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폭 행보' 펠로시, 시진핑에 직격탄…TSMC 회장도 만난다(재종합)

by김정남 기자
2022.08.03 07:57:39

중 강력 반발 속…펠로시 전격 대만行
펠로시, 중 겨냥 "대만 민주주의 지지"
시진핑 향해 "인권·법치 무시" 직격탄
"반도체 중요…TSMC 회장 회동 예정"
대만, 미에 경제·안보 측면서 매우 중요
중 "내정 간섭 말라"…실사격 훈련 예고

[뉴욕·베이징=이데일리 김정남 신정은 특파원] 미국 의전 서열 3위인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결국 대만 땅을 밟으면서, 대만해협을 둘러싼 공포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미국 하원의장이 대만을 직접 찾은 것은 25년여 만일 정도로 이례적이다.

특히 펠로시 의장은 ‘내정 간섭’이라며 강하게 반발하는 중국을 향해 “시진핑 국가주석이 인권과 법치를 무시하고 있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중국에 맞서 대만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방문 목적을 예상보다 강한 어조로 표현한 것이다. 이와 동시에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TSMC 회장까지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이에 맞서 대만을 사방에서 포위하는 형태의 실사격 훈련까지 예고했다. 대만해협을 두고 벌이는 미중 갈등이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2일 밤(현지시간) 대만 타이베이 쑹산공항에 착륙한 이후 공항을 빠져나가 숙소로 향하고 있다. (사진=AFP 제공)


펠로시, 시진핑 직격탄 “법치 무시”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펠로시 의장이 탑승한 항공기는 2일 밤(대만 현지시간) 대만 타이베이 쑹산공항에 도착했다. 그는 지난 1997년 4월 뉴트 깅그리치 하원의장 이후 25년여 만에 대만을 찾은 최고위급 인사다. 하원의장은 미국 내 의전 서열 3위다.

펠로시 의장은 타이베이에 위치한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숙박한 후 3일 대만 총통 면담, 입법원(의회)과 인권박물관 방문, 중국 반체제 인사 면담 등의 일정을 소화한 뒤 오후에 출국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그간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을 두고 강하게 반발해 왔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미국이 깬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왕이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전날 기자들과 만나 미국을 두고 ‘평화의 파괴자’라고 칭하면서 “미국 일부 정치인들은 자신의 이익만 생각해 대만 문제에서 불장난을 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펠로시 의장은 대만행(行)을 강행했고, 도착하자마자 방문 목적을 밝혔다. 그는 대만 도착 직후 첫 성명에서 “대만의 민주주의를 지지하려는 확고한 약속에 따른 것”이라며 “전 세계가 독재와 민주주의 사이에서 선택을 마주한 상황에서 2300만 대만 국민에 대한 미국의 연대는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공산국가인 중국에 맞서 대만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의미임을 시사한 것으로 읽힌다.

펠로시 의장이 도착함과 동시에 그의 워싱턴포스트(WP) 기고문도 공개됐다. 그는 기고를 통해 “몇 년간 중국이 대만과의 긴장을 높이고 있어 대만의 민주주의가 위협 받고 있다”며 “우리는 대만과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 국방부는 중국군이 대만을 무력 통일하고자 비상사태를 준비할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고도 했다.

그는 또 “시진핑 국가주석이 집권을 강화하면서 인권과 법치에 대한 무시를 지속하고 있다”며 시 주석을 직접 겨냥하기도 했다. 펠로시 의장의 첫 메시지는 당초 예상보다 강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2일 밤(현지시간) 대만 타이베이 쑹산공항에 착륙하자, 현장에 나온 취재진과 대만 시민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AFP 제공)


“반도체 중요성…TSMC 회장과 회동”



대만은 안보와 경제 측면에서 미국이 포기할 수 없는 나라다. 지정학적으로는 중국의 태평양 진출·팽창을 막을 교두보이고, 경제적으로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대만에는 세계 최대 반도체 업체 중 하나인 TSMC가 있다. 펠로시 의장이 마크 리우 TSMC 회장과 만날 것이라고 WP가 익명의 관계자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WP는 “반도체가 미국 경제와 국가 안보에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이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면서도, 대만에 계속 관여하려고 하는 이유다.

미국은 1979년 중국과 수교하는 동시에 유엔 회원국 지위를 잃은 대만과 단교했다. 대만을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는 중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 역시 수용했다. 다만 대만의 중요성 때문에 그해 비공식적 관계 유지를 위한 대만관계법까지 제정했다. 두 나라는 현재 상대국에 공식 대사관이 없다. 그러나 미국은 대만 주재 대사관 격인 주대만미국협회(AIT)를, 대만은 미국 주재 대사관 격인 대만 경제문화대표부(TECRO)를 각각 두고 있다. 사실상 외교적 협력 관계다.

미국의 대만 전략은 초당적이라는 특징도 있다. 미치 매코널 원내대표를 포함한 공화당 소속 상원 의원 26명은 펠로시 의장의 방문 직후 성명을 통해 “그의 대만 방문을 지지한다”며 “수십년간 전 하원의장을 비롯한 미 의원들이 대만을 방문했다”고 말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CNN에 출연해 “펠로시 의장은 최근 당 소속과 무관하게 의원들이 대만을 방문한 것과 동일한 기회를 가졌다”고 설명했다.

대만 외교부는 펠로시 의장이 도착하자마자 성명을 내고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대만에 대한 미국의 바위처럼 단단한 지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사진 왼쪽)이 2일 밤(현지시간) 대만 타이베이 쑹산공항에 착륙한 이후 조셉 우 대만 외교부장의 영접을 받고 있다. (사진=AFP 제공)


중 “간섭 멈추라”…실사격 훈련 예고

이에 중국은 “내정 간섭을 멈추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대만을 사방에서 포위하는 형태의 실사격 훈련까지 예고하며 긴장감을 높였다.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외교부는 성명에서 “펠로시 의장은 중국의 강렬한 반대와 엄정한 교섭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중국 원칙과 중미 3개 공동 코뮈니케(공보) 규정을 엄중히 위반했다”며 “중미 관계의 정치적인 기반을 심각하게 손상시키고 중국의 주권과 영토를 심각하게 침범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훼손하고 대만 독립 세력에 심각한 잘못된 신호를 보냈다”고 지적했다.

외교부는 “펠로시 의장이 어떤 형식이나 이유로든 대만에 가서 활동하는 것은 미국과 대만의 공식적인 교류를 격상시키는 중대한 정치적 도발”이라며 “중국 인민은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부는 또 “대만 문제는 중미 관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이고 민감한 문제”라며 “미국은 ‘대만으로 중국을 억제한다’는 의도로 계속해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중국 군은 전날 저녁 대만해협에 전투기를 보낸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중국 인민해방군은 오는 4일 12시~7일 12시 대만 섬 주변에서 군사 훈련과 실탄 사격을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만해협을 둘러싼 군사적인 긴장감이 극에 달하는 상황이다.

대만을 둘러싼 미중 양국의 갈등은 치킨게임 양상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많다. 서로를 향한 불신의 골이 워낙 깊어서다. 미국은 중국이 언젠가 대만을 향해 무력통일을 하려 한다고 보고 있고, 중국은 미국이 대만을 결국 독립 국가로 만들려 한다고 보고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이 오는 4~7일 대만 인근 군사 훈련을 예고했다. (사진=신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