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의 시대]'은퇴 리스크' 관리법

by장순원 기자
2020.10.17 08:30:00

[배정식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 센터장] 상속과 자산관리 업무를 위해 ‘100년 리빙트러스트센터’를 방문하는 고객들의 연령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90대에 접어든 어르신들도 꾸준한 운동과 건강관리 덕분에 10년 이상 젊어 보이는 경우도 많아 고령화를 체감하고 있다.

배정식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 센터장
1970년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62.3세로, 여자는 65.8세, 남자는 58.7세였다. 시대가 변해, 2017년 기준으로 만 40세의 한국인은 평균 42.7년을 더 살게 되었다. 1955년부터 1963년 사이 매년 80만 명 정도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들도 앞으로 ‘100세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 범위를 좀 더 넓혀 2차 베이비붐 세대라 할 수 있는 1974년생까지 확대하면 현재 예비 은퇴 인구는 약 1,600만이 넘는다. 이 수치는 전 인구의 33%에 육박한다

은퇴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점차 연금생활자가 늘어나겠지만 미리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퇴직하는 사람도 많아질 것이다. 노후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한 대표적인 방법으로는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의 연금소득과 주택 역모기지론 등이 있다. 만약 농지를 보유하고 있다면 농지연금도 고려할 수 있다. 특히 농지연금의 감정평가율이 2019년부터 기존 80%에서 90%로 상향돼 신규 농지연금 가입자의 월 지급액이 늘어난 장점도 있다.

그런데 은퇴 후에는 경제적 인출 대비부터 삶의 다양한 리스크, 심지어는 죽음이라는 리스크까지 고려해 안전장치를 마련해 두어야 한다. 은퇴를 준비하는 세대와 이미 은퇴세대가 된 신탁 활용법을 살펴본다.

금융소득종합과세 부담을 줄이는 도구

두 아들을 둔 60대 중반의 김영철 씨는 둘째까지 취업에 성공해서 마음이 한결 가볍다. 김영철 씨는 젊은 시절 투자한 비상장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비상장주식에서 매년 일정한 배당금을 받고 있고 어느 정도 현금도 보유하고 있어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이다. 금융소득종합과세란 이자소득 및 배당소득의 연간 합계가 2000만 원을 초과하는 경우, 다른 종합소득 금액과 합산하여 종합소득세율로 과세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김씨는 배당소득으로 인해 금융소득종합과세나 건강보험료 추가 부담하는 고민을 신탁의 특별한 구조를 활용하여 덜어내고자 한다. 김씨는 주식을 신탁하되, 주식의 배당금은 배우자와 두 아들에게 귀속되도록 설계하였다. 그렇게 하면 김씨의 배당소득이 줄어들게 된다. 이러한 구조를 ‘타익신탁’이라고 한다. 타익신탁이란 위탁자가 생전 수익자를 타인으로 지정해 신탁재산 원본의 권리와 수익의 권리를 구분하는 것이다. 타익신탁을 통해 두 가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먼저, 종합소득을 줄여 세금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둘째, 생전 수익자로 배당금을 수령한 배우자와 두 아들은 증여세를 납부한 후 남은 현금을 중장기적 투자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처럼 타익신탁 구조를 활용한 자산관리에도 신탁은 매우 유용하다.

퇴직금을 신탁으로 관리하다



최한일 씨는 얼마 전에 31년간 일해온 회사에서 정년을 맞아 소중한 퇴직금도 받았다. 최씨는 현역 시절부터 은퇴준비를 해 온 노력을 바탕으로 창업을 꿈꾸고 있다. 요즘 같은 ‘100세 시대’에 은퇴는 ‘제2인생의 시작’이며 퇴직금이 힘이 된다.

그러나 최씨는 먼저 퇴직금의 반을 뚝 잘라 신탁에 맡기려고 한다. 창업 자금도 중요하지만 노후생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금을 적절히 통제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퇴직 후 창업을 했다가 큰 손실을 입은 주위 사람들을 많이 봐온 아내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일정 자산은 안전하게 관리해야 한다.

최씨는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와 퇴직금의 반을 유언대용신탁 방식으로 맡기고 사업이 안정기에 접어들 때까지 5년이라는 시간을 두어 스스로를 통제하기로 하였다. 혹시 자신에게 유고가 발생하더라도 사후 수익자를 배우자로 지정하여 아내의 노후를 대비해 두었다. 신탁 후 해지나 중도인출을 할 경우 아내의 지급동의를 구하는 조건을 달았다. 신탁에 맡긴 현금은 매월 이자를 받을 수 있는 상품으로 운용함으로써 어느정도 심리적 부담을 덜 수 있었다.

평생 사업체를 운영해 쌓은 재산을 보호하고 싶다

30대에 퇴사 후 자신의 기술을 인정받아 중소기업을 시작한 황종기 씨. 사업 초기엔 무척 힘들었지만 60대가 된 지금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러나 기업을 하다 보면 시장 변화에 따라 언제든 큰 손실이 생기고 심지어는 회사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최근에도 복잡한 계약조건 때문에 거래 기업과 소송까지 가다 보니 회사를 그만둘 수는 없지만, 어는 정도 개인재산과 사업의 리스크를 분별하여 재산을 관리할 필요성을 느꼈다.

황씨는 실행에 옮겼다. 본인의 주요 재산을 신탁하기로 결정하였다. 회사 운영 과정에서 법적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정상적으로 신탁된 재산은 법적으로 강제집행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주식이나 부동산, 현금을 신탁한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신탁은 재산을 맡기는 사람, 즉 위탁자의 파산과 분리해 관리되는 특성이 있어 삶의 다양한 리스크로부터 재산을 보호할 수 있다. 황씨는 자신에게 유고가 발생하더라도 자녀들에게 적정한 비율대로 주식, 현금, 부동산 등을 넘겨주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내용의 유언대용신탁계약을 체결하였다.

또한 사랑하는 손주를 위해 한 가지를 더했다. 손주와 통화만 해도 늘 함박웃음을 짓는 황씨는 아내와 자녀들을 위한 유언대용신탁 외에도 손주를 위해 별도의 금전을 증여하고 포트폴리오 전략에 따라 운용하는 상품에 손주 명의로 가입함으로써 손주의 멋진 미래를 그려본다.

◆배정식 센터장은…

1993년 하나은행에 입사해 현재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 센터장으로 재직 중이다. 2010년 금융권에서 처음으로 리빙트러스트를 연 뒤, 신탁의 사회적 역할을 확장하고 있다. 서울대 금융법무과정, 고려대 대학원(가족법), 건국대 부동산 대학원 등을 거쳐 호서대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현재 금융연수원 등에서 강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