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36년 전 자취 감춘 '미스롯데', 탈세·배임 연루 '피고인'으로

by김진우 기자
2017.03.21 05:15:00

제1회 미스롯데 출신인 신격호 총괄회장의 셋째 부인
서 씨 모녀 롯데홀딩스 지분 등 수천억원대 재산 보유
소환조사 버티다 구속 피하기 위해 자진귀국 후 출석

[이데일리 김진우 전재욱 기자] 신격호(95)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영원한 샤롯데’ 서미경(58) 씨가 40여년 만에 공식석상에 등장했다. 2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롯데그룹 총수 일가의 비리 의혹과 관련한 형사재판의 피고인 자격으로서다.

서 씨는 18세이던 1977년 제1회 미스롯데 선발대회에서 발탁돼 광고 모델과 방송 연기자로 활약하다가 1980년 돌연 종적을 감췄다. 서 씨는 신 총괄회장과 사실혼 관계를 유지한 채 은둔의 삶을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서 씨는 1983년 신 총괄회장과의 사이에 신유미(34) 롯데호텔 고문을 낳았다.

신 총괄회장은 젊은 시절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심취해 여주인공인 ‘샤롯데’에서 이름을 따와 그룹의 브랜드로 사용했다. 재계에서는 신 총괄회장의 세 번째 여인인 서 씨에게 샤롯데란 애칭을 붙이며 각별한 관심을 보여왔다.

서 씨는 이날 검은색 정장 차림에 검은색 뿔테 안경을 끼고 손에는 검은색 가방을 든 채 서울 서초동 법원청사에 들어섰다. 서 씨는 ‘그동안 왜 검찰 수사에 응하지 않았는지’ 등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고 법정으로 들어갔다.

서 씨는 신동빈(62) 롯데그룹 회장에게서 롯데시네마 외식사업권을 불법으로 획득해 약 770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신 총괄회장에게서 롯데홀딩스 지분을 넘겨받으며 세금 297억원을 내지 않은 혐의도 받고 있다.



이날 공판에는 신 총괄회장과 신 회장, 신동주(63)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신영자(75)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등 롯데그룹 총수 일가가 서 씨와 같이 일괄기소돼 법정에 함께 섰다. 검찰이 지난해 9월 발표한 롯데그룹 비리 수사에 따른 결과다.

서 씨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수차례 소환조사에 불응했다. 검찰은 일본에 체류하는 서 씨에게 여권을 반납하도록 요청하고 강제 회수 조치와 함께 여권을 무효화했다. 현재 여권무효화 상태인 서 씨는 임시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 귀국해 법정에 출석한 상태다.

서씨의 재판을 심리하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재판장 김상동)는 지난달 열린 공판준비기일에서 “피고인이 재판에 출석하지 않으면 구속영장을 발부할 예정”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검찰 관계자는 “서씨가 구속을 피하기 위해 자진귀국을 택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서 씨 모녀는 개인 지분과 소유회사(경유물산) 지분을 더해 롯데홀딩스 지분 6.8%를 보유하고 있다. 신동빈 회장(1.4%)과 신동주 전 부회장(1.6%), 신 총괄회장(0.4%)보다도 많다. 일본 롯데롯딩스는 한국·일본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지주회사 격인 회사다.

검찰은 서 씨 모녀가 신 총괄회장에게서 지분을 증여받고 증여세를 탈세한 혐의를 적용하고 있다. 검찰은 서 씨의 탈세액이 최소 1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공소시효(10년) 만료가 임박한 297억원에 대해서만 먼저 기소했다.

서 씨 모녀의 롯데홀딩스 지분 가치는 7000억~8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서 씨 모녀는 2015년 기준 공시지가 500억원 상당의 부동산도 보유하고 있다. 또 서 씨가 지분을 가진 유기개발은 롯데백화점 내 식당가에서 유원정(냉면), 유정(비빔밥) 등의 식당을 운영하며 특혜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앞으로 진행될 형사재판을 통해 롯데그룹 총수 일가의 비리 의혹에 대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지 관심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