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이 답이다]“친해지려고” vs “별걸 다 물어”…세대갈등 폭발

by이소현 기자
2022.01.01 08:00:00

[상쟁 아닌 상생]①
자유분방한 MZ세대, 조직보다 개인 우선
‘낀대’ 서글퍼…기피 0순위 ‘젊은 꼰대’
‘자산불평등’에 계급·생존 싸움으로 번져
“다름의 인정부터 시작해야 갈등 풀어”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중소 영·유아식품업체에서 일하는 김지아(가명·29)씨는 상사와 함께하는 점심시간이 불편하다. “주말에 뭐했느냐”는 질문으로 시작해 “결혼은 언제 할 거냐’ 등 ‘별걸’ 다 물어보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더니 결국 ‘옛날에 나 때는 그랬는데 요즘 애들은 이렇더라’로 끝나는 대화 흐름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김씨는 “어디서 듣긴 들었는지 ‘요즘은 이렇게 말하면 꼰대라던데’라고 반성하는 척하면서 결국엔 다시 본인 할 말만 늘어놓더라”고 푸념했다.

‘라떼는 말이야’로 풍자되는 이른바 ‘꼰대’로 불리는 상사들도 ‘요즘 애들’의 행동이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대기업 반도체 회사에서 근무 중인 박성진(가명·51) 부장은 “코로나로 한동안 ‘팀 빌딩 활동’에 소홀했던 터라 저녁 회식을 제안했더니 막내들은 ‘개인 일정이 있어서 안된다’고 대놓고 말하더라”며 “친해지려고 던졌던 농담은 ‘아재개그’로 폄하되기 일쑤”라고 토로했다.

‘꼰대’와 ‘요즘 애들’로 불리는 세대들이 한 지붕 아래서 동상이몽의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직장에서만 봐도 업무지시부터 회식과 복장 규정, 야근문화 등에서 입장은 평행선을 달린다. 실제 직장인 10명 중 8명가량은 세대차이를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지난 10월 직장인 1354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세대갈등’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 77.2%는 ‘세대차이를 실감한다’고 답했다.

[사진=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세대 차이가 갈등으로…업무·복장규정 ‘관행’에 반기

세대차이는 일을 대하는 방식부터 확연하다. 기성세대가 된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세대를 시작으로 학생운동 전성기를 이끈 ‘86세대(80년대 학번의 60년대생)’와 불혹을 넘긴 70년대생은 집단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들은 조직원으로서 성과를 내고, 승진해 장기근속하는 것을 회사에 대한 ‘충성’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요즘 애들로 불리는 ‘MZ세대(1980~2004년 태어난 세대)’는 집단보다 개인에 무게 중심을 두고 의견을 말하는 데 거침이 없다. 민주노총의 노동조합 결성 및 가입 요구를 단박에 거절한 스타벅스 시위 노동자들, 최고경영자(CEO)에게 이메일을 보내 성과급 산정 기준에 대한 설명을 요구한 SK하이닉스 4년 차 직원 등이 단적인 예다.

중견 자동차 부품업체에 다니는 이석준(가명·54) 부장은 요즘 애들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최근 3년 차 연구원이 “쉬고 싶다”며 사직서를 들고 와서는 실업급여를 받게 해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일 좀 하겠다 싶으면 나간다고 하니 회사 입장에서 손해인데, 본인도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반면 입사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사직서를 낸 송혜인(가명·27)씨는 “회사 성장과 내 성장 사이에서 괴리감이 커져서 (회사에) 남을 필요성을 못 느꼈다”며 “당장 백수가 돼서 불안하지만, 내 인생에서 일부분이고 과정일 뿐”이라고 말했다.

