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갈등, 쿠팡 보이콧으로 번지나…시청자·창작자들도 갑론을박

by김보영 기자
2022.08.03 16:09:03

(사진=쿠팡플레이)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수지 주연의 오리지널 ‘안나’를 둘러싼 제작진과 쿠팡플레이의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입장도 엇갈리고 있다. OTT사의 갑질이라고 비판하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사전 계약서에 기입된 내용과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을 들어보고 사태를 판단해야 한다는 신중론도 적지 않다. 급기야 일부 감독 및 작가 커뮤니티 내에서는 쿠팡에 탈퇴하겠다는 보이콧 조짐도 관측된다.

3일 오후 쿠팡플레이 측은 공식입장을 통해 “지난 수개월에 걸쳐 쿠팡플레이는 감독에게 구체적인 수정 요청을 전달했으나 감독은 수정을 거부했다”며 “제작사의 동의를 얻어 그리고 계약에 명시된 우리의 권리에 의거 쿠팡플레이는 원래의 제작의도와 부합하도록 작품을 편집했고 그 결과 시청자들의 큰 호평을 받는 작품이 제작됐다”고 해명했다.

또한 ‘안나’의 촬영이 시작된 후부터 일선 현장의 이주영 감독(이하 ‘감독’)과 제작진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신뢰를 보내왔지만 감독의 편집방향이 당초 쿠팡플레이, 감독, 제작사(컨텐츠맵) 간에 상호 협의된 방향과 현저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됐다고도 설명했다.

다만 “감독의 편집 방향성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지난 7월 8일 이미 공식화한 것과 같이 총 8부작의 ‘안나’ 감독판은 8월 중 공개될 예정”이라며 “감독판은 영등위 심의가 완료되는 즉시 공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초 이주영 감독이 요구한 공개 사과는 공식입장에 따로 담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이주영 감독의 법률대리인인 송영훈 변호사는 이데일리에 “현재 쿠팡플레이 입장 표명에 따른 2차 입장문을 정리 중”이라고 전했다.

앞서 전날 오후 이주영 감독은 법무법인 시우 송영훈 변호사를 통해 쿠팡플레이가 감독의 의견을 배제한 채 8부작으로 기획된 드라마를 6부작으로 동의없이 편집했다는 의혹을 주장했다. 이주영 감독 측은 “단순 분량만 줄어든 것이 아니라 서사, 촬영, 편집, 내러티브의 의도 등이 모두 크게 훼손됐다”며 “자신이 보지도 못한 편집본에 본인의 이름을 달고 나가는 것에 동의할 수 없어 크레딧의 ‘감독’ 및 ‘각본’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고 요구했으나 쿠팡플레이는 이조차 거절했다”고 폭로했다.

이어 “쿠팡플레이가 공개 사과 및 시정조치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가능한 모든 법적 수단을 다할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실제로 송영훈 변호사는 이데일리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이 감독 측이 손해배상 소송을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문제”라며 “비슷한 유형의 판례도 이미 있다”고 설명했다.

양측의 갈등을 둘러싼 시청자들의 입장들도 엇갈린다. 익명을 요구한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 A씨는 해당 논란을 접한 후 쿠팡 계정을 탈퇴하고 보이콧하기로 다짐했다고 밝혔다. A씨는 “‘안나’를 보기 위해 쿠팡에 가입까지 한 사람으로서 너무 실망스러운 일”이라며 “너무 감명깊게 본 작품이 쿠팡플레이의 갑질로 훼손됐다는 느낌이 든다. 같은 창작자로서 매우 안타깝고 불쾌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웹드라마 작가인 B씨 역시 “예전에도 이주영 감독과 비슷한 경험을 겪은 적이 있다. 누군가에 의해 독립성이 훼손된 작품에 내 이름이 들어간 크레딧을 보는 건 매우 힘든 일”이라며 “이번 일이 많이 공론화돼 플랫폼사와 창작자, 제작자의 관계성을 재정립할 기회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볍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다만 사태를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적지 않다. 작가 지망생인 C씨는 “사전 계약서가 어떤 내용으로 작성되었는지 살펴봐야 이 사태를 확실히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사전에 계약서 등으로 이런 사태에 대비한 충분한 합의를 봤다면 터지지 않았을 일 같다”고 생각을 밝혔다. 영화감독 지망생인 D씨는 이번 사태에 대해 “창작물과 저작권, 창작 인격권, 창작물 훼손에 대한 기준, 편집권한과 기존 관례에서 관측됐던 쟁점에 주목해 이 사례의 과정을 면밀히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이번 사태가 오히려 업계에 화두를 던지고 보다 나은 콘텐츠 시장의 비전으로 나아갈 수 있는 교두보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안나’를 둘러싼 편집권 갈등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이날 김정훈 편집감독이 이주영 감독의 지지를 선언하며 폭로에 가세한 가운데 다른 스태프들 사이 또다른 추가 폭로가 불거져 나올 수도 있다.

‘안나’를 편집한 김정훈 감독은 이날 자신의 SNS에 “지난 6월 24일에 본 안나는 내가 감독과 밤을 지새우며 편집한 안나가 아니었다”며 “쿠팡이 편집 프로젝트 파일을 달라고 했을 때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제작사로부터 받아간 것을 알고 나서는 그래도 설마 설마했지만 우리가 만든 8부”작이 6부작으로 짜깁기되어 세상에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을 때 이주영 감독과 스탭들의 신뢰는 처참하게 무너졌다”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지 탄식했다.

김 감독은 자신이 편집과 관련해 쿠팡의 의견을 담은 어떠한 서류도 받아본 적이 없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보통 편집 과정에서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반영된다. 그리고 그것은 문서로 기록된다”며 “‘안나’는 그런 것이 없었다. 반나절 정도 쿠팡 관계자들이 와서 한 말들이 전부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렇게 ‘안나’는 창작자와 스탭들의 노력을 배제한 채 비밀리에 누군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만들어졌다”며 “이것이 쿠팡이 말하는 오랜 시간 소통하는 방식이고 좋은 작품을 만드는 방식인가”라고도 반문했다.

또한 이주영 감독처럼 자신 역시 이름을 크레딧에서 빼달라고 쿠팡플레이 측에 요구했지만 현재까지 이름이 남아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내가 편집한 것이 아닌 누가 편집했는지도 모르는 ‘안나’에 내 이름이 올라가 있는 것을 견디기 어렵다”며 “창작자라면 작품을 위해 연일 날밤을 새고 모든 것을 던진 스탭이라면 다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폭로에 가세한 이유 역시 “이주영 감독님이 어려운 용기로 목소리를 낸 것에 내가 같은 마음인 이유”라고 덧붙였다.

지난 6월 24일 공개된 ‘안나’는 사소한 거짓말을 시작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게 된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가수 겸 배우로 활동 중인 수지가 처음 원톱 주연으로 타이틀롤을 맡은 작품으로 공개 후 뜨거운 호평과 함께 6부작으로 종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