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대중문화 인물론②]정지훈론(鄭智薰論)-"누구와 대체되고 싶지 않다"

by윤경철 기자
2008.12.23 14:05:31

▲ 비

[이데일리 SPN 윤경철 객원기자] 가수 비(본명 정지훈)는 잠을 안자기로 유명하다. 잠이 없는 그가 남긴 명언중에는 이런 말이 있다.

"잠을 자면 꿈을 꿀 수 있지만 잠을 자지 않으면 꿈을 이룰 수 있다”

실제 밤잠이 없다는 그는 올해 월드스타로서의 면모 뿐만 아니라 확실한 안방스타로서의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박수 받을 만하다. 올 한해 국내에서 활동한 스타중 비만큼 짧은 기간동안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역량을 보여준 스타도 없다. 그는 얼마전 시사저널에서 실시한 ‘한국의 미래 누가 이끄는가’라는 조사에서 영향력 1위의 연예인으로 선정되는 등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박진영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확실한 홀로서기로 청출어람의 표본이 되기도 했다. 지난 10월 5집 ‘레이니즘’으로 각종 차트 1위를 석권했으며 각종 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해서는 시청률 산파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지금의 자신을 누구와도 대체하고 싶지 않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월드스타 비. 그는 오늘도 또 다른 목표를 향해 쉼없이 노력하고 달려간다.


가수 비가 성공을 위해 가장 많이 한 말은 무엇일까. 다양한 말들이 있겠지만 ‘트러스트 미(Trust me)'라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그는 지금의 성공을 위해 자신을 믿어달라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 가수가 되기 위해 박진영을 만났을 때도, 드라마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 이경희 작가에게도 그랬고 최근엔 할리우드 진출을 위해 워쇼스키 형제를 만났을 때도 '한 번만 믿어 달라'고 말했다.
 
그의 이런 바람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지금의 비가 있게 한 원동력이 됐다. 실제 이경희 작가는 “비는 처음 만난 사람들도 그냥 한번쯤 믿어보게 만들 정도로 의지가 엿보이는 청년이었다”면서 “그 정도 열정이면 속아도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비의 매력을 높게 평가했다.





비가 갖는 진정한 매력은 자신을 믿어 달라는 말만 앞세우는 것이 아니다. '아이 캔 두 잇(I Can Do It)'이라는 말과 함께 그것을 이뤄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다.
 
사실 비는 한계점이 없는 스타다. 주위의 우려를 보란 듯이 극복해낸다. 그가 드라마를 할 때 많은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 과연 그가 연기를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또래의 아이돌 스타들처럼 제풀에 지치거나 '연기력 부족‘이라는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아 좌초 될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밤에 코피를 쏟아가며 연기를 했고 연기 못하는 가수라는 이야기가 쑥 들어가게 만들었다.
 
할리우드 진출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해외 언론에서 그가 '스피드 레이서'로 할리우드에 진출한다고 했을 때 믿지 않았다. 해외 언론이 중국신문인 때문도 있었지만 그동안 수많은 스타들이 할리우드 진출을 외쳤지만 실제 이뤄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잘나가는 배우들도 힘든 할리우드 진출을 어떻게 아이돌 가수가 이뤄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는 해냈다. 그것도 자랑스럽게. 신기하지만 그는 사기나 마술이 아닌 실력과 노력으로 지금의 자리를 만들어 냈고 앞으로도 만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비가 주인공을 맡은 영화 ‘스피드 레이서’를 본 사람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한 가지는 무엇일까. 다름아닌 비의 영어 실력이었다. 외국에 번번이 연수 한 번 다녀오지 않은 비의 영어발음은 현지인들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오죽했으면 해외파 출신가수 브라이언이 극찬을 아끼지 않았을까. 비의 영어 실력은 탁월한 영어선생이나 해외 연수의 산물이 아니다. 물론 영어선생도 있었지만 그의 영어실력 향상에 큰 도움은 못됐다는 전언이다.
 
비의 영어실력은 철저한 독학의 산물이다. 비결은 다름 아닌 따라하기. 그는 자신이 닮고자 하는 알파치노나 브래드 피트의 연기를 끊임없이 보면서 발음과 입모양 그리고 행동을 따라했다고 한다. 이는 가수가 노래나 안무를 배울 때 끊임없이 반복해 자신의 몸이 이를 기억하게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비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영어를 연마했다.
 
연기도 마찬가지다. 비의 연기는 또래의 아이돌과는 한차원 다르다. 그는 자신의 연기 롤 모델로 송강호와 최민식 그리고 한석규를 정했다. 그런 뒤 이들의 연기를 틈이 날 때마다 봤단다. 그러자 어느날 그들의 연기를 바탕으로 자신의 틀이 짜여졌다고 한다. 지금도 비는 최민식 송강호 한석규의 연기를 재현시키면 누구보다 능숙하게 재현해내곤 한다.
▲ 비


 

비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의리의 사나이라고 한다. 혹자는 가수 박진영과 결별한 것을 놓고 비가 의리가 없다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박진영으로부터의 독립은 사실 의리가 아닌 계약 관계 종료에 따른 단순한 결과였을 뿐이다.
 
비가 '의리의 사나이' 소리를 듣는 것은 자신이 손해 볼 것을 알면서도 종종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가수 비 정도의 인기면 자신의 잇속만을 챙겨도 충분히 인기를 유지할 수 있다. 솔직히 상당수의 국내 연예인들이 과거 자신의 인기의 기반이 되었던 사람들을 무시하면서도 잘 사는 점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비는 다르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신세를 졌다면 몇 배로 갚아야만 직성이 풀린다. 그가 전 매니저 조동원씨와 제이튠 엔터테인먼트를 차린 것만 봐도 그렇다.
 
비는 박진영과의 결별 때 다양한 제안을 받았다. 수백억원을 목돈을 손에 쥘 수도 있었고 엄청난 부가가치를 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빈털터리에 가까운 조동원씨와 손을 잡았다. 자신과 무명시절 동고동락했고 그가 매니저 시절 보여준 성실함을 높게 산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그는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준 이경희 작가, 박찬욱 감독 등의 작품은 언제든지 할 용의를 가지고 있다.
 
비의 이런 모습은 신뢰를 존중하는 그의 사고에서 출발한다. 그는 일단 신뢰하면 배신을 당할 것을 알면서도 철저하게 믿는다. 그런 그의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은 쉽게 그를 배신하지 않고, 그의 성공을 위한 또 한 번의 밑거름이 되고자 자청한다.



비는 요즘도 웬만해선 음식을 남기지 않는다. 어렸을 때 너무 굶어봤기 때문에 먹는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성공한 스타들이 자신의 과거를 잃는 것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는 모습이다.
 
초심을 잃지 않는 모습은 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빛을 발한다. 비는 할리우드 진출을 준비하면서도 모든 경제적인 지원을 끊었다. 벌어놓은 돈도 있고 주위의 도움을 받으면 편하게 살 수 있었지만 궁핍하게 살면서 독기를 키웠다. 그런 모습들이 주위사람들의 호감을 샀고 지금의 비가 있도록 했다.
 
비의 초심을 잃지 않는 모습은 국내 가요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비는 모든 공연을 라이브로 소화하고, 신인의 모습으로 각종 오락프로그램을 누비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더욱 크게 알려나가고 있다.
▲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