꼰대와 요즘 애들 사이에서 ‘낀대(끼인 세대)’는 더 고달프다고 하소연한다. 2030세대, MZ세대로 묶이지만 70년대생과 90년대생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버린 80년대생들은 상사와 후배들 눈치를 동시에 보고 있어서다. 연말 인사에서 승진한 문진택 팀장(37·전시기획업)은 “신입이 9시 출근시간을 꼭 2~3분 남기고 아슬하게 출근하기에 윗사람들이 당장 너를 평가하는 것은 근태뿐이니 일찍 오라고 했더니 ‘지각은 아니다’라고 받아쳐서 황당했다”며 “위에선 후배들 관리를 주문하고 아랫사람들은 나를 벌써 꼰대 취급하니 난감하다”고 했다.



최근 직장 내에서 기피 0순위로는 ‘젊꼰(젊은꼰대)’, ‘꼰망주(꼰대+유망주)가 떠오르고 있다. 저연차 직장인들은 부장급 상사보다 팀장급 중간 관리자나 교류가 잦은 직속 선배들과의 세대갈등을 더욱 크게 느끼는 분위기다. 대기업 자동차 회사 2년차 매니저인 정호일(가명·30)씨는 “본인은 젊다고 꼰대인 줄 모르고 늙은 꼰대들 욕하는 젊은 꼰대가 더 문제”라며 “늙은 꼰대는 몇 년 있으면 나갈 분이니 그러려니 해도 젊은 꼰대는 계속 회사 생활하며 부딪칠 걸 생각하면 한숨밖에 안나온다”고 말했다.

아울러 윗세대가 단순한 ‘세대차이’로 여기는 일도 아랫세대 입장에서는 ‘세대갈등’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복장 규정이 대표적이다. 화장품 회사에 다니는 11년 차 책임매니저인 홍희진(가명·40)씨는 “복장 자율화가 되면서 회사에서 ‘편하게’ 입고 오라고 하지만 적정선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쪼리부터 시작해서 레깅스, 짧은 반바지를 입고 오는 저연차 후배들한테는 윗분들이 불편해하실 수 있다고 언질을 준다”고 말했다. 반면 중소 출판사에 다니는 2년차 에디터인 최세훈(28)씨는 “왜 회사에 모자를 쓰고 출근하면 안 되는지 이런 관행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2030세대는 정시 출퇴근이나 홀로 점심 먹는 것 등이 익숙한 세대라 기성세대가 일반적인 조직문화라고 여겨왔던 것들이 ‘갑질’이 될 수 있다”며 “세대차이로 여길 게 아니라 변화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생존 싸움이 된 세대갈등…“90년생 자산불평등 심각”

최근 세대갈등 양상은 ‘계급 간의 갈등’, ‘생존을 건 갈등’이라는 점에서 더 큰 심각성을 보인다. 저성장사회로 진입하면서 ‘밥벌이’를 놓고 청년세대와 기성세대가 경쟁하는 구도가 형성되며 촉발된 정년 연장 문제를 비롯해 초고령사회에서의 국민연금 고갈 우려 이슈 등이 대표적이다. 또 잊을 만하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폐지나 기초 노령연금제 폐지도 세대와 계급갈등의 단골 이슈다.

이러한 세대갈등은 자산불평등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부동산과 주식 같은 자산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이를 보유하지 못해 상대적으로 빈곤해진 젊은층의 박탈감을 나타내는 ‘벼락거지’, ‘영끌’ 등으로 대표되는 상징적인 단어로 세태를 가늠할 수 있다. 서울 토박이인 박창현(34)씨는 “신혼집을 구하려고 보니 돈이 없어 수도권으로 밀려나게 되더라”며 “기성세대가 집을 다 사고 투기로 집값까지 올려놓으니 우리 몫이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자산불평등은 세대갈등을 푸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서울연구원 관계자는 “Y세대(1990년대생)는 다른 세대보다 자산형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특히 수도권 1990년대생의 자산 불평등은 가장 심각한 수준”이라며 “20~30년이 지나 더 큰 격차로 이어지기 전에 소득을 통해 자산을 축적할 수 있도록 채용의 기회를 확대하고 주거비 지출을 줄여 주는 등 청년들을 위한 다양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