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연이어 담화를 발표해, 북미 대화 의지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비건 대표의 방한이 오히려 북미 간의 기 싸움을 재개하는 방아쇠가 된 상황에서 스몰 딜(Small deal), 빅 딜(Big deal), 노 딜(No deal)로 이어지는 세 가지 시나리오를 분석해봤다.

스몰 딜 가능성은 국회 여당 관계자를 중심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내정자 등 새 외교안보 라인이 ‘스몰딜+α’(플러스알파)을 통해 교착 상태에 빠진 북·미 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할 것이란 관측이다.

앞서 북한과 미국은 이미 하노이 회담에서 영변 핵시설과 북한 제재 완화를 놓고 협상을 벌이다 무산된 경험이 있다. 당시 북한은 영변 핵시설과 대북 제재를 바꾸자고 주장했다.

스몰 딜+α는 영변 핵시설에 더해 북한이 일부 고농축우라늄(HEU)·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설의 불능화 또는 폐기에 나서면 미국이 ‘스냅백’(약속 불이행 시 제재 재도입)을 전제로 일부 대북 제재를 완화하자는 구성이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단계적 비핵화 가능성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검토한 바 있다.

존 볼턴 전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 보좌관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The Room Where It Happened)에 따르면 당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북한과의 실무회담을 통해 단계적 비핵화를 추진한다는 내용의 합의문을 작성했다. 그러나 이같은 단계적 비핵화 협상안은 볼턴에 의해 무산됐다.

실제 하노이 회담 한 달 전 비건 대표는 미국 스탠퍼드대 연설에서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를 수용하는 듯한 연설을 하기도 했다.

6일(현지시간) 비건 부장관의 방한·방일 소식을 공식적으로 알린 미국 국무부는 순방 목적으로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 조율 강화를 들고 나왔다. FFVD는 완전한 비핵화 전에는 보상이 없다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ing)를 말한다.)’에서 한발 물러서 ‘사후 검증을 통해 단계적으로 완전한 비핵화를 이뤄나가겠다’는 미국의 입장이 반영돼 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미국은 스몰 딜을 초기에 반대했는데 단계적 비핵화를 수용하면서 스몰 딜에 대해서 입장전환이 이뤄졌다”며 “현재 문제는 비핵화 조치에 따른 보상 규모”라고 말했다.

문제는 북한의 태도 변화다. 사흘 전 최선희 제1부상 담화에 이어 비건 대표가 방한하는 이날 권정근 외무성 미국담당국장 명의로 “미국 사람들과 마주 앉을 생각이 없다”고 재강조했다. 특히 최 제1부장의 담화처럼 권 국장 담화도 상당 부분을 북·미 관계 중재하기 위해 노력하는 남한 정부에 대한 비판에 할애했다.

이에 대해 정세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해달라는 것은 스몰 딜이 아니라 빅 딜”이라며 “북한은 미국이 셈법을 확실하게 바꿔서 자기들이 해달라는 것을 분명하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될 때까지는 회담에 나가지 않겠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 역시 지난해 2월 하노이 회담과는 180도 달라졌다.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실패와 조지 플로이드 사태 등으로 이미 민주당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의 지지율 격차가 10%포인트 넘게 벌어진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원하는 화통한 제안을 할 만한 힘이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비건 부장관의 방한은 북·미 관계의 극적 개선보다는 상황관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1월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미사일 도발 가능성을 낮추고 동맹국인 한국 정부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즉, 현재 상황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비건 부장관으로서는 소기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한다 그러나 이는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옴짝달싹할 수 없는 한반도 긴장 상태가 지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남·북·미 관계의 시계추가 어디로 기울어졌는지 확인할 수 있는 가늠자는 8월 예정된 한·미 연합훈련이다.

앞서 우리 정부는 2018년 9월 19일 체결된 남·북 군사훈련 합의서에서 일제의 군사적 적대행위 전면 중단을 약속했다. 이에 따라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과 키리졸브(KR·지휘소 연습), 독수리 훈련(FE·기동훈련) 등 기존 대규모 훈련을 없애거나 훈련 규모를 축소해왔다.

북한 역시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폭발, 군 통신선 두절, 노동당~청와대 직통통화(핫라인)선 차단에도 불구하고 마지노선인 군사계획에 대해서는 ‘보류’한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8월 한·미 연합훈련이 재개될 경우, 북한에 9·19 군사훈련 합의를 파기할 만한 명분을 주면서 군사적 긴장도가 더욱 높아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