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자산 채권마저 널뛰기 왜?…미중 무역전쟁·한은 정책여력 소진

by김경은 기자
2019.10.16 05:10:00

8월 이후 고요하던 채권시장 주식시장보다 변동폭 키워
글로벌환경 불확실성 커지며 국고채 10년물 급등락 반복
역대 최대 130조 육박 외국인 채권투자 이탈 가능성 우려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이데일리 김경은 기자] ‘채권금리가 사실상 바닥에 도달했다.’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채권시장에 먹구름이 끼고 있다. 채권시장으로 급속하게 돈이 몰렸지만, 추가적인 금리 인하 여력이 크지 않다는 현실론이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채권 거품론’이다.

고요하던 채권시장은 마치 주식시장처럼 하루하루가 급등락을 반복하며 널뛰기를 하고 있다. 방향성에 대한 시장 참여자들의 불안감이 크다는 뜻이다. 게다가 미국과 중국은 1단계 합의에 도달한 이후 미국 시중금리도 급등세를 나타내고 있다. 올 초부터 나타난 국내 채권시장으로 자금 쏠림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14일 이데일리가 올해(1~10월) 국고채 10년물 금리를 분석한 결과, 지난 8월 이후 채권금리 일중 등락폭이 크게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락세를 보이던 국고채 10년물 금리가 지난 8월 1.172%를 찍은 이후 반등세가 나타나고 있다. 9월 평균 금리는 한달 전보다 17bp(1bp=0.01%포인트) 오른 1.42%를 기록했다. 이달 들어선 1.50%까지 금리가 상승한 상황이다. 채권 금리가 상승했다는 건 채권 가격이 그만큼 떨어졌다는 의미다.

채권금리의 하루 등락폭도 유례 없이 높아졌다. 국고채 10년물 금리의 일중 변동성(전일 대비 등락률의 월간 표준편차)은 지난 8월 3.42로, 지난 7월 1.49보다 2.3배 증가했고, 9월에는 2.89로 잠시 완화됐지만, 10월들어 다시 3.9(1일~14일)에 달할 정도로 변동성이 커졌다.

채권금리가 하루 사이에 널뛰기하는 날도 많았다. 지난 4일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하루동안 전날보다 12.4bp 급락했다가 지난달 2일에 6.8bp 상승하는 일도 있었다. 채권 금리 숫자가 하루만에 5% 이상 변화하는 날이 8월 이후 6거래일이나 발생했다. 안전자산으로 통하는 채권시장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안전자산인 채권 금리가 요동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채권시장이 위험자산인 주식처럼 널뛰기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대외 환경과 한은의 정책여력 부족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경제지표가 나빠지고 물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과연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두 차례 이상 내릴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큰 상황이다.

한국은행은 16일 예정된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1.25%로 내릴 것이란 관측이 압도적이다. 기준금리가 역사상 최저 수준으로 내려가게 된다.

관건은 추가 인하 여부다.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선 한은이 인하 시그널을 명확히 던지기보다 당분간 관망 모드로 돌입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장기화된 저금리 상황에서 금리 인하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8일 국정감사에서 “통화정책 효과는 제약이 있다”면서 “오히려 이런때는 재정정책 효과가 큰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경기부양을 위한 통화정책의 효과가 과거보다 낮아져 재정정책을 통한 경기부양이 더 필요하다는 말이다. 지난 7월 기준금리를 낮춘 이후 부동산 시장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한 점도 한은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현재 채권 금리는 한은이 기준금리를 1.0%로 내릴 것이라는 점을 선반영한 수준까지 내려와있다. 한은이 추가 기준금리 인하를 주춤하면 채권 금리 반등이 불가피하다.

구혜영 미래에셋대우증권 연구원은 “이번 금통위 이후에 추가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명확한 시그널이 포착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당분간 추가인하를 확신할 수 없는 만큼 시장 금리는 1회 인하한 수준에서 소폭 웃도는 수준에서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 무역협상 결과도 채권금리 바닥론에 힘을 싣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합의가 빅딜이 아닌 ‘미니딜’에 불과하지만, 세계 경제에 가장 큰 불안요인이던 미국과 중국의 첫 합의 소식은 채권시장엔 분명히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국내 채권 금리 바닥론에 힘이 실릴수록 약 130조원에 달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외국인 채권투자 잔액이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외국인의 국내채권 투자도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누적 잔고가 129조3000억원에 달하는 상황이다. 외국인 원화채 수요의 60% 가량은 장기투자자인 중앙은행이나 국부펀드 등이 차지하고 있는 만큼 급격한 이탈 우려는 크지 않지만, 최근 대외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만큼 외환·금융시장 불안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신동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외국인들의 재정거래가 많이 늘어나긴 했지만 장기 기관 투자가 비중 높아 일부 이탈하더라도 시스템 리스크로 번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면서도 “재정거래 유인이 사라질 경우 국내 시장에 일시적 충격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