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 칼럼] 판도라 상자의 '크리스마스 선물’

by허영섭 기자
2019.12.06 05:00:00

북한으로부터의 난데없는 ‘크리스마스 선물’ 공세다. 미국과의 대화가 지체되는 상황에서 “이번 성탄절 선물을 무엇으로 선정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에 달려 있다”고 담화를 통해 밝힌 것이다. 자신들이 거듭 제기했던 ‘연말 시한’이 지나가기 전에 미국 측의 결단을 촉구한 것이라는 점에서 나름대로 경고성 의미를 담고 있다.

그 내용 자체가 예사롭지 않다. “우리는 지금까지 최대의 인내력을 발휘해 왔다”면서 타협 시도가 난관에 부딪친 책임을 전적으로 미국에 돌리는 것부터가 그러하다. 양측의 대화 움직임이 아무런 성과 없이 연말을 넘길 경우 앞으로 해결 방법을 바꾸겠다는 위협이나 다름없다.

특히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군부대 시찰 행보가 부쩍 늘어난 데서도 북한 지도부의 의중을 가늠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그가 황해도 남단 접경지역에 위치한 창린도 방어부대를 방문해 해안포 시범 발사를 지시한 것이 최근 일이다. 군사행동 결행에 대한 의중을 드러낸 것으로 간주된다. 일본 아베 총리에 대해 “진짜 탄도미사일을 구경하게 될 것”이라고 엄포를 놓은 바도 있다. 며칠 전 백두산에 올라 ‘자력갱생’ 의지를 강조한 배경도 다르지 않다. 얼마 전에도 백마를 타고 흰 눈에 덮인 백두산을 찾아 모종의 정치적 결단을 암시했던 그다.

이에 대한 미국 측의 반응도 결코 만만치 않다. 영국을 방문 중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경우에 따라 북한에 대해 무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언급으로 강경한 입장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과의 개인적 친분을 강조하면서도 그를 다시 ‘로켓맨’이라고 호칭한 데서도 불편한 심기가 읽혀진다.



이처럼 북·미가 번갈아 말 폭탄을 주고받는 가운데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여건이 자꾸 위기 상황에 노출된다는 게 문제다. 더욱이 주한미군 철수 논란까지 겹쳐 버린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우리 국민들의 재산과 생명이 걸려 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도 동맹관계에 입각한 경각심은 찾아보기 어렵다. 일본과의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폐기 논란이 계속 이어지는데다 만약 주한미군이 철수할 경우 중국에 안보를 의탁할 수 있다는 주장까지 제기된다.

돌이켜보면 북한 문제를 풀어가는 실마리가 처음부터 꼬여 있었다. 북한으로서는 핵무기 폐기 의사가 없었으면서도 시간을 벌기 위해 협상 테이블에 나왔을 뿐이다. 그러고는 결국 미국에 대해 획기적인 양보 방안을 내놓으라며 을러대고 있다.

지난해 평창올림픽에 얼굴을 내밀었을 때부터 밑바닥에 깔고 있던 구상일 것이다. 우리로서는 거듭 속아 넘어갔으면서도 또다시 자리를 깔아준 꼴이 되고 말았다. 설혹 금강산 관광시설이 철거되더라도 남북이 공동으로 북한에 새로운 관광지를 개발하자는 얘기도 마찬가지다. 연말을 맞으면서 사회 분위기가 차갑게 얼어붙는 이유가 꼭 날씨 탓만은 아닐 것이다.

결국 이번 연말을 어떻게 무사히 넘기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다. 북한이 크리스마스 선물 얘기를 꺼낸 만큼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성탄절 분위기를 용납하지 않으면서도 굳이 선물 얘기를 꺼낸 속셈이 다분히 의도적이라 여겨진다. 그렇다고 택배로 선물이 배달되듯이 수취를 거부할 수 있는 대상도 아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기만을 기다리며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정말로 연말 선물을 보낼 의향이 있다면 미국이나 남한에 대해서보다는 헐벗고 굶주린 북한 인민들을 먼저 생각해보기 바란다. 추운 날씨에 옥수수 배급이라도 늘려준다면 박수갈채는 물론 ‘위대한 지도자’로서의 신뢰감도 쌓이게 될 것이다. 연말연시가 난장판으로 얼룩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