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당 제한 제도화 놓고…금융위·금감원 '온도차'

by이승현 기자
2020.11.02 04:00:00

금감원 "권고만으론 효과 없다" 판단
비상 시 금융사 배당제한 강제력 요구
관련 법령 만들 권한 가진 금융위
"금감원 방안 본 후 판단" 미지근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주요 금융지주들이 올해 역대급 실적을 거둘 것으로 전망되면서 배당정책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금융당국은 코로나19 상황이 일촉즉발인만큼 배당 자제를 바라고 있다.

다만 금융사 배당제한을 법으로 강제하는 방안을 두고선 기관 간(금융위 VS 금감원) 온도차가 엿보인다.

금융위 “배당제한 제도화 구체안 아직 못 받아”

1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감원은 코로나19와 같은 비상상황 때 금융회사가 손실흡수능력을 갖추도록 배당제한을 제도화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금감원은 이를 위해 올해 미국 연방준비제도(중앙은행)가 스트레스테스트 결과 등을 바탕으로 은행들에 자사주 매입 중단과 배당제한 등을 요구한 것을 연구해왔다.

스트레스테스트는 특정 사건이 발생했을 때 금융시스템의 잠재적 취약성을 측정해 재무건전성과 안정성 등을 평가하는 것이다. 금감원은 미 중앙은행 방식을 기본 모델로 삼고 있다.

현행법은 금융회사 배당과 관련해 범위만 규정하고 있다. 상법에 따르면, 금융회사는 대차대조표상 순자산에서 △자본금 △결산기까지 적립된 자본준비금과 이익준비금 △결산기까지 적립해야 할 이익준비금 △미실현이익 등을 공제한 범위에서 배당할 수 있다. 그 외에는 규제가 없다.

금감원이 배당제한 제도화를 준비하는 건 구두 권고만으론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해서다. 배당 자제 요청이나 권고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지난 4월 코로나19 장기화 등에 대비해 금융권에 배당 자제를 요청했다. 반면 하나금융지주는 지난 7월 주당 500원의 중간배당을 결의했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의 권고가 무력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키는 금융위가 쥐고 있다. 금융사의 고유한 결정영역인 배당문제에 정부가 개입하려면 반드시 법적근거가 있어야 한다. 법령과 규정은 금감원이 아닌 금융위가 만든다.

아직까지 금융위는 금감원에서 구체적 방안을 받지 않았다. 금융위는 금감원이 구체적 방안을 내놓으면 협의를 시작하겠다는 방침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배당자제에 대해선 금융위도 같은 입장이지만 (규정을 통한) 배당제한 필요성에 대해선 금감원 방안의 내용을 보고서 판단을 하겠다”고 말했다.

실적 걸맞은 주가 위해 주주 친화정책 필수

이런 가운데 주요 금융지주는 ‘동학개미운동’ 등 대출 확대에 힘입어 깜짝 실적을 거뒀다. 다만 당장의 배당확대에는 신중한 태도다.

신한금융과 KB금융은 올 들어 거둔 3분기 누적 순이익이 각각 2조9502억원과 2조8779억원으로 역대 최대규모다. 하나금융과 농협금융도 3분기 누적 순이익이 각각 2조1061억원과 1조4608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3.2%와 4.8% 늘었다. 우리금융의 경우 1조1404억원으로 전년보다 줄었다.

최근 신한금융은 분기배당이 가능토록 정관변경을 추진해 주목받고 있다. 코로나19가 끝나야 분기배당을 하겠다는 방침이라는 전제를 깔았다.

김기환 KB금융 재무담당 부사장(CFO)은 “코로나19 사태 장기화 우려와 경제 불확실성으로 올해 공격적인 배당 확대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후승 하나금융 CFO도 “현재로선 분기배당을 공식 논의하거나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문승용 기자)
그러나 최근 부진한 주가 수준을 끌어올리려면 결국 자사주 매입과 배당확대 등 주주 친화정책이 필수로 꼽힌다. 지난 10월 30일 기준 신한·KB·하나·우리 등 금융지주 주가는 연초(2020년 1월 3일) 대비 13~28% 가량 떨어진 상태다.

지난해 기준 신한(25%)·KB(26%)·하나(25.6%)·우리(26.6%) 등 금융지주들의 배당성향은 20% 중반대다. 국내 상장사와 비교하면 높은 편에 들지만, 해외 금융사에 비해선 낮은 수준이다.

윤석헌 원장은 지난달 26일 은행장들을 만나 충당금을 충분히 쌓을 것을 주문했다. 이에 금융사들은 올해에도 일단 지난해 수준의 배당은 유지할 방침이다.

최정욱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은행들이 낮은 주가를 타개하기 위한 주가부양 방안으로 분기배당 검토 등 적극적인 주주환원 의지를 피력해 감독당국의 배당자제 권고 지속에도 배당 우려가 완화되고 있다”고 했다.