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무책임한 폭로·고발 경계해야

by이성기 기자
2018.11.20 05:00:00

[이데일리 이성기 기자] 폭로나 고발은 기본적으로 약자의 언로(言路)이자 권리 보호 수단이다. 강자나 권력 기관은 힘으로 억눌러 감추거나 입을 막으면 그만이나, 약자는 딱히 하소연 할 데가 없기 때문이다. 부당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투서나 내부 고발(공익 신고), 제보 등이 소외계층·소수자·사회적 약자들에게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언덕이 되다시피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조선의 제3대 임금 태종(太宗·1367∼1422)이 백성들의 고충을 직접 해결해 주기 위해 궁궐 밖 문루에 설치했던 ‘신문고’(申聞鼓)나 그 정신을 이은 격쟁(擊錚)이 이런 취지를 담았다.

용기 있는 폭로는 대개 비리나 부정·부패 등 이면에 감춰진 어두운 모습을 수면 위로 드러내는 계기가 된다. ‘미투 운동’(Me too·나도 고발한다)을 촉발한 서지현 검사가 그랬고 최근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갑질과 비리, 각종 위법행위가 낱낱이 들춰진 것도 내부 고발자들 덕분이다.

하지만 폭로나 고발이 언제나 긍정적인 역할로 이어지진 않는다. 대부분 사회의 투명성 제고에 기여해 온 파수꾼 역할을 부인할 수 없지만, 때론 애꿎은 피해자를 낳는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파급력과 그 확산 속도는 부작용의 위험성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잊을 만하면 터져나오는 식품업계 위생 문제다. 사실 관계가 명확히 밝혀지기 전 관련 사진과 내용이 온라인 공간에 퍼지면서 부도덕한 기업으로 ‘낙인’ 찍히고 만다.



비슷한 일로 여러 차례 곤욕을 치렀던 남양유업은 최근 ‘이물질 분유’ 논란과 관련해 외부 기관에 정밀검사까지 의뢰 “제조 공정상 이물질 혼입이 불가하다”는 답변 결과를 공개했지만, 유무형의 피해는 ‘엎질러진 물’이었다. 손상된 이미지를 회복하는 것은 온전히 기업 몫이다.

심지어 지난달에는 김포 지역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아동학대 가해자로 몰린 한 30대 보육교사가 자살한 사건까지 빚어졌다. 학대 의심만으로 신상까지 공개됐지만 범죄 혐의점은 밝혀지지 않았다.

비단 익명의 온라인 공간뿐 아니라 국가기관조차 어설픈 조사 결과로 사회적 혼란을 일으킨다.

최근 통조림에서 세균이 검출됐다는 식품의약품안전처 발표로 해당 기업은 캔햄 전 제품 생산·판매를 전면 중단했다. 며칠 후 식약처장이 “통조림에서 발견된 세균은 대장균”이라고 밝히면서 기업의 잘못이 아닌 쪽에 무게가 실리지만, 현재 진행형인 피해 규모는 추정조차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무엇보다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한 마케팅 비용이 엄청날 것”이라면서도 “피해 책임을 따지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자칫 더 큰 화를 부르거나 미운 털이 박힐 수 있어 벙어리 냉가슴만 앓는 처지라는 얘기다.

‘열 명의 범인을 놓쳐도 한 명의 무고한 범인을 만들지 말라’는 말은 형사법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사회 진보를 위한 폭로나 고발이 변질